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 사원에 근무시간 등 인정
“연장근무 신청 안했어도 돈 줘야”
“연장근무 신청 안했어도 돈 줘야”
야근을 자주 했는데도 회사 쪽 눈치가 보여 연장근로 신청을 제대로 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기록한 야근시간 정보가 법원에서 연장근로의 증거로 인정받았다.
한 대형 유통업체 영업사원 최아무개(34)씨와 주아무개(36)씨는 일이 많아 한달에 평균 20일가량 1~2시간씩 연장근무를 해야 했다. 하지만 회사 분위기상 연장근로 신청을 꼬박꼬박 하지 못했다. 야근을 했다는 기록이 없으니 당연히 야근수당도 받지 못했다.
최씨 등은 2012년 10~11월부터 ‘야근시계’라는 앱을 사용해 자신들의 야근시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야근시계’는 아이티(IT)산업노조가 개발한 앱이다. 앱 사용자가 야근시간과 위치정보, 야근하는 사진 등을 앱에 올리면 정보가 자동으로 자신의 전자우편 등으로 전송된다. 야근을 해도 수당을 제대로 못 받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자 스스로 야근했다는 사실을 기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최씨 등은 앱에서 전자우편으로 전달된 다섯달치 야근기록을 바탕으로 회사를 상대로 야근수당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단독 심창섭 판사는 7일 “전자우편 내역 등에 따르면, 원고들이 다섯달간 연장근로를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며 앱 기록을 증거로 인정했다.
회사는 재판 과정에서 “연장근로를 하기 전 노동자가 회사에 연장근로 신청을 해야 하는데 이들이 신청하지 않았다”며 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심 판사는 “현실적으로 연장근로가 필요한데도 사용자가 싫어하기 때문에 사실상 연장근로 신청을 포기하는 분위기가 있는 직장이라면 연장근로에 대한 승인을 얻지 않았거나 연장근로 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실제로 연장근로를 한 시간에 대해서는 그에 상당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씨 등은 5개월 동안의 기록을 토대로 지난 3년치 연장근로 수당을 청구했지만, 심 판사는 앱으로 기록한 5개월치만 인정하고 회사로 하여금 최씨에게 133만원, 주씨에게 92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앱을 개발한 나경훈 아이티노조 사무국장은 “앱으로 기록한 야근시간이 증거로 인정받은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 게 안타깝다. 회사가 근무시간을 철저하게 기록하고 적절한 수당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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