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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수돗물도 없는데 지하수엔 쇳가루”

등록 2014-01-20 21:26수정 2014-01-24 16:04

남태령 비닐하우스촌 힘겨운 겨울나기

버스회사 세차장 지으며 악화
땅주인 따로 있어 상수도 안돼
빈곤연대 “최소 생활기반 제공해야”
투명한 페트병에는 붉은빛 감도는 물이 가득 담겨 있었다. 뚜껑을 열려는데 장은숙(54)씨가 왈칵 눈물을 쏟았다. “이게 저희가 마셨던 물이에요. 아무리 없는 사람들이지만 이게 정말 사는 건가 싶어요.” 서울 서초구 방배2동 ‘남태령 전원마을 비닐하우스촌’에서 19일 <한겨레> 기자와 만난 장씨는 1.5ℓ짜리 페트병을 내밀며 허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100여가구가 모여 사는 이곳엔 상수도 시설이 없다. 이 비닐하우스촌은 25년 전부터 서울 지역 철거민들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만들어졌다. 땅주인이 따로 있는 탓에 서울시에서는 공동수도시설을 만들 수 없다고 했다. 전원마을 근처에 있는 비닐하우스촌은 고급 주택가가 들어선 전원마을과 극과 극을 이룬다.

주민들은 우물 여러개를 팠다. 우물마다 적게는 3가구에서 많게는 30~40가구씩 지하수를 끌어다 썼다. 장씨를 포함한 3가구가 기대어 살던 우물은 지난달 25일부터 무용지물이 됐다. 장씨는 “추위에 물이 얼었나 싶어 기술자를 부르고 열흘 넘게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언 게 아니라 우물이 말라 있었다. 펌프질해서 물이 조금 나왔는데 쇳가루가 둥둥 떠다녔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4~5년 전 비닐하우스촌과 맞닿아 있는 버스회사에서 세차장을 짓고 우물을 깊게 판 뒤 상황이 악화됐다고 입을 모았다. “세차장이 들어선 뒤로 하얀 옷을 두세번만 빨면 벌겋게 물이 들었다. 등에 두드러기가 나고, 머리가 가려워도 어쩔 수 없으니까 그냥 살았는데 이제 이 물마저 안 나오면….” 김영단(64)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버스회사가 판 두 군데 우물은, 주민들이 마시던 우물에서 10여m 떨어져 있었다. 버스회사 우물과 주민들의 우물 사이에는 파란 컨테이너가 놓여 있었다, ‘위험물 옥외저장소’라고 팻말이 붙은 컨테이너 안에는 폐유와 쓰레기 등이 가득했다.

지하수가 나오는 집도 사정은 열악하다. 이아무개(67)씨는 “욕조가 하얀색인데 물을 받아 놓으면 까맣게 되더라. 수세미로 닦아보고 락스로도 해봤는데 안 돼서 결국 염산으로 겨우 닦았다. 강남수도사업소에서 한달에 한번 1.5ℓ짜리 아리수 54병을 주긴 하지만 두 사람이 먹기엔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씨가 쓰는 우물물을 페트병에 담자, 검은색 쇳가루가 바닥에 가라앉았다.

“땅주인이 재작년부터 자기 땅에서 나가라고 하는데, 수도 설치해 달라는 말은 감히 못 하죠. 30분쯤 오르면 약수터가 있는데 손수레를 끌고 물 뜨러 가요. 무릎이 안 좋아 넘어질 때도 있지만 아끼려면 어쩔 수 없어요.” 이씨는 “오늘이 물 받으러 가는 날”이라면서 절뚝거리며 대문을 나섰다.

주민들은 서울시에 사정을 얘기했지만 답을 얻지 못했다. “2009년 7월 주소 이전도 하고 번지도 받았으니 상수도를 설치해달라”는 주민들의 요청에, 서울시 강남수도사업소는 “상수도를 설치하려면 땅주인에게 ‘사유지 사용 승낙서’를 받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사람은 물 없이 살 수 없다. 거주권 측면에서 비닐하우스에 적절한 생활환경이 제공돼야 한다. 책임 소재를 따지기 전에 관공서에서 실태 조사를 하고 최소한의 생활 기반을 조성해줘야 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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