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보가 주최한 ‘남과 북 여성들의 삶 이야기 나누기’ 프로그램 참석자들이 지난해 12월30일 ‘2014년 평화 좌담’을 마친 뒤 서울 노량진 사육신공원을 찾아 활짝 웃고 있다. 왼쪽부터 박연희 전 <연길텔레비전> 피디, 김숙임 조각보 공동대표, 손혜민 <임진강> 전 직원, 윤은정 남북문화통합교육원 사무국장.
[싱크탱크 광장] ‘조각보’ 남북-조선족 여성회원 좌담
“남북이 마음을 여는 게 선행돼야 통일이 대박이 될 수 있다.”
지난 한 해 ‘남과 북 여성들의 삶 이야기 나누기’(이하 ‘삶 이야기’) 프로그램에 참가한 여성들이 던지는 2014년 평화 메시지다. ‘삶 이야기’ 프로그램은 남북 여성들의 평화와 소통을 추구하는 사단법인 조각보(공동대표 김숙임 정현경)가 2013년 추진한 ‘남과 북 여성 간의 삶 이야기(biography-dialogue)를 중심으로 하는 고도의 대화 프로그램’이다.
총 6회에 걸쳐 진행된 이 대화 모임은 독일 동서포럼의 ‘삶 이야기 나누기’ 모형을 한국 상황에 맞게 변형해 적용한 것이다. 독일의 대화 모형은 1998년 동서포럼을 창립한 악셀 슈미트 괴델리츠(71) 이사장이 창안한 것이다.
통일 전 동독에서 서독으로 망명했던 괴델리츠 이사장은 통일 뒤 자신이 살던 옛 동독지역에 구트 괴델리츠 농장을 열었다. 그는 이곳에서 주말마다 동서독인을 남녀 비율에 맞춰 10~12명 정도 초대해 대화 모임을 갖는다. 2박3일 동안 서로의 삶을 이야기하고 또 듣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것이 목표다. 지금까지 모두 2천명 이상이 참여했다.
‘삶 이야기’ 프로그램은 조각보가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 서울사무소 등의 도움을 받아 이를 남북한 여성들의 대화 및 화해 프로그램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조각보의 대화 프로그램은 남한과 북한 여성 3명씩 총 6명이 1박2일 동안 진행한다. 여성들의 진솔한 삶 이야기는 “티슈 한통을 다 쓸 정도로 많은 눈물을 쏟게 하고”(김숙임 대표) 난 뒤, 남북 여성들이 편견을 없애고 서로를 온전한 인간으로 다시 바라볼 수 있게 한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연평도 사태 이후 평화염원 여성들이 창립
모임을 주도한 조각보(www.jogakbo.or.kr, jogakbo2011@daum.net)는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사태 이후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는 여성들의 발기로 2011년 8월 창립했다. 단체의 이름인 조각보는 ‘여러 조각의 헝겊을 대어서 만든 보자기’를 의미한다. 단체의 이름을 조각보로 한 것은 ‘자투리 조각들이 모여서 아름다운 조각보를 만들듯, 상처 많은 남북 여성들이 서로를 보듬어 남북이 화해하는 데 씨앗이 되자’는 취지를 반영한 것이다. 조각보는 그동안 남북 여성들의 대화 모임인 ‘무궁화-진달래 모임’을 지속적으로 운영해오고 있으며, ‘여성평화인문학강좌’ 등을 진행해왔다.
‘삶 이야기’ 참석자들의 좌담은 지난해 12월30일 서울 노량진에 위치한 조각보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김숙임 대표와 함께 윤은정 남북문화통합교육원 사무국장(사회자·남한), 손혜민(가명·북한) ‘북 주민이 쓰는 잡지 <임진강>’ 전 직원, 박연희(재중동포) 전 <연길텔레비전> 피디 등 4명이 참여했다. 참석자들은 남북 대화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감이 함께 높아지고 있는 올해 ‘삶 이야기 나누기’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서로에 대한 진솔한 마음이 남북간 대화에도 적용돼 진정 ‘통일 대박’ 시대를 맞이할 수 있기를 소망했다.
