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장학회 지분 매각을 논의한 비밀회동을 보도한 <한겨레> 최성진 기자가 8월2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선고공판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최성진 기자 항소심 판결법원, 청취·녹음 모두 유죄 판단
“통신비밀 유지 이익보다
대화공개 이익이 우월하다 할 수 없다”
“공익성 협소하게 해석” 비판 일어
“통신비밀 유지 이익보다
대화공개 이익이 우월하다 할 수 없다”
“공익성 협소하게 해석” 비판 일어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정수장학회와 <문화방송>(MBC) 관계자들이 정수장학회의 문화방송 지분 매각을 논의한 비밀회동 내용을 보도한 <한겨레> 최성진 기자에게 항소심 법원이 보도의 공익성을 인정하면서도 선고유예 형량을 되레 높이며 유죄 판결을 유지했다. 보도의 공익성 개념을 협소하게 해석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4부(재판장 안승호)는 28일 최필립 전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문화방송의 이진숙 전 기획홍보본부장, 이상옥 전 전략기획부장 등 세 사람의 대화 내용을 청취·녹음·보도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최 기자에게 징역 6월 및 자격정지 1년의 선고를 유예했다. 선고유예는 범행의 정도가 경미한 경우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2년이 지나면 선고를 면하게 하는 것이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징역 4월 및 자격정지 1년의 선고를 유예한 바 있다.
■ 청취·녹음의 유죄 여부 최 기자는 최 전 이사장과 통화를 마칠 무렵 최 전 이사장이 휴대전화 종료 버튼을 누르지 않는 바람에 곧 이어진 세 사람의 대화 내용을 들었다며, 단지 전화를 끊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최필립과의 대화를 종료한 이후 계속적으로 이어진 청취·녹음 행위는 ‘물리적 행위’를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대화(내용)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피고인이 세 사람의 대화에 처음부터 참여하지 않은 이상, 이 대화는 ‘공개되지 않는 타인의 대화’이므로 피고인에게는 이 대화를 청취·녹음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생긴다”고 말했다. 전화를 끊거나, 끊지 않으려면 통화 상대방에게 ‘대화를 들어도 괜찮냐’고 물어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덕우 변호사는 “만약 대화 내용이 문서였다면, 최 전 이사장이 실수로 잃어버린 문서를 최 기자가 우연히 습득하고도 일부러 보지 않아야 하는 의무가 생기는지 의문이다. 피고인의 직업·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기자에게 우연히 들리는 내용마저 안 들어야 한다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 보도의 공익성 판단 앞서 1심 재판부는 청취행위는 유죄, 녹음행위는 무죄라고 판단하면서 ‘녹음이 무죄이므로 보도행위도 무죄’로 인정했다. 보도의 공익성에 대해서는 별도로 판단하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일단 청취·녹음·보도행위가 모두 유죄라고 판단한 뒤, 이를 상쇄할 만큼 보도의 공익성이 큰지를 따졌다. 재판부는 우선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특정 후보자(박근혜)와의 관계로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는 정수장학회가 문화방송과 부산일보의 지분을 매각해 반값등록금으로 사용하겠다고 발표하는 것이 특정 후보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될 여지도 있을 수 있다.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성·사회성을 갖춘 공적 관심사에 해당한다”며 최 기자의 보도에 공적 가치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대화는 정수장학회 지분매각 계획을 발표하겠다는 것일 뿐, 실제로 매각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또 실제로 정수장학회가 2012년 10월19일 매각 계획을 발표했다 하더라도 대선까지 두달 동안 이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언론보도 역시 예상돼 국민 여론이 집중될 것으로 보이므로, 지분매각 발표가 특정 후보자에게 유리하게 작용될 효과 역시 감소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불법 녹음된 대화 내용을 실명과 함께 그대로 공개해야 할 만큼 이 내용이 공익에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박주민 사무차장은 “정수장학회가 독자적으로 판단한 것처럼 매각 계획을 발표하는 것과, 사전에 문화방송과 이런 내용을 기획했다는 내용이 알려지는 것은 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이런 차이를 무시하고 보도의 공익성 부분을 협소하게 해석했다”고 비판했다. 이덕우 변호사도 “대선을 앞두고 특정 후보를 유리하게 만들려는 내용이 이 사건의 핵심이며, 재판부가 이를 인정하고도 ‘상황 변화 가능성’ 등 주관적 판단을 근거로 해당 보도를 정당행위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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