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서 이혼 청구소송 기각
“전립선질환 남편 어려움 수긍”
“전립선질환 남편 어려움 수긍”
30년 넘도록 성관계를 하지 않은 사실만으로는 이혼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아내 ㄱ씨와 남편 ㄴ씨는 1968년에 결혼했다. 사업을 한 남편이 돈을 많이 벌어 부부는 풍족한 생활을 누렸다. 그러나 성격 차이 등으로 부부 사이는 좋지 않았고, 1980년께부터 두사람은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은 평소 앓고 있던 전립선비대증이 악화했고, 2007년에는 전립선암 진단을 받았다.
ㄱ씨는 남편이 결혼생활 내내 가부장적인 태도로 가족들 위에 군림하는 게 참기 힘들었고, 부부싸움 도중 남편에게 맞기도 했다. 60살을 앞둔 2004년 ㄱ씨는 남편과 싸우다 모욕적인 말을 듣고 별거를 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여러 사정으로 재산을 처분하고 탕진하자 2011년에는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남편이 장기간 부부관계를 맺지 않고 폭언·폭행 등으로 혼인 파탄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고, 이혼과 함께 남편이 ㄱ씨에게 위자료 4000만원을 지급하고 재산도 나눠주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가사3부(재판장 이승영)는 남편의 폭행·폭언에 대해 증거가 부족해 이혼 사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33년간 성관계를 하지 않은 것’ 역시 이혼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ㄱ씨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고 11일 밝혔다.
재판부는 “부부에 따라서는 살면서 성관계 횟수가 줄어들다가 딱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성관계가 단절돼버리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이혼 사유가 되려면 상대방의 성관계 요구를 정당한 이유없이 거부하거나 성기능 장애가 있더라도 치료 또는 개선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는 등의 사정이 존재해야 한다. 성관계를 중단할 무렵 남편은 이미 50살에 가까운 나이였고, 전립선 질환으로 성관계를 하기 어려웠다는 남편의 주장이 수긍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부부가 2004년부터 별거하고 있지만, 부부의 혼인기간이 40년이 넘고 80살이 넘은 남편이 고령으로 여생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고 보이는 점, 자녀들과 함께 화목하게 보낸 시간이 불화의 시간보다 더 많았다고 보이는 점, 일체의 재산은 부인의 처분에 맡길 테니 재결합의 여지라도 남겨두기 위해 이혼만은 원치 않는다는 남편의 태도가 진심으로 보이는 점 등을 두루 고려하면 현재 부부생활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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