김숙임 대표
남북 차이 발견하고
공통 역할 찾아내야 윤은정(이하 윤) ‘남과 북 여성들의 삶 이야기 나누기’ 프로그램이 참가자들에게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더 나아가 남과 북에 어떤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지 얘기해보고자 한다. 우선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박연희(이하 박) 한국에 온 지는 11월6일로 3년이 지났다. 와서 구직란에 ‘동포 절대 사절’이 너무 많아서 놀랐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몰랐던 또다른 6·25도 알게 됐다. 조선족의 6·25 참전 등이 한국 사람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중국에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손혜민(이하 손) 2011년에 한국으로 나왔다. 나오게 된 동기는 개인적 욕망이라고 할까, 뭔가 내것을 가지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알게 된 한국 사회는 너무 힘들었다. 체제상 사회문화상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이다. 북한과도 달리 누가 손을 잡아주지도 않았다.
손혜민씨
억눌려 있던 새터민
경청해주면 큰 변화 그 와중에 조각보를 알게 됐다. 진달래-무궁화 모임에 처음 참가해서 남북의 송년회나 김치 이야기 등 서민들의 밑바닥 생활을 나누면서 내 집의 온돌방처럼 느끼게 됐다. 그러면서 ‘삶 이야기’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저 자신도 깜짝 놀랐다. 울면서 나를 내 입으로 이야기하니까 내가 정리가 됐다. 사실 새터민들이 열등감이 있다. 우리가 항상 눌려 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얘기 들으며 ‘너무 생활이 똑같구나, 한 민족이라는 것이 이렇구나’ 느꼈다. 처음 나라는 것을 찾고, 처음 남북 사회를 높은 단계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통일이라는 것은 이렇게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때 제 역할에서 찾은 것이 있다. 현 상태대로라면 남북이 통일된 다음 지금보다 더 큰 싸움이 있지 않을까 싶다. 양쪽을 다 경험한 사람으로서 중재자 역할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박연희 전 피디
60만 조선족 동포부터
포용해야 진짜 통일 진정한 화해 위해 독일 대화 모델 도입 박 중국 조선족이 통일에 대해 뭘 할 수 있나 하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있다. 한국에 사는 조선족이 53만, 결혼 이주민까지 포함하면 60만 정도 된다. 그걸 포용하는 것이 진정한 통일 아닌가 생각한다. 윤 김 대표께서는 삶 이야기를 주관하시면서 어떤 점에 주목하셨나? 김숙임(이하 김) 지난 한 해 ‘삶 이야기’를 6기까지 했다. 기수별로 색깔이 다르다. 모두 다른 감동이 있다. 한분 한분 떠올리면 울컥하게 된다. 참여자들도, 고생하면서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얘기를 들으니까 내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싶고, 친밀감이 들었다고 한다. 너무들 울어서 티슈 한통을 다 썼다. 그렇게 남과 북을 떠나 여성으로서 지나온 것을 다 털어놓고 씻김굿을 한 것 같다.
