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살…여고생처럼 두근거렸다-정금옥씨
74살…여고생처럼 두근거렸다
고희를 넘긴 할머니이지만 합격 발표가 나는 순간까지는 여고생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2005학년도 제2회 고졸 검정고시에서 최고령으로 합격한 정금옥(74)씨는 29일 합격자 발표가 난 뒤에야 들뜸도, 호들갑도 없는 여느 할머니로 돌아왔다. “공부를 잘 한 것도 없어요. 그냥 한 거지, 뭐.” 최고령 합격자에 대한 세상의 관심이 오히려 거북스러운 듯했다.
하지만 정씨는 나이의 벽만 극복한 게 아니다. 지난 5월 허리를 다쳐 수술을 받고도 사흘 만에 퇴원해 곧바로 학원에 나가면서 시험 준비에 매달렸다. 시험이 임박했다는 생각에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지난 1998년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하고도 약해진 몸 때문에 5년여 동안 학업을 중단했다가, “이러다가 그냥 가는 게 아닌가”하는 조바심에 지난해 다시 붙잡은 책이었다. 새벽 4~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집안일도 챙기고 학원에도 다니고 피곤하면 누워 쉬다 다시 책을 봤다.
함경도에서 소학교에 다닌 게 학력의 전부였던 정씨는 늘 책이 보고 싶었지만 5남매를 키우느라 그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자녀들을 다 키우고 10여 년 전 남편마저 잃은 뒤 가물가물한 어릴 적 기억을 살려 일본어를 배워보기로 한 게 다시 배움의 길에 들어서는 계기가 됐다. 그때까지는 검정고시가 뭔지도 몰랐다. 학원 강사들의 소개로 검정고시 수험생이 된 정씨는 15달 만에 고입 자격을 따냈다.
늦깎이 공부라 책을 읽어도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꾸준히 들여다보는 것밖에는 길이 없었다. 정씨를 마지막까지 괴롭힌 복병은 아무리 공부해도 낯선 영어였다. 다행히 수학은 쉽게 귀에 와 닿았다. 수학시간엔 선생님께 질문도 제법 할 수 있었다. 일본어는 이제 자신이 붙었다. “나 같은 할머니를 받아줄 학교가 있겠느냐”고 걱정하면서도 대학에서 일본어를 계속 공부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있다. 정씨는 이날도 병원에 가봐야 한다며 집을 나섰지만, 육신의 병쯤은 더 이상 이 노인의 학구열에 걸림돌이 되지 못할 것 같다.
글 박용현 기자 piao@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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