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집회 대응체계는 이명박 정부 이후 거꾸로 가고 있다. ‘무최루탄 원칙의 관리’(국민의 정부)와 ‘자율적 집회·시위 보호 방침’(참여정부)의 시대를 거슬러, 이명박 정부 때 경찰은 ‘합법·불법·폭력 집회에 따른 차별적 경력 배치’로 강경해졌다. 사진은 지난해 9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창조컨설팅 앞을 방패로 가로막은 경찰의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사회 쏙] 거꾸로 가는 ‘경찰관 직무 집행법’
시위 보호 방침 시대 거슬러 역행 장구 사용 보고서 의무 규정 폐지
오남용 증가세…인권침해 우려
수갑 관련 피해 진정사건 최다
“진압장비 사용 규정 법제화해야” ■ 경찰 강경진압 회귀한 2010년 역사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며 거꾸로 갔다. 경찰의 집회 대응 체계가 과거로 회귀한 시점은 2010년이었다. ‘무최루탄 원칙의 관리’와 ‘자율적 집회·시위 보호 방침’의 시대를 거슬러, 이명박 정부 때 경찰은 ‘합법·불법·폭력 집회에 따른 차별적 경력 배치’로 강경해졌다. 1981년 도입됐다가 유해성 논란으로 2007년 4만9103ℓ가 폐기됐던 시에스(CS)최루액은 2009년 쌍용차 사태 당시 2137ℓ가 다시 사용되기도 했다. 결국 시에스최루액은 2011년 모두 폐기됐다. <경찰학 개론>은 “2010년 집회·시위 패러다임의 전환을 천명하고, 집회·시위를 ‘합법과 불법’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평화·불법·폭력’으로 구분하여 합법 촉진적 경력 배치를 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경찰 폭행 등 법질서 침해가 일어날 경우 ‘경찰관 기동대 중심의 기동부대를 전면 배치해 해산 조처 및 현장 검거’를 하는 쪽으로 원칙을 세웠다. 경찰청 관계자는 “‘합법 촉진, 불법 필벌’이라는 (이명박 정부 때) 개념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의 집회·시위 대응 원칙 변화에 따라 경찰관직무집행법도 바뀌어왔다. 노태우 정부 때 한차례 진압 강화 쪽으로 개정된 경찰관직무집행법은 1999년 장비 종류를 세분화하고, 경찰의 자의적 해석을 차단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원래 최루탄에 대해서만 적용되던 ‘일시·장소·대상·현장책임자·종류·수량 등을 기록하고 보관해야 한다’는 규정이 분사기·무기 등으로 확대됐다. 그 뒤로 2006·2011·2013년 소폭의 개정이 이뤄졌지만 크게 바뀌진 않았다. 그럼에도 경찰관직무집행법의 근본적 문제는 경찰 장비와 장구 사용에 대한 부분이 대통령령에 맡겨져 있다는 것이다. 무기, 경찰 장구, 최루제 및 최루제 발사장치, 감식기구, 해안감시기구, 통신기기, 차량, 선박, 항공기 등 경찰 장비 종류를 규정하고 있지만, 그 사용 기준에 대해서는 대통령령이 규정하도록 돼 있다. 특히 무기류에 견줘 시위 현장 등에서 사용 빈도가 높은 수갑·포승·경찰봉·방패 등 경찰 장구는 더욱 자의적으로 사용되기 쉽다. 그러나 지난 10일 경찰청은 행정 편의를 위해 내부 훈령인 ‘경찰관직무집행법에 의한 직무집행시의 보고절차 규칙’을 개정해, 전자충격기를 제외한 경찰 장구 사용시 근무일지에만 기록하게 하고 별도 보고서 의무 규정은 삭제했다. “각각의 장비를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법으로, 어떤 절차를 통해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결국 이 공백을 채우는 것은 경찰의 판단이다. 반값 등록금, 무상 보육 등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드러내는 마당인 집회의 경우, 집회 신청 순간부터 합법과 불법을 가르는 주체가 경찰인데 집회를 진압할 수 있는 장비까지 너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문제다. 특히 물대포나 최루액 등은 장비라기보다는 준무기에 속하는데 위험할수록 통제가 필요하다.” 최은아 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 활동가의 지적이다. ■ 장비 도입은 경찰 마음대로 허술한 신장비 도입 절차도 문제다. 현재 새 장비 도입 때 경찰관으로 구성된 경찰규격심의위원회가 심의를 한다. 민간인으로 구성된 경찰장비자문위원단이 안전성 심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심의에 참석할 수 있지만 실제 활동은 미미한 실정이다. 2011년 9월 국정감사에서도 이런 문제가 지적됐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이던 장세환 전 민주당 의원은 당시 “경찰장비자문위원단은 2009년 말 위촉 이후 현재까지 회의가 열린 적이 없으며 경찰 장비와 관련해 자문은 전화통화로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규격심의위원회는 해당 업무의 국장, 과장, 계장 등 경찰관들로만 구성돼 있어, 경찰장비자문위원단의 활동을 강화해 이를 견제하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0년 11월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경찰청이 도입하려다 무산된 음향대포 또한 허술한 신장비 도입 체계 때문에 벌어진 촌극이었다. 음향대포는 2.5킬로헤르츠(㎑)의 고음을 최대 152데시벨(㏈)까지 낼 수 있도록 돼 있는 시위진압 장비다. 120~130데시벨의 소리를 지속적으로 들을 경우 청력이 손상될 수 있다. 신장비 양상도 바뀌고 있다. 1989년 이스라엘에서 물대포 차량 두 대가 들어왔고, 2008·2010년에 캡사이신 최루액과 신형 파바최루액도 연이어 도입됐지만 안전성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인권위 또한 진압 장비 사용 규정을 법으로 구체화할 것을 권고했지만 경찰은 수용하지 않고 있다. 인권위는 2008년 촛불집회 당시 사용된 시위 진압용 살수차의 사용 기준에 대해 법적 근거를 마련하라고 권고했지만 경찰은 오히려 ‘20m 이내의 근거리 시위대를 향해서 직접 살수포(물대포)를 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삭제했다. 현재 물대포 사용 거리 규정은 없는 상태다. 박유리 방준호 김미향 이재욱 박수지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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