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00명 소송중…“상여금 포함해 임금지급” 고법판결 도루묵
“짐 싸라는 소리다.”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이 나온 18일 저녁, 한국지엠(GM) 노동자 9900여명의 8000억원대 체불임금 소송을 진행중인 한 변호사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분노를 터뜨렸다. 이날 대법원이 정기 상여금은 명백한 통상임금이라면서도 소급 적용은 금지한 탓에, 진행중인 소송에서 치명적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는 “노동계에서는 ‘정치적인 판결’이라고 비판하지만, 사실 정치적인 것도 아니다. 근로기준법은 강행기준인데, 이를 소급 적용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법을 무력화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애초 통상임금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것은 미국 지엠의 댄 애커슨 회장이 지난 5월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통상임금 문제를 한국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고 박 대통령이 “꼭 풀어나가겠다”고 화답한 데서 비롯했다.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사법부에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라는 논란이 일고, 이어 노동계와 재계 사이에 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에 대한 갑론을박이 치열하게 펼쳐졌다.
이런 가운데 한국지엠 노동자들은 지난해 11월 서울고법에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밀린 임금을 지급하라”는 판결까지 얻어냈다. 하지만 이날 대법원 판결로 말짱 도루룩으로 돌아가게 됐다. 결과적으로 이날 대법원 판결은 마치 박 대통령의 ‘국제 민원’을 대법원이 들어준 꼴이 됐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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