윤은정 사무국장
식민지 떠올리는
통일이라면 안돼 그런 이야기 속에서 개인을 넘어 시대를 읽기도 한다. ‘삶 이야기’의 출발점이 됐던 진달래-무궁화 모임에서도 여성들의 월경 이야기로 남북의 현 상황을 가늠해보기도 했다. 남한 여성들은 초경을 12살쯤 하는데, 북한 여성들은 18살 넘어서 한다고 한다. 완경(폐경) 시기는 남한 여성이 훨씬 늦었다. 여성들은 그것을 통해 남북의 경제 상황을 피부로 느끼기도 했다. 윤 ‘삶 이야기’ 프로그램은 독일 괴델리츠 모형을 원형으로 하면서도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괴델리츠 모형에서는 사회자가 괴델리츠 이사장 한 사람인데, 조각보의 ‘삶 이야기’에서는 지속적으로 남북 여성 중에서 사회자를 배출한다. 또 괴델리츠 모델이 괴델리츠 이사장의 농장에서만 진행되는데, 조각보의 ‘삶 이야기’는 지역적 확산도 꾀하고 있다. 김 사회자 문제는 독일은 통일돼 있는데 우리는 아직 분단돼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분단 체제에서 통일로 가는 과정은 힘들고 오랜 과정을 거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많은 지도력을 필요로 한다. ‘2013년 삶 이야기’ 프로그램에는 모두 36명이 참석했고, 사회자를 12명 배출했다. 또 지역에서 ‘삶 이야기’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것을 추구해왔다. 2013년에도 대구·경북 지역에서도 ‘삶 이야기’ 모임을 했고, 앞으로는 호남과 제주 등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단체들과 네트워크를 통해 진행하고자 한다. 윤 ‘삶 이야기’의 후속 모임은 잘되고 있나? 손 ‘삶 이야기’ 참가자들이 제 생일이라고 와서 축하해주셨다. 집에서 생일파티도 했다. 그 후에도 자주 만난다. 다른 곳에서 사람들과 만나는 것하고 조각보에서 만나는 것은 다르다. 서로 진실하게 알게 되고, 새터민도 여기서 리더를 하는구나 하는 점에서 연대감을 더욱 크게 느낀다. 이렇게 속을 터놓고 얘기하는 기회를 만나기는 정말 어렵다. 특히 북한은 감시 문화이다. 그래서 북한 사람들은 북한 사람끼리도 속을 잘 터놓지 않는다. 간단히 토막치기 이야기를 한다. 그런 사람들이 자신을 터놓는다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 그런데 생각 외로, 아들에게도 흠 잡힐까 못한 얘기를 털어놓는 사람들도 많았다. 김 맞다. 어디에서도 털어놓지 않은 이야기를 했다고들 했다. 그게 괴델리츠 대화 방식의 힘인 것 같다. 괴델리츠 대화 방식은 사람들에게 선입견을 갖지 말고, 남의 이야기에 끼어들지 말고, 비판하지 말고, 자존심 상하지 않게 듣는 것을 강조한다. ‘삶 이야기’에서도 서로의 삶에 대해 비판하지 않고, 그저 경청한다. 그 속에서 개인사뿐만 아니라, 남북한의 체제를 배워나간다. 조선족 동포까지 포함하면 중국 대륙의 사회와 역사까지 보인다. 윤 ‘삶 이야기’의 분위기는 정말 굉장히 폭발적이다. 그게 일상적으로 어떻게 실천이 될 수 있나 고민되기도 한다. 김 조각보에서 일상적으로 하는 진달래-무궁화 모임의 분위기도 매번 뜨겁다. 서로 장점을 배운다. 북한 사람들은 굉장히 통이 크고 호연지기 같은 게 느껴진다. 또 사회주의국가에서 살아서 그런지 전체를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남한 사람들은 매우 섬세하다. 이런 것들이 어우러지는 감동을 서로 주고받는다. 손 새터민들은 북한에서 억눌려 있던 자기를 찾고 싶은 욕구가 한국에 와서 터져버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이를 잘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 큰 변화를 경험한다. 비로소 리더십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조각보에 온 새터민들은 열이면 열 모두 다 성장했다. 처음 온 사람과 다섯번 온 사람의 말하는 폼이 다르다. 씻김굿 같은 대화 통해 남북화해 ‘씨앗’ 준비 김 삶 이야기가 통일 과정에서 굉장히 구체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0년대 초중반 6·15 공동대표 자격으로 북한에서 열리는 남북여성모임에 가보면 너무 체제가 다르다는 데 놀란다. 