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대별 상황
ㄱ(8)양의 가족은 크리스마스이브가 악몽 같았다.
24일 오전 8시35분께 ㄱ양은 평소처럼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학교를 향하고 있었다. 모퉁이만 돌면 학교 정문이 나오는 골목에 낯익은 젊은 남성이 서 있었다. 조아무개(28)씨였다. 조씨는 “이야기 좀 하자”며 ㄱ양에게 접근했다. ㄱ양이 거절하자 강제로 안아서 쏘렌토 차량에 태웠다. 훔친 차였다.
1시간가량 지난 오전 9시45분께 ㄱ양의 휴대전화로 어머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로 “딸을 납치했으니 3000만원을 현금으로 준비하라”는 조씨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침 ㄱ양의 집에는 정수기 점검기사인 김아무개(39)씨가 어머니와 함께 있었다. 김씨는 울고 있는 ㄱ양의 어머니에게 이유를 물었다. ㄱ양의 납치 사실을 들은 김씨는 경찰에 신고하자고 했다. ㄱ양이 다칠 것을 우려한 어머니는 김씨를 말렸다. 김씨는 어머니를 안심시킨 뒤 곧바로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오전 9시46분 서울 성동경찰서와 관할 파출소에는 비상이 걸렸다. 경찰은 ㄱ양이 학교에 등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납치가 확실해졌다. 파출소 직원 등 근무복을 입은 경찰들은 모두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이들은 경찰 차량이 아닌 개인 차량을 이용해 서울 성동구 일대에 대한 수색에 나섰다.
조씨는 오전 10시45분 다시 ㄱ양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전 11시25분, 11시48분 ㄱ양의 휴대전화로 잇따라 전화를 건 조씨는 “현금 대신 체크카드를 준비하고 지정한 장소로 차를 타고 나오라”고 했다. 이때마다 조씨의 위치가 확인됐다. 마지막 전화가 발신된 곳은 서울 성동구 금호동 ㅎ아파트 인근이었다.
경찰은 이날 낮 12시10분께 ㅎ아파트 정문에 있던 쏘렌토 차량을 용의자의 차량으로 의심했다. 경찰이 다가가 검문을 하려 하자 조씨는 시동을 걸고 후진해 경찰이 타고 있던 승합차를 들이받았다. 차량 뒷부분이 부서졌지만 조씨는 그대로 2㎞ 이상 차를 몰아 도망쳤다. 경찰은 조씨의 차량번호를 수색중인 모든 경찰에 전달했다. 도망을 치던 조씨는 금호동 금남시장 앞에서 덜미가 잡혔다. 경찰이 탄 승용차가 조씨의 차량을 들이받자, 조씨의 차는 경찰차와 택시 사이에 끼였다. 조씨는 차를 버리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당시 성동경찰서 옥수파출소 소속 채태규(41) 경사는 동료의 차를 타고 조씨가 발견된 ㅎ아파트 방면으로 향하고 있었다. 가는 도중 두 갈래 길이 나왔다. 채 경사는 바로 차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탔다. 금남시장 앞에 이르러 채 경사는 조씨가 쏘렌토 차량에서 내려 달아나는 것을 목격하고 자신도 택시에서 내려 뒤쫓았다. 채 경사가 200m가량을 추격한 끝에 조씨를 붙잡은 시각은 낮 12시19분이었다.
경찰은 쏘렌토 차량 뒷좌석에 있던 ㄱ양을 구해냈다. ㄱ양은 담담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기만 했다고 한다. 경찰은 ㄱ양을 바로 부모에게 인계했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악몽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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