“회장님, 개인 고객과 직원들에게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이런 일이 생겨 정말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동양그룹의 계열사인 동양증권 제주지점에 근무하는 고아무개(42·여)씨가 2일 오후 3시9분께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 도로에 주차된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고씨는 이날 새벽 1시께 집을 나간 뒤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고씨의 차량에서는 가족에게 보내는 유서와 동양그룹 회장에게 보내는 유서 등 2통의 유서가 발견됐다. 고씨는 동양그룹 회장에게 보내는 유서에서 회사에 대한 원망, 고객들에 대한 책임감 등을 토로했다.
고씨는 유서에서 “개인 고객들에게 정말 이러실 수는 없는 거 아닌가요. 이런 일을 만들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직원들에게도 이러실 수는 없는 거 아닌가요. 회장님을, 오늘 아침에 출근할 때는 믿었습니다”라며 원망을 드러냈다.
고씨는 이어 “정말 고객님들께 조금이라도 이자(를) 더 드리면서 관리하고 싶었고, 정말 동양그룹을 믿어서 권유한 겁니다. 이런 일이 생겨서 정말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네요. 하루속히 개인 고객님들 (문제가) 전부 해결이 되었으면 합니다. 끝까지 책임 못 져서 정말 죄송스럽습니다. 회장님, 제 고객님들 전부 상환 꼭 해주십시요”라고 적었다.
숨진 고씨는 투자상품을 판매하는 직원으로 일처리가 꼼꼼해 동료 직원들과 고객들에게 평판이 좋았으나, 지난달 23일부터 동양증권 자금이 대규모로 이탈하면서 일부 투자자로부터 심하게 항의를 받고 괴로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씨의 오빠는 “동생이 죽는 순간까지도 회사에 고객들에게 책임을 다하라는 당부를 했다. 직원들에게도 고객들에게 손해가는 게 싫다는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했다고 한다. 회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당일에야 언론보도로 알았다”며 침통해했다. 고씨의 조카는 “고객에 대한 죄책감과 양심 때문에 괴로워한 것 같다. 오랫동안 같이 근무한 직원들도 책임감이 남다르다고 하고, 후배 여사원들도 많이 신뢰하고 의지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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