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의무 없애 ‘공권력 남용’ 우려
경찰이 수갑·경찰봉 등 장구를 사용할 때 별도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한 규정을 22년 만에 폐지하기로 했다. 각종 집회·시위에 대한 과잉 진압과 민생치안 현장에서의 인권침해 우려가 커지게 됐다.
경찰청은 내부 훈령인 ‘경찰관직무집행법에 의한 직무집행시의 보고절차 규칙’을 개정해 경찰 장구를 사용하면 ‘경찰 장구 사용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한 의무 규정을 삭제했다고 10일 밝혔다. 이제 수갑·경찰봉·포승줄·방패 등 범인 검거와 범죄 진압에 사용하는 경찰 장구를 사용할 때 근무일지에만 기록하면 된다. 경찰 장구는 총기 등 무기류보다 사용 빈도가 높다. 사용 빈도가 낮고 위험성이 높은 전자충격기는 이번 개정 대상에서 제외했다.
1991년 무분별한 경찰 장구 사용을 막기 위한 통제 장치로 도입된 이 의무 규정이 사라짐에 따라 경찰력 행사는 쉬워지고 인권침해 가능성은 높아졌다는 지적이 인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박주민 사무차장은 “경찰 장구 사용 보고서는, 사전에 잘못된 장구 사용은 아닌지 점검하고 사후에 공권력 행사를 둘러싼 논란이 있을 때 증거 구실을 해왔다. 이 규정이 사라지면 인권침해를 당한 사람은 진술 외에는 증명 방법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경찰의 이번 조처는 인권단체들의 경찰관직무집행법 강화 요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인권단체들은 무기·장비 사용 규정을 추상적으로 기술한 경찰관직무집행법 10조 등을 개정해, 사용 요건과 방법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자의적 해석 및 과잉 사용을 막아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경찰관직무집행법 10조는 현행범 등의 경우 경찰관이 ‘도주의 방지, 생명·신체에 대한 방호, 공무집행 항거 억제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합리적으로 판단해 필요한 한도 내에서’ 장구를 쓸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이번 규칙 개정은 두루뭉술한 경찰관직무집행법을 강화하자는 운동을 해온 인권단체의 뜻에 역행하는 것으로, 집회·시위 진압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심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 장구를 사용하다 생명이나 신체에 중대한 침해가 발생하면 반드시 사후 보고해야 한다. 사용 보고서 의무 폐지는 불필요한 서류 작업 부담을 덜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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