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훈씨를 지난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북촌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출소하자마자 변호사들을 찾아가 “사건이 조작됐다. 억울하다”고 호소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잊고 지내라”였다. 그러나 취직해 평범하게 살려 했던 그를, 잊을 만하면 기자들이 찾아와 심경을 물어댔다. 21년 만에 재심이 시작된 지 10개월이 흘렀다. 역사는 바뀔 수 있을까.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김기설 노트와 평소글씨 유사”
강씨쪽 변호사, 국과수 회신 받아
내년 2월께 선고 날 듯
강씨쪽 변호사, 국과수 회신 받아
내년 2월께 선고 날 듯
1991년 분신자살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신 써준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던 강기훈(49)씨의 재심에서, 강씨의 무죄 주장에 부합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필적감정 결과가 나왔다고 강씨의 변호인이 밝혔다.
12일 서울고법 형사10부(재판장 권기훈) 심리로 열린 강씨의 재심 재판 뒤 강씨의 변호를 맡은 송상교 변호사는 “국과수로부터 김기설씨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노트·낙서장 필체와 김씨의 평소 글씨가 상당히 유사하다는 내용의 회신이 도착했다. 검찰의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우리의 주장과 부합한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앞서 김기설씨의 유서와 전대협 노트·낙서장의 필적이 같다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 결과를 받아들인 상태이기 때문에, 김씨의 평소 글씨와 전대협 노트·낙서장 필적이 같다면 강씨가 유서를 대필했다는 주장은 근거를 잃게 된다.
2007년 진실화해위는 김씨의 친구 한아무개씨가 보관하고 있던 전대협 노트·낙서장을 발견하고, 국과수와 사설 감정업체 7곳에 의뢰해, “김씨의 유서와 전대협 노트 필체가 일치한다”는 결론을 얻고 강씨가 유서를 대필하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하지만 검찰은 “전대협 노트와 낙서장은 김씨 사후에 강씨 등에 의해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해 대법원은 재심 결정을 하면서도 ‘전대협 노트의 신빙성에는 여전히 의문이 있다’며 불씨를 남겨뒀다. 검찰은 재심 재판에서 전대협 노트가 진짜 김씨가 작성한 게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필적감정을 요청했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여 이번 감정이 이뤄졌다.
이처럼 필적감정은 검찰이 요청한 것이지만, 지난 11일 도착한 감정 결과를 받아본 검찰은 이날 재판에서 이번 감정 결과를 증거로 신청하지 않았다. 감정 결과가 검찰에 불리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강씨 쪽만 국과수의 필적감정 결과를 증거로 신청해 채택됐다. 검찰은 “국과수가 ‘필적이 동일하다’ 또는 ‘상이하다’고 하지 않고, 기존과 다른 형식으로 감정서를 작성했다. 최근 (감정서 작성 관련) 내부 규정이 어떤지 확인해 이번 결과에 대한 의견서를 내겠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내년 1월16일 양쪽의 최후변론을 들은 뒤 심리를 마칠 예정이어서, 강씨의 재심사건은 내년 2월께 선고가 날 것으로 보인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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