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와 가족들이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들에게 한 해고는 모두 무효”라는 승소 판결을 받은 뒤 법정을 나와 함께 기뻐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금감원 회계조작 혐의 신고받고
6개월 조사 뒤 “혐의없음” 결론
‘신차종 판매가치’ 누락 눈감아
고용부 ‘정리해고 감독’ 문제도
“해고 무효” 고법 판결 나기까지
해고자·가족 24명 숨져
노동계 “쌍용차 국정조사 실시해야”
6개월 조사 뒤 “혐의없음” 결론
‘신차종 판매가치’ 누락 눈감아
고용부 ‘정리해고 감독’ 문제도
“해고 무효” 고법 판결 나기까지
해고자·가족 24명 숨져
노동계 “쌍용차 국정조사 실시해야”
쌍용자동차(쌍용차)가 손실을 부풀리는 등의 방식으로 회계를 조작해 정리해고를 합리화한 사실을 서울고법이 7일 인정하면서, 사전에 이를 감시·감독해야 하는 국가시스템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쌍용차가 2009년 6월 정리해고(980명에서 이후 165명)를 시도한 뒤 서울고법의 판결이 나오기까지 4년8개월 동안 정리해고의 부당성을 다투는 과정에서 금융감독원, 고용노동부, 정치권 등이 제 역할만 했더라도 사태를 조기에 해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회계조작 등과 관련한 노조의 주장은 번번이 외면당했다. 그새 24명의 쌍용차 해고자 및 가족이 숨졌고 비극은 커지기만 했다.
■ 금융감독원, 방조인가 공모인가 노동계와 정치권은 특히 “금융감독원의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금감원)이 회계조작 사실만 제대로 밝혔더라도 ‘해고가 정당하다’는 1심 판결(2012년 1월·8월)의 결론이 달리 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쌍용차노조가 회사의 회계조작 의혹을 처음 공론화한 것은 2010년 8월이다. 유형자산 손상차손이 재무제표에 반영돼 회사 가치가 기형적으로 축소된 정황을 전년도 옥쇄파업 중에 노조가 확인하고 11개월에 걸친 분석 과정을 거쳐 언론을 통해 알렸다. 하지만 감독 당국인 금융감독원은 움직이지 않았다.
노조는 이어 2011년 10월 쌍용차와 안진회계법인을 ‘회계조작 혐의’로 금융감독원에 공식 신고(금융위원회 신고 뒤 이첩)했다. 하지만 6개월여 조사 뒤인 2012년 5월 금감원은 ‘혐의없다’며 감리를 종결했다.
되레 두둔한 정황들이 이후 드러났다. 금감원은 지난해 국회 보고 때 “손상차손 약 85억원을 과다계상한 사실을 발견했으나, 위반 금액이 최소 조치수준에 미달해 별도 제재 없이 종결처리했다”고 했으나 서울고법은 이번에 유형자산 손상차손이 5176억원 이상 과다계상됐다고 지적했다. 60배 이상 차이가 난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해 7월 안진회계법인이 차종별 현금지출 고정비의 계산 근거 대신 수식오류를 표기하거나, 조서 작성일자와 감사 목적은 물론 회계사의 서명조차 갖추지 않은 엉터리 감사조서와 이를 근거로 작성한 감리결과 보고서를 금감원에 제출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이 무지했거나 알고도 방조했다는 주장이다.
쌍용차노조의 한 관계자는 “회계조작한 회사나 회계법인보다 오히려 하자가 없다고 덮어준 금감원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 국가기강을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고용노동부 ‘정리해고 신고’에 결재만 고용노동부도 책임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근로기준법은 일정 규모의 정리해고는 반드시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해고 사유·예정 인원·일정, 근로자 대표와 협의한 내용 등이 대상이다. 서울고법은 판결문에서 “(고용노동부가) 정리해고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쌍용차 정리해고 과정에서 고용노동부는 별다른 개입 없이 회사 쪽 정리해고안에 ‘결재’만 해주는 구실에 불과했다. 금감원도 눈감은 회계조작을 고용노동부가 판별할 역량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게 노동계 설명이다. 이번 항소심을 이끈 김태욱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정리해고 신고제의 취지는 가능한 범위에서 감독을 하라는 것인데 노동부가 실제 하는 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노동자가 회사의 내밀한 회계정보를 입수하거나 분석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탓에 프랑스처럼 정리해고 때 노조가 고용하는 회계사의 비용을 사용자가 내도록 하자는 제안도 노동계에서는 나온다. 김태욱 변호사는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국회의원실을 통해 금감원과 쌍용차 사이에 오간 자료 등을 간접적으로 얻어 분석할 수 있었지만, 여타의 일반 소송에선 이렇게 자료를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 다시 불붙는 ‘쌍용차 국정조사’ 애당초 새누리당이 대선공약으로 내놓았다 파기한 ‘쌍용차 국정조사’ 필요성이 다시 제기된다. 쌍용차 정리해고 과정에서 이뤄진 금감원의 방조와 고용노동부의 무능을 밝혀내고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지 않는 한 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쌍용차노조는 “금융감독원은 지금까지의 거짓말에 대한 사과, 책임자 처벌, 즉각적 재감리를 실시하고, 정치권은 회계조작의 공모관계에 대해 명백히 밝힐 수 있는 국정감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섰다. 민병두 민주당 의원(국회 정무위원회)는 “금감원의 잘못을 분명하게 따져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일 국회 환경노동위 야당 의원들도 모여 대응책을 논의했다. 홍영표 민주당 의원(환노위 간사)은 “새누리당이 약속한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2월 내 통과시키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이 개정안은 정리해고 요건과 협의절차 등을 단협에서 정하고, 해고 회피 계획 등을 고용노동부 신고가 아닌 승인제로 강제하는 내용이지만, 최초 발의된 지 2년이 넘도록 법안심사소위에 계류중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