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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악몽 같지만 그래도 도와야지” 방화범을 용서한 목사님

등록 2013-10-10 21:29수정 2013-10-11 13:10

지구촌사랑나눔 대표인 김해성 목사가 10일 저녁 서울 한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이주노동자 쉼터에 불을 지른 혐의를 받는 중국동포 김아무개씨를 바라보고 있다. 김씨는 의식불명 상태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
지구촌사랑나눔 대표인 김해성 목사가 10일 저녁 서울 한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이주노동자 쉼터에 불을 지른 혐의를 받는 중국동포 김아무개씨를 바라보고 있다. 김씨는 의식불명 상태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
지구촌사랑나눔 대표 김해성 목사

이주노동자 쉼터 지내던 중국동포
술 취해 급식실 불 지르고 ‘중태’
9명 부상·보금자리 잿더미 불구
김해성 목사, 중환자실 찾아 위로
오갈 데 없는 그가 찾아온 건 지난 6일이었다. 중국동포인 그에게 잠잘 곳과 음식을 나눠주며 사랑을 베푸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횡설수설하는 그에게서 알코올중독과 ‘정신질환’의 징후를 봤지만, 불을 지를 줄은 몰랐다. 지구촌사랑나눔 대표인 김해성(54) 목사는 악몽 같은 일을 겪고도 “솔직히 화가 났지만, 방화범이라 해도 우리가 도와야지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했다. ‘외국인노동자의 대부’로 불려온 김 목사는, 이주노동자들의 보금자리를 잿더미로 만든 김씨를 용서했다.

지난 8일 밤 11시20분께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 있는 6층짜리 지구촌사랑나눔 건물 1층 급식소에서 불이 났다. 이틀 전 이곳을 찾은 중국동포 김아무개(45)씨가 방화범으로 지목됐다. 지구촌사랑나눔의 유정희 전도사가 불을 가장 먼저 발견했다. 유 전도사는 식당 한켠에 쌓아둔 책에 불이 붙은 것을 보고, 119에 신고한 뒤 4층 쉼터로 뛰어올라가 잠자던 중국동포들을 대피시켰다. 쉼터에서 잠에 빠져 있던 50여명은 옥상과 계단으로 몸을 피했다. 이 과정에서 9명이 불에 데거나 골절상을 입었다. 참사를 빚을 뻔했다. 유 전도사가 불이 나기 10분 전 술 냄새를 풍기는 김씨와 마주친 뒤 급식소를 둘러보지 않았다면 큰일이 날 수 있었다.

불을 지른 김씨도 계단을 타고 올라 3층으로 급히 도망쳤다. 그 역시 화마를 피해 창문을 열고 몸을 던졌다. 머리뼈 골절상을 입은 김씨를, 지구촌사랑나눔 관계자들이 고려대 구로병원으로 실어날랐다. 그는 10일 현재 의식이 없다. 신경외과 의사들이 수술했지만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의사는 “사망 가능성이 높다.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중환자실에 있다.

9일 병원을 찾은 김해성 목사는 다른 부상자들보다 김씨를 가장 먼저 찾아갔다. 그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손을, 김 목사는 말없이 잡았다. 김씨의 두 형과 여동생은 10일 병원에 들렀다. 또다시 병원을 찾은 김 목사는 고개 숙인 김씨의 형제들에게 말했다. “병원비는 걱정하지 마세요. 장례를 치르게 된다 해도 저희가 도울 겁니다. 솔직히 어제는 화가 났지만 오늘은 용서했습니다.” 김씨의 형은 고개 숙였다. “죄송하고, 고맙습니다. 중국동포 분들에게 잘해 주신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김씨는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인숙을 전전하다 지구촌사랑나눔에 들어갔다. 김씨를 이곳에 소개한 중국동포 박아무개(44)씨도 미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는 한국에서 환영받지 못해 외로워했다. 경기도 포천 농장에서 두달 넘게 일했지만 한달치 월급밖에 받지 못했다. 돈을 빌려 중국에서 한국에 온데다 한국에서도 일자리를 제대로 못 찾았다”고 전했다. 서울 구로경찰서는 김씨를 방화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하지만 사경을 헤매는 그를 조사하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지난 8월 체류기간이 만료됐다.

지구촌사랑나눔이 불에 탄 무료급식소와 병원, 쉼터를 완전히 복구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건물을 복구하는 데 1억원가량이 들고, 이주노동자들의 병원 치료비로 또 1억여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문의: 지구촌사랑나눔(02-849-9988)

박유리 박수지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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