그 간격을 좁혀나가는 게 중요하다. 동서독의 경우 전쟁도 겪지 않았는데도 너무나 대화가 힘들고, 낯설었다고 했다. 남북한은 더 큰 격차가 있다. 이런 격차를 줄이려고 하는 노력이 없다면 통일은 재앙이 될 수 있다. 남북이 서로 깊이 아는 것이 가장 기초적인 통일의 준비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알면서 만날 때 많은 것이 해결된다. 서로 모를 때 문제가 생긴다. ‘삶 이야기’와 같은 대화 모델은 그래서 통일 과정에서도 굉장히 구체적인 힘이 될 것이다. 통일이 남북연합단계 등을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든, 급격하게 이루어지든 우리의 삶 이야기를 같이해야 한다. 서로가 아는 분량이 달라지는 만큼, 통일의 결과도 달라진다. 윤 맞다. 한 포럼에서 통일 뒤 지방자치를 제안하는 발제자가, 북은 지방자치 경험이 없으므로 북 지역에 남의 관료를 파견해서 관리해야 한다고 말해 그 자리에 참석했던 독일의 학자들이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에서 식민지 통치하듯 통일에 대해 발상하는 것에 놀라 ‘그런 통일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관료들은 정치적 입장에서 통일을 보겠지만 시민들은 조각보의 삶의 이야기 같은 방식을 통해 통일에 대해 공부하고 경험을 넓혀가야 한다고 본다. 박 통일은 대박이라는 얘기를 간혹 듣는다. 하지만 마음에 잘 와닿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이 치고받는 과정을 통해 통일이 돼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정말 통일 대박이 되려면 먼저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과 치유가 있어야 한다. 조각보의 ‘삶 이야기’ 프로그램은 그 모델이 될 수 있다. 김 남북한 사람도 그렇지만, 고려인들이나 일본 동포들에게도 ‘삶 이야기’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중국 조선족과 일본 조선적 동포, 그리고 러시아 고려인들이 큰 차별 속에 처해 있다. 우리 안에 120만 외국인 노동자들 중 60만명 이상이 한민족이다. 북한 2만5천, 사할린(고려인 포함) 3만, 조선족 53만명 등인데, 이들도 크게 볼 때 평화통일의 동력이다. 올해에도 좋은 후원기관이나 후원자를 만나 ‘삶 이야기’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사진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김숙임 대표
남북 차이 발견하고
공통 역할 찾아내야 윤은정(이하 윤) ‘남과 북 여성들의 삶 이야기 나누기’ 프로그램이 참가자들에게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더 나아가 남과 북에 어떤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지 얘기해보고자 한다. 우선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박연희(이하 박) 한국에 온 지는 11월6일로 3년이 지났다. 와서 구직란에 ‘동포 절대 사절’이 너무 많아서 놀랐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몰랐던 또다른 6·25도 알게 됐다. 조선족의 6·25 참전 등이 한국 사람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중국에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손혜민(이하 손) 2011년에 한국으로 나왔다. 나오게 된 동기는 개인적 욕망이라고 할까, 뭔가 내것을 가지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알게 된 한국 사회는 너무 힘들었다. 체제상 사회문화상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이다. 북한과도 달리 누가 손을 잡아주지도 않았다.
