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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국민참여재판, 정치의 한복판에 서다

등록 2013-10-29 19:50수정 2013-10-30 10:08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된 안도현 시인이 28일 국민참여재판이 열린 전북 전주지법 1호 법정 앞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전주/뉴스1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된 안도현 시인이 28일 국민참여재판이 열린 전북 전주지법 1호 법정 앞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전주/뉴스1
안도현 시인 ‘박근혜 비방’ 혐의
배심원 전원 ‘무죄 평결’했지만
재판부 “견해 달라” 선고 미뤄

여권 “정치 사건은 제외해야”
전문가 “시민 참여 취지 부정”
지난해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안중근 의사 유묵 도난에 관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해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된 안도현(52·우석대 교수) 시인이 28일 전주지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7명의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받았다. 하지만 담당 재판부인 형사2부(재판장 은택)가 ‘견해가 다르다’며 선고를 연기해 논란이 일고 있다.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당 후보의 시민캠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안 시인의 재판은 오전 9시30분부터 밤 11시40분까지 14시간 넘게 피고인과 검찰 쪽의 열띤 공방 속에 진행됐다. 마침내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내놨지만, 재판부는 “일부에 대해 견해를 달리한다. 배심원 평결을 존중하지만 법관은 헌법과 법률, 직업적 양심에 따라 상충점이 없는지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며 선고를 11월7일 오전 10시로 미뤘다.

이를 두고 안 시인의 변호인 쪽은 국민참여재판의 관행대로 재판 당일 선고를 하지 않은 점 등을 비판한 반면, 여권 일부에선 배심원의 무죄 평결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법관 출신인 이주영 새누리당 의원은 29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등법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허위사실 공표 사건은 어려운 법률적 쟁점이 많다. 이런 사건에 배심제가 적절한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앞서 24일에는 박근혜 후보의 5촌 조카 사이에 벌어진 살인사건에 대해 박 후보의 동생 지만씨가 연루됐을 가능성을 제기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주진우(40) <시사인> 기자와 김어준(45) <딴지일보> 총수에 대해 배심원 9명 가운데 6명이 무죄 의견을 냈고,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김환수)도 이를 받아들여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서도 여당 쪽에서 “인기영합 판결”이라는 비난이 나왔다.

이처럼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에 관한 의혹 제기를 했다가 기소된 사건들에 대해 배심원들이 잇따라 무죄 평결을 내리면서, 도입 6년째를 맞은 국민참여재판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국민참여재판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직업 법관이 재판을 독점하다 보니 시민 상식과 어긋난 판결이 종종 나오자 재판의 민주적 정당성을 높이기 위해 2008년 도입됐다.

문제는 정치적 사건을 중심으로 논쟁이 일면서 ‘시민의 사법참여’라는 제도의 본질이 희석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참여재판 도입을 앞장서 주장했던 한 법조인은 “법관의 고유 영역이었던 재판에 일반시민이 참여하는 것은 그 자체가 이른바 ‘권력에 대한 도전’이었다. 최근 나타나는 배심원 평결에 대한 비난은 참여재판의 이런 속성을 눈치챈 권력이 시민권력을 견제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사건 ‘승자의 재판’ 우려…시민의 상식적 판단 필요


■ “정치적 사건이야말로 참여재판 대상”
김어준·주진우씨 사건과 안도현 시인 사건의 잇따른 무죄 평결에 대해 여당과 일부 보수언론에서 우선 내놓는 주장은 ‘정치적인 사안은 참여재판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 사건일수록 오히려 참여재판이 필요하다는 반론이 있다. 서보학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은 “판사·검사 등 관료들은 법질서 안정을 추구하기 때문에 권력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다. 선거사범은 ‘승자의 재판’이 될 우려가 있다. 최근 일련의 사건들은 만약 대선에서 야당 후보가 당선됐다면 기소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런 사건일수록 시민의 감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정치적 사건은 오히려 참여재판을 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허위사실 공표나 명예훼손 등의 법리가 어렵기 때문에 직업 법관이 판단을 해야 한다는 논리도 제기된다. 그러나 서울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명예훼손이나 공직선거법은 법리가 어렵거나 전문 식견이 필요한 부분이 아니다. 오히려 법관이 일반인의 상식과 관점에 맞춰 판단해야 한다. 이런 사건이야말로 국민참여재판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의 지지자가 다수였던 전북지역에서 문 의원의 선거운동을 했던 안 시인의 재판을 하는 것이 맞느냐는 문제제기도 있다. 하지만 현행법상 배심원은 해당 법원이 관할하는 지역민 중에서 선정하도록 돼 있다. 미국에서는 흉악 범죄 용의자에 대한 지역민들의 편견이 강한 경우 재판 장소를 다른 지역으로 옮기기도 하지만, 이는 오히려 피고인을 보호하기 위한 조처다. 대법원 국민사법참여위원회 심의관인 강종선 판사는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에서는 재판 지역을 옮기는 게 현실성이 없다. 배심원 선정은 검찰·피고인 양쪽 모두 동의해야만 가능하다. 양 당사자가 치열하게 배심원 선정을 하고 법리 공방을 해야 한다. 배심제 취지가 시민 상식을 반영하자는 것이다. 결론이 마음에 안 든다고 배심원 참여를 제한해야 한다는 것은 제도 자체를 부인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서울중앙지법을 방문한 미국 배심제의 권위자인 밸러리 한스(62) 코넬대 로스쿨 교수는 ‘여론재판’ 우려에 대해 “참여재판의 장점은 여러 사람의 다양한 양심이 반영되고 (평의를 통해) 유동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 한쪽으로 치우치기보다는 균형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 배심원 결정 뒤집어도 되나
현행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에는 “배심원의 평결은 법원을 기속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권고적 효력만 갖는 것이다. 하지만 일선 재판에서는 배심원 평결을 ‘존중’하고 있다.

