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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72살 제자, 60년만에 갚은 ‘스승의 은혜’

등록 2014-01-26 16:16수정 2014-01-26 22:06

왼쪽부터 마정희(85)·박인규(89)씨 부부, 김복희(72)·고추자(66)씨 부부. 강진신문사 제공
왼쪽부터 마정희(85)·박인규(89)씨 부부, 김복희(72)·고추자(66)씨 부부. 강진신문사 제공
전남 강진서 농사짓는 김복희씨
1954년 월사금 대신 내준 스승에
금반지 선물 “줄여서 마음에 안차”
“목걸이를 꼭 해드렸어야 허는디, 줄여서 했더니 당체 마음이 차덜 안해라우.”

전남 강진군 군동면에서 농사를 짓는 김복희(72)씨는 26일 가슴 한켠에 아직도 남은 아쉬움을 내비쳤다. 김씨는 최근 초등학교 6학년 담임 박인규(89) 선생님에게 세 돈 짜리 반지를 선사했다.

“선생님이 절 예뻐하셨지라. 당시 월사금도 제대로 못내는 게 짠했는지 여러모로 도와주셨당께요. 졸업 뒤에도 졸업장과 사진첩을 들고 우리집에 찾아 오신 모습이 눈에 선해요.”

김씨는 한국전쟁 직후인 54년 군동면 대곡초교 6학년이었다. 한 반 학생 62명 가운데 3분의 1은 월사금을 제때 내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박 교사는 이들을 음으로 양으로 지원해 졸업시켰다.

8남매 중 둘째인 김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다. 착실하게 농사를 지은 덕분에 형편은 점차 풀렸고, 3남1녀를 모두 대학까지 졸업시켰다. 자녀들이 품을 떠나자 그는 비로소 시선을 이웃으로 돌릴 수 있었다.

“읍내 장터 오가는 길에 선생님을 가끔 마주쳤어요.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탓에 그냥 지나칠 때가 많았지요. 보은은커녕 인사조차 건네지 못하는 게 하도 미안해서 선생님 연락처를 선배한테 물어봤어요.” 김씨는 지난달 연락처를 알아낸 뒤 아내인 고추자(66)씨의 의중을 조심스럽게 떠봤다. 사연을 들은 아내는 “건강식품이나 옷가지들은 자식들이 해줄테니 오래 남을 금붙이로 하는 게 좋겠다”고 흔쾌하게 받아들였다. “금목걸이를 하려니까 닷돈은 필요해. 그러면 100만원이 넘어가더라고…. 호주머니가 가벼워서 할 수 없이 60여만원을 들고 읍내 금방을 찾아갔어. 선생님한테 ‘치수 잽시다’하면 한사코 사양하실 것같아서 그냥 혼자 저질러부렀지.”

반지가 준비되자 김씨 부부는 지난 7일 노 스승 박씨 부부를 읍내 식당으로 모셨다. 전쟁 직후 궁핍했던 시절의 학교생활을 화제로 웃음꽃을 피웠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김씨는 “선생님, 그때 이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건강하고 오래 사세요”라며 반지를 내밀었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스승의 눈가에는 물기가 촉촉하게 맺혔다. 박씨는 “당시 아이들에게 뭘 해줬다는 기억이 별로 없다. 오랜 세월이 지나 이름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 제자한테 인생 최대의 선물을 받았다”고 감개무량해 했다.

그날 이후 박씨는 반지를 꼭 끼고 다니며 가는 곳마다 고희를 넘긴 제자를 자랑한다. 박씨는 반지를 들어보이며 “듣는 이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마술반지’”라고 환하게 웃었다.

광주/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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