손혜민씨
억눌려 있던 새터민
경청해주면 큰 변화 그 와중에 조각보를 알게 됐다. 진달래-무궁화 모임에 처음 참가해서 남북의 송년회나 김치 이야기 등 서민들의 밑바닥 생활을 나누면서 내 집의 온돌방처럼 느끼게 됐다. 그러면서 ‘삶 이야기’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저 자신도 깜짝 놀랐다. 울면서 나를 내 입으로 이야기하니까 내가 정리가 됐다. 사실 새터민들이 열등감이 있다. 우리가 항상 눌려 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얘기 들으며 ‘너무 생활이 똑같구나, 한 민족이라는 것이 이렇구나’ 느꼈다. 처음 나라는 것을 찾고, 처음 남북 사회를 높은 단계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통일이라는 것은 이렇게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때 제 역할에서 찾은 것이 있다. 현 상태대로라면 남북이 통일된 다음 지금보다 더 큰 싸움이 있지 않을까 싶다. 양쪽을 다 경험한 사람으로서 중재자 역할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박연희 전 피디
60만 조선족 동포부터
포용해야 진짜 통일 진정한 화해 위해 독일 대화 모델 도입 박 중국 조선족이 통일에 대해 뭘 할 수 있나 하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있다. 한국에 사는 조선족이 53만, 결혼 이주민까지 포함하면 60만 정도 된다. 그걸 포용하는 것이 진정한 통일 아닌가 생각한다. 윤 김 대표께서는 삶 이야기를 주관하시면서 어떤 점에 주목하셨나? 김숙임(이하 김) 지난 한 해 ‘삶 이야기’를 6기까지 했다. 기수별로 색깔이 다르다. 모두 다른 감동이 있다. 한분 한분 떠올리면 울컥하게 된다. 참여자들도, 고생하면서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얘기를 들으니까 내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싶고, 친밀감이 들었다고 한다. 너무들 울어서 티슈 한통을 다 썼다. 그렇게 남과 북을 떠나 여성으로서 지나온 것을 다 털어놓고 씻김굿을 한 것 같다.
윤은정 사무국장
식민지 떠올리는
통일이라면 안돼 그런 이야기 속에서 개인을 넘어 시대를 읽기도 한다. ‘삶 이야기’의 출발점이 됐던 진달래-무궁화 모임에서도 여성들의 월경 이야기로 남북의 현 상황을 가늠해보기도 했다. 남한 여성들은 초경을 12살쯤 하는데, 북한 여성들은 18살 넘어서 한다고 한다. 완경(폐경) 시기는 남한 여성이 훨씬 늦었다. 여성들은 그것을 통해 남북의 경제 상황을 피부로 느끼기도 했다. 윤 ‘삶 이야기’ 프로그램은 독일 괴델리츠 모형을 원형으로 하면서도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괴델리츠 모형에서는 사회자가 괴델리츠 이사장 한 사람인데, 조각보의 ‘삶 이야기’에서는 지속적으로 남북 여성 중에서 사회자를 배출한다. 또 괴델리츠 모델이 괴델리츠 이사장의 농장에서만 진행되는데, 조각보의 ‘삶 이야기’는 지역적 확산도 꾀하고 있다. 김 사회자 문제는 독일은 통일돼 있는데 우리는 아직 분단돼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분단 체제에서 통일로 가는 과정은 힘들고 오랜 과정을 거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많은 지도력을 필요로 한다. ‘2013년 삶 이야기’ 프로그램에는 모두 36명이 참석했고, 사회자를 12명 배출했다. 또 지역에서 ‘삶 이야기’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것을 추구해왔다. 2013년에도 대구·경북 지역에서도 ‘삶 이야기’ 모임을 했고, 앞으로는 호남과 제주 등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단체들과 네트워크를 통해 진행하고자 한다. 윤 ‘삶 이야기’의 후속 모임은 잘되고 있나? 손 ‘삶 이야기’ 참가자들이 제 생일이라고 와서 축하해주셨다. 집에서 생일파티도 했다. 그 후에도 자주 만난다. 다른 곳에서 사람들과 만나는 것하고 조각보에서 만나는 것은 다르다. 서로 진실하게 알게 되고, 새터민도 여기서 리더를 하는구나 하는 점에서 연대감을 더욱 크게 느낀다. 이렇게 속을 터놓고 얘기하는 기회를 만나기는 정말 어렵다. 특히 북한은 감시 문화이다. 그래서 북한 사람들은 북한 사람끼리도 속을 잘 터놓지 않는다. 간단히 토막치기 이야기를 한다. 그런 사람들이 자신을 터놓는다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 그런데 생각 외로, 아들에게도 흠 잡힐까 못한 얘기를 털어놓는 사람들도 많았다. 