2009년 서울 마장동 축산물유통업체 직원 문아무개씨가 옆가게 종업원 김아무개씨와 시비 끝에 흉기로 내리친 혐의(살인미수) 등으로 기소됐다. 국민참여재판에서 1심 재판부는 배심원 7명이 살인미수 혐의에 대해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하자 이를 받아들였다. 2심은 이와 달리 살인미수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1년 3월 “배심원이 증인신문 등 사실심리의 전 과정에 함께 참여한 후 만장일치 의견으로 내린 무죄 평결이 재판부의 심증에 부합해 그대로 채택된 경우라면, 항소심에서 새로운 증거조사를 통해 그에 명백히 반대되는 사정이 나타나지 않는 한 함부로 뒤집을 수 없고, (배심원 평결은) 한층 더 존중돼야 한다”며 2심 판단을 뒤집었다.

판·검사 등 법 안정 추구
권력 영향 받을 수밖에 없어

배심원 평결 ‘권고’ 효력에도
재판부가 뒤집은 건 7.5%뿐
“참여재판 제한은 기득권 시각
시민이 주인되게 되레 확대를”

대법원 자료를 보면, 2008년부터 지난 9월까지 배심원의 평결을 재판부가 거스른 경우는 전체 국민참여재판 1091건 중 82건(7.5%)이었다. 82건 가운데는 배심원이 무죄로 결정한 것을 재판부가 유죄로 바꾼 것이 대다수(76건)였다. 배심원이 일반 법관보다 유죄를 인정하는 데 더 엄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등 대부분 배심제를 운영하는 나라에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미국의 경우 배심원 평결과 재판부의 판단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25%가량 된다. 배심원들이 법관들보다 유죄 인정을 까다롭게 하는 이유에 대해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아직 명확히 밝혀지진 않았다”고 말했다.

참여재판과 일반재판을 비교하면, 무죄율과 실형률에서 참여재판이 모두 높게 나타난다. 이는 2008년 시행된 참여재판에서 강도·살인·성폭행 등 형이 무거운 사건이 주요 대상이었고, 모두 유무죄를 다투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일반재판에서는 피고인이 혐의를 인정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참여재판에서는 유무죄를 다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무죄율이 높은 것이다. 무죄율이 높다고 해서 배심원이 ‘봐주기 평결’을 한다고 볼 수는 없다. 실형률이 높은 이유도 형이 무거운 사건들이 주요 대상이기 때문이다.

국민참여재판은 지난해 7월부터 형사합의부의 모든 사건으로 대상이 확대됐다. 김어준·주진우씨 사건이나 안도현 시인의 사건 등 사회적 이목을 끄는 사건도 시민들의 재판 참여가 가능해졌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아직 제도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배심제에 대한 비판은 예상된 것이다. 하지만 현행 제도에서는 배심원 결정을 재판부가 거부할 수도 있는 만큼 판결의 모든 책임을 배심원에게 돌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 국민참여재판 진행이 적절치 않다고 인정되면 재판부가 배제 결정을 할 수 있다. 지난 5년간 배제 결정은 모두 327건으로 30% 가까이 된다.

■ 참여재판 보완은 참여재판 확대
배심원들이 유무죄를 결정하고 판사는 형량만 정하는 미국의 배심제와, 시민과 법관이 함께 재판부를 구성해 유무죄 여부와 형량까지 정하는 독일의 참심제 등 오랜 전통을 가진 외국 배심제도에 견주면, 우리나라 참여재판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대법원은 국민참여재판 정착을 위해 확대 시행을 꾀하고 있다.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재판부는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단할 때 배심원의 평결 결과를 존중해야 한다”고 밝힌 뒤 “헌법이나 법률, 대법원 판례에 위반되는 경우나 논리법칙에 위반되는 사유가 있는 경우”만 배심원 평결을 따르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사실상 배심원 평결의 기속력을 부여한 것이다. 또 이제까지는 피고인이 신청한 경우만 참여재판이 가능했지만, 개정안이 통과되면 검사의 신청이나 법원의 결정으로도 참여재판을 열 수 있게 했다. 재벌·정치인 사건도 배심원 재판이 가능해진다. 현행 단순 다수결 방식에서 배심원의 4분의 3 이상 찬성으로 평결 정족수도 강화된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참여재판 제한은 사회적 강자의 위치에 있는 법조인이 재판을 장악하겠다는 논리다. 국민주권주의 실현을 위해 법정에서도 시민이 주인이 되는 시스템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전주/박임근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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