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헌법에 정당 경선 규정 없어”
유죄 선고받은 11건과 다르게 판단
검찰 “선거 원칙에 정면배치” 반발
유죄 선고받은 11건과 다르게 판단
검찰 “선거 원칙에 정면배치” 반발
지난해 3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이뤄진 대리투표를 형사처벌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자율을 보장한 정당의 당내 경선에 ‘직접선거’라는 공직선거의 원칙을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되며, 이 사건의 경우 대리투표 가능성을 알고도 방관한 당 지도부의 책임이 더 크다는 취지다. 앞서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관련 사건은 모두 유죄가 선고된 터라 앞으로 대법원 판단이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재판장 송경근)는 7일 통합진보당 당내 경선 전자투표 과정에서 당원으로 등록된 지인이나 가족, 친구에게 휴대전화로 전송된 인증번호를 받아 대리투표를 한 혐의(업무방해)로 기소된 최아무개(48)씨 등 45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헌법은 공직선거에 대해 직접선거 원칙을 규정하지만, 정당의 당내 경선은 헌법과 법률 어디에도 이런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 정당이 자율로 정하도록 보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직선거의 직접투표 원칙이 당내 경선에서도 그대로 준수돼야 한다는 검찰 공소사실의 전제부터 잘못됐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통합진보당이 전자투표 절차와 방법에 대한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았고 △선거 당시 대리투표를 해서는 안 된다고 선거권자들에게 알린 적이 없는 점 등을 종합하면 전자투표가 ‘반드시 직접투표를 해야 한다’는 원칙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재판부는 “가족·친척·동료 등 일정한 신뢰관계가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위임에 의해 이뤄지는 통상적 수준의 대리투표는 감수할 의사였던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이런 정도의 대리투표라면 민주적 기본질서를 해하거나 선거권자의 의사를 왜곡하는 등 선거제도의 본질적 기능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재판부는 “사전에 대리투표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하고도 투표율을 높이는 것에만 집착해 대리투표를 최대한 통제할 수 있는 기술적 조처를 스스로 포기하고 이를 금지하는 규정조차 전혀 마련하지 않은 채 투표를 실시한 당직자 및 선거업무 담당자들에게 근본적이고 중대한 책임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 당원들이 스스로 알아서 직접투표라는 최선의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해서 이들에 대해 도덕적 비난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형사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재판부는 “당내 대리투표 행위가 제한 없이 허용된다거나 언제나 업무방해죄가 될 수 없다는 취지는 아니다.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 성립 여부가 문제될 소지는 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통합진보당의 부정경선 의혹을 수사해 510명을 기소했으며 지금까지 판결이 난 11건 모두 유죄가 선고됐다. 당내 경선도 국회의원을 뽑는 과정의 하나이므로 공직선거법이 적용돼야 하고, 휴대전화 인증번호를 이용한 전자투표 방식은 직접투표를 전제한 것이라고 보고 업무방해죄를 인정한 것이다. 현재 2건이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이번 판결은 헌법상 직접·비밀선거 등 선거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반발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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