김 맞다. 어디에서도 털어놓지 않은 이야기를 했다고들 했다. 그게 괴델리츠 대화 방식의 힘인 것 같다. 괴델리츠 대화 방식은 사람들에게 선입견을 갖지 말고, 남의 이야기에 끼어들지 말고, 비판하지 말고, 자존심 상하지 않게 듣는 것을 강조한다. ‘삶 이야기’에서도 서로의 삶에 대해 비판하지 않고, 그저 경청한다. 그 속에서 개인사뿐만 아니라, 남북한의 체제를 배워나간다. 조선족 동포까지 포함하면 중국 대륙의 사회와 역사까지 보인다. 윤 ‘삶 이야기’의 분위기는 정말 굉장히 폭발적이다. 그게 일상적으로 어떻게 실천이 될 수 있나 고민되기도 한다. 김 조각보에서 일상적으로 하는 진달래-무궁화 모임의 분위기도 매번 뜨겁다. 서로 장점을 배운다. 북한 사람들은 굉장히 통이 크고 호연지기 같은 게 느껴진다. 또 사회주의국가에서 살아서 그런지 전체를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남한 사람들은 매우 섬세하다. 이런 것들이 어우러지는 감동을 서로 주고받는다. 손 새터민들은 북한에서 억눌려 있던 자기를 찾고 싶은 욕구가 한국에 와서 터져버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이를 잘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 큰 변화를 경험한다. 비로소 리더십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조각보에 온 새터민들은 열이면 열 모두 다 성장했다. 처음 온 사람과 다섯번 온 사람의 말하는 폼이 다르다. 씻김굿 같은 대화 통해 남북화해 ‘씨앗’ 준비 김 삶 이야기가 통일 과정에서 굉장히 구체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0년대 초중반 6·15 공동대표 자격으로 북한에서 열리는 남북여성모임에 가보면 너무 체제가 다르다는 데 놀란다. 그 간격을 좁혀나가는 게 중요하다. 동서독의 경우 전쟁도 겪지 않았는데도 너무나 대화가 힘들고, 낯설었다고 했다. 남북한은 더 큰 격차가 있다. 이런 격차를 줄이려고 하는 노력이 없다면 통일은 재앙이 될 수 있다. 남북이 서로 깊이 아는 것이 가장 기초적인 통일의 준비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알면서 만날 때 많은 것이 해결된다. 서로 모를 때 문제가 생긴다. ‘삶 이야기’와 같은 대화 모델은 그래서 통일 과정에서도 굉장히 구체적인 힘이 될 것이다. 통일이 남북연합단계 등을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든, 급격하게 이루어지든 우리의 삶 이야기를 같이해야 한다. 서로가 아는 분량이 달라지는 만큼, 통일의 결과도 달라진다. 윤 맞다. 한 포럼에서 통일 뒤 지방자치를 제안하는 발제자가, 북은 지방자치 경험이 없으므로 북 지역에 남의 관료를 파견해서 관리해야 한다고 말해 그 자리에 참석했던 독일의 학자들이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에서 식민지 통치하듯 통일에 대해 발상하는 것에 놀라 ‘그런 통일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관료들은 정치적 입장에서 통일을 보겠지만 시민들은 조각보의 삶의 이야기 같은 방식을 통해 통일에 대해 공부하고 경험을 넓혀가야 한다고 본다. 박 통일은 대박이라는 얘기를 간혹 듣는다. 하지만 마음에 잘 와닿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이 치고받는 과정을 통해 통일이 돼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정말 통일 대박이 되려면 먼저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과 치유가 있어야 한다. 조각보의 ‘삶 이야기’ 프로그램은 그 모델이 될 수 있다. 김 남북한 사람도 그렇지만, 고려인들이나 일본 동포들에게도 ‘삶 이야기’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중국 조선족과 일본 조선적 동포, 그리고 러시아 고려인들이 큰 차별 속에 처해 있다. 우리 안에 120만 외국인 노동자들 중 60만명 이상이 한민족이다. 북한 2만5천, 사할린(고려인 포함) 3만, 조선족 53만명 등인데, 이들도 크게 볼 때 평화통일의 동력이다. 올해에도 좋은 후원기관이나 후원자를 만나 ‘삶 이야기’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사진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