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거래’ 발언 서귀포시장과 우 지사 사이에 무슨 일이…
“고질적 ‘줄세우기 병폐’, 터질 게 터졌다” 비판 여론 확산
검찰, 시장 자택 압수수색 이어 우 지사도 조사 나설 듯
“고질적 ‘줄세우기 병폐’, 터질 게 터졌다” 비판 여론 확산
검찰, 시장 자택 압수수색 이어 우 지사도 조사 나설 듯
한동주 전 제주 서귀포시장이 우근민 제주지사와 시장 자리를 놓고 ‘내면 거래’를 했다는 발언이 연말 제주 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지방선거를 6개월 남짓 앞둔 시점이라, 한 전 시장이 말한 ‘내면 거래’가 검찰 수사에서 사실로 확인될 경우 그 파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제주에서는 그동안 도지사에 당선된 이들의 공무원 줄세우기와 줄서기가 노골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 전 시장의 발언이 알려지자 마침내 터질 게 터졌다는 의견이 많다. 또 이번 기회에 고질적인 공무원 줄세우기와 줄서기의 병폐를 근절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 한 전 시장 발언, 도대체 어땠길래? “내년 6월4일이 선거고 저도 내년 6월 말까지 임기입니다. 그래서 ‘나(우근민 제주지사)가 당선되면 너가 서귀포시장을 더 해라 그러면 니가 ㄱ고등학교를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게 아니냐.’ 이런 솔직히 ‘내면적인 거래’를 하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이런 내용을 참고해주시고. 시청 내에도 6급 이상 ㄱ고 출신이 50명이 있습니다. 우리보다 16년 이상된 연륜을 가진 ㄴ고는 6급 이상이 35명뿐입니다. 그리고 ㄷ고가 15명, ㄹ여고 25명 정도, ㅁ여고 5명 정도, 6급 이상만입니다. 직원까지 하면 ㄱ고등학교에 250명, ㄴ고 150명입니다. 그런데 제가 와서 보니까 ㄱ고등학교가 모든 인사에서 밀려 있었습니다. 제가 더해야 이 친구들을 다 제자리로 끌어올릴수 있고, 서귀포 시내에서 사업하는 분들 계약 하나 더 할 수 있고. 그렇게 영향을 미칠 수가 있으니까 그렇게 도와주시기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전 시장은 지난달 29일 서울에서 열린 자신의 모교 동문회 송년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 우 지사와 ‘내면적 거래’를 했다고 털어놓은 셈이다. 공무원 줄세우기와 줄서기, 공직 인사에서 모교 출신 밀어주기, 사업에서 모교 출신 밀어주기 등 지방선거에 따른 각종 폐습이 담긴 발언이 여과 없이 동문들에게 전달됐다. 그것도 사적으로 한 얘기가 아니라 축사를 한 뒤 공개적으로 발언한 것이다.
참석했던 동문들 가운데는 한 전 시장의 발언을 듣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는 동문들도 있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사회자가 한 전 시장의 발언을 제지하려고 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동문(50)은 “송년회가 끝나고 동창들과 함께 한 2차 자리에서 한 시장의 발언이 심했다는 얘기들이 나왔는데, 결국 사달이 났다”고 말했다.
■ 출신 고교별 동문 숫자 파악까지 한 전 시장은 출신 고교별 동문 숫자를 줄줄이 꿰고 있었다. 그는 지난 3일 해명 기자회견에서 고교별 동문 숫자를 알게 된 경위에 대해 “내가 ㄱ고 출신이다보니, 다른 고 출신들도 만나서 대화할 계획이었다. 직원들을 만날 때마다 ‘어느 학교 출신이냐’고 묻고 판단한 것”이라고 궁색한 해명을 했다. 시장이 직원들에게 일일이 출신 학교를 묻고 집계를 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앞서 제주시도 지난 8월 ‘인사 기록 정비’를 명분으로 소속 공무원들에게 본적과 출신 고교 정보를 제출하게 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문제가 되자 제주시 관계자는 “인사 기록카드 정비는 자료 제출을 요구하지 않고, 공무원 본인이 행정시스템을 통해 누락된 부분을 직접 수정·보완할 수 있도록 재조치했다.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에서 공무원 지역과 출신 고교를 광범위하게 파악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 노골적인 공무원 줄세우기와 줄서기 한 전 시장이 "제가 이 친구(동문)들을 다 제자리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한 발언은 자신의 동문들을 노골적으로 밀어주겠다고 한 것이나 다름 없다. 한 전 시장은 우 지사의 측근으로, 지난 8월14일 공개 모집 형식을 빌어 서귀포시장에 임명됐다. 제주도는 2006년 7월 특별자치도로 출범한 이후 도지사가 제주시장과 서귀포시장을 직접 임명한다. 행정시 서기관급 인사도 시장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공무원 줄세우기와 줄서기가 더욱 극심해졌다.
우 지사는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선거 공신과 측근 공무원들을 무리하게 챙기면서 잦은 구설수에 올랐다. 총무처에서 잔뼈가 굵은 우 지사는 자신이 ‘인사의 달인’이라며 ‘원칙과 기준에 맞게 제주도의 발전을 위한’ 인물을 발탁하겠다고 했으나 ‘자기 사람 심기’에 골몰한 모습을 보였다.
우 지사는 당선된 뒤 직전 지사였던 김태환 전 지사의 측근으로 알려졌던 고위공무원들을 서울 등 중앙부처나 연구기관에 보냈다. 중앙정부의 상황이나 교류·협력을 위해 활동해야 하는 공무원들은 ‘유배’ 보내는 듯이 보냈고, 파견된 공무원들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제주도청의 한 공무원은 “나이 50이 넘거나 사무관 정도 되면 줄서려고 한다.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지사에 당선되면 좋은 보직을 맡거나 승진을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귀포시 주민인 강아무개(56)씨는 “제주 사람으로 창피한 일이지만 터질 것이 터졌다. 지방선거가 실시된 이후 제주도 공무원 사회의 오랜 폐습이 한 전 시장의 말 실수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공무원 사회의 폐습을 근절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 검찰 수사의 향방은 검찰도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해 지난 4일 서귀포시청과 한 전 시장의 자택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였다. 이어 5일에는 우 지사와 한 전 시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민주당 제주도당의 임찬기 사무처장을 고발인 자격으로 조사했다.
검찰은 조만간 한 전 시장을 소환해 발언 경위와 사실 여부 등을 수사하는 한편 우 지사도 소환할 것으로 보인다. 한 전 시장이 말한 ‘내면적 거래’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 지사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검찰은 또 한 전 시장이 출신 고교별 동문 숫자 파악에 시청 공무원을 동원했는지, 동문이 하는 사업을 밀어줬는지 등에 대해서도 수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검찰은 시청과 한 전 시장의 자택에서 압수한 물품들을 광주 고검에 보내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우근민 제주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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