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님, 안녕하십니까?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물음이 전국 각지에서 들려옵니다. 하수상한 시절이라 하더군요. 철도노조의 파업, 전 검찰총장 찍어내기 의혹, 밀양 송전탑 사태,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 등으로 ‘안녕’이 불편해진 요즘입니다. 대화보단 불통 리더십 정치라 비판받는 지금, 대통령님은 이들의 물음에 긍정으로 답하실 수 있을지 여쭤봅니다. 대통령님은 안녕하십니까?
불통은 가부장적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가부장적 권위주의는 ‘이건 이렇게 해’, ‘저건 하지 마’의 말을 건네고, ‘예’라는 답변만 가능하게 만듭니다. 다 가족을 위해서라고 합리화하며 질문(말대꾸)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대통령님이 1년간 보여주신 모습 또한 다르지 않았습니다. 야당에는 “장외투쟁을 고집하면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 천주교 신부에겐 “국민 분열을 야기하는 일들을 용납하거나 묵과하지 않을 것”, 철도노조원에겐 “정부가 아니라면 아닌 것”이라는, 대화 권유가 아닌 위협의 말만 되풀이해 왔습니다. 일상엔 침묵하다 입을 열면 호통치는 아버지, 국민들은 대통령님에게서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있기에 거리로 나오고 있습니다.
영화 <변호인>의 송우석 변호사가 ‘국가’란 무엇인가의 질문에 답을 합니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대통령님에게 국민이란 누구인가요? 장외투쟁으로 거리에 나앉았던 야당, 대선개입의 진실을 요구하며 촛불을 든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철도 민영화 반대를 외치며 파업 중인 철도노조원…. 대통령님은 이들의 행동이 ‘국민의 저항에 부딪힐 것, 국민 분열을 야기하는 일, 국민 경제에 피해를 주는 일’이라 규정해 왔습니다. 국민을 위한다는 핑계로 말 안 듣는 국민에게 침묵을 강요했고, 그 결과 대다수 국민을 안녕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버지가 항상 옳을 수만은 없습니다. 가족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내면 그 목소리를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가장이어야 합니다. 아버지가 자신의 잘못 혹은 실수를 인정한다고 당신의 존재가 부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이 더 잘되기 위해 서로를 인정해 주는 게 건강한 가정 아닐까요.
소통의 날을 기다리는 한국외대 07 진수민
<한겨레>는 이 시대 ‘안녕하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싣는 ‘대자보판’을 지면에 마련했습니다. 사연을 전자우편(ruok@hani.co.kr)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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