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성호(51) 연세대 원주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원주시정신건강증진센터장)
‘심리적 부검’ 한 민성호 교수
법원에서 처음 시도한 ‘심리적 부검’은 자살예방 연구의 권위자인 민성호(51·사진) 연세대 원주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원주시정신건강증진센터장)가 맡았다. 그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조직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 교수는 심리적 부검 과정에서 3일 동안 모두 12시간을 들여 ㄱ씨의 부인과 자녀들, 직장 동료 등 7명을 개별적으로 면담했다. 자료 검토까지 더해 지난여름 내내 분석에 매달렸다. 일반적인 방식보다 훨씬 더 심층적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그는 “일반적인 심리적 부검은 단순히 통계를 만들기 위한 작업인데, 재판은 이해당사자가 있기 때문에 훨씬 부담스러웠다. 나 역시 세금을 내는 처지에서 세금이 헛되이 쓰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 최대한 공정하게 하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ㄱ씨는 ‘하라면 하라’는 조직문화에서 괴로움을 혼자 감당하다 우울증이 온 것으로 조사됐다. 민 교수는 “정부는 보상 문제가 있으니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잘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업무상 재해는 보상금을 지급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한 사람이 자살하기 전 그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을 무조건 떠맡기는 조직문화를 해결해야 한다. ㄱ씨도 좋은 인재였는데 이런 분이 자살하는 건 국가적 손실이다. 조직이 직원들의 건강에 대해 사려깊게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민 교수는 “자살이 모두 업무와 관련 있다고 쉽게 인정하면 오히려 자살을 부추기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고 경계했다.
심리적 부검은 1980년대 핀란드에서 시작돼 선진국들이 시행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 1위인 우리나라는 올해 부산시에서 처음 심리적 부검을 시범실시하는 등 초기 단계다. 외국은 재판에서도 심리적 부검을 적극 실시하고 있다. 미국 법원은 심리적 부검이 증거로 인정되면 배심원이 증거의 가치를 판단하고 법원은 배심원의 판단을 원칙적으로 존중한다.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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