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수십곳 성업…강의당 100만원도
“의식 제대로 배워야…돈벌이 전락”
“의식 제대로 배워야…돈벌이 전락”
연두색 저고리에 보라색 치마를 입은 선생은 제자의 장구 소리에 맞춰 춤췄다. 28일 오후 서울시 은평구 갈현동에 있는 ‘한양굿 전수회관’에서는 굿 수업이 한창이었다. 춤추던 무속인 강영임(57)씨는 “위~”라고 소리 냈다. 혼을 부르는 것이다. 천천히 박자를 타던 장구의 리듬도 조금씩 빨라졌다. “한번 가면 4박이고 갔다가 오면 8박이야. 그게 사주팔자야. 춤사위를 통해 그걸 풀어줘야 해.” 장구를 치던 서혜경(52)씨는 “몇년 전부터 이상한 게 보이기 시작했고, 신내림만으로는 안 되고 제대로 된 의식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1년 전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굿을 가르치는 무속학원이 성업중이다. 2009년 사단법인으로 만들어진 한양굿 전수회관에는 150여명의 수강생이 다닌다고 한다. 서울의 또다른 무속전수관은 주 3일 수업에 접신을 도와주는 퇴마·강령반 등을 운영한다. 대구에 있는 한 무속학원은 신내림을 받거나 받길 희망하는 이들을 위해 장구·민요 등 실기부터 이론까지, 기초에서 전문 과정까지 교육하고 있다. 수강료는 무료를 표방하는 곳도 많지만, 한달에 수십만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개인교습도 가능하고 한 강의당 100만원 가까이 받는 곳도 있다.
일부 무속인들은 무속학원에 대해 우려한다. 무속인 송영수(59)씨는 “일부에서는 신내림을 받지 않거나 어설프게 배워 학원을 열고, 장구만 가르쳐주고 돈을 벌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름 밝히길 꺼린 한 무속인도 “대다수 제자들이 일이 잘 안 풀리면 보살 얘기를 듣고 이 길을 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어떤 곳에서는 말로 사람을 현혹해 무당의 길로 안 가도 될 사람을 불러들이기도 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학자들은 굿의 획일화를 걱정한다. 홍태한 중앙대 교수(민속학)는 ‘서울 굿판에서 무속 지식의 전승과 교육’이라는 논문에서 “서울굿은 계보와 지역을 중시하며 일대일로 전승돼 왔으나 1990년대 후반 학원이나 보존회 같은 대중교육기관이 등장하면서 점차 획일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한양굿 교습소’ ‘연수원’ ‘무속대학’ 등의 이름을 붙인 무속학원 10~20곳이 서울에서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속 전승체계에 문화적 요소가 강해진 데 따른 것이라는 풀이도 나온다. 이용범 안동대 교수(민속학)는 “기존 무당에게 내림굿을 받고 실력을 쌓았던 전승체계보다 노래, 춤, 악기, 음식 차리는 법 등을 전하는 문화적인 요소가 더 강해지면서 무속학원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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