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자 횡령 혐의 고소 사건 때
범죄 사실·구속 사유 등 옮겨 써
검찰, ‘경찰 직권 남용 혐의’ 수사
범죄 사실·구속 사유 등 옮겨 써
검찰, ‘경찰 직권 남용 혐의’ 수사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범죄사실과 구속사유를 고소인이 작성한 내용 그대로 베껴 쓴 경찰관이 직권남용 등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건설업체를 운영하던 김아무개(55)씨는 동업자인 이아무개(49)씨를 2010년 초 회삿돈 13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서울 수서경찰서에 고소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ㅈ경위는 고소인인 김씨가 작성한 ‘범죄사실 및 구속을 필요로 하는 사유’(구속사유)를 받아 그대로 구속영장 신청 서류에 적었다. 그러나 구속영장은 검찰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최종적으로 2011년 1월 불기소 처분됐다.
이후 이씨는 김씨를 무고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2012년 6월4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이뤄진 김씨의 ‘피의자 신문조서’ 내용을 보면, 김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검찰수사관 ㅇ씨에게 ‘구속사유’와 이씨에 대한 ‘피의자 진술조서’를 써달라고 해 ㅈ경위에게 넘겼던 것으로 나타났다. ㅈ경위는 이 내용을 그대로 구속영장 신청 서류에 썼을 뿐 아니라 김씨가 전달한 ‘피의자 진술조서’와 비슷한 내용으로 이씨를 신문했다. 검찰은 김씨의 컴퓨터를 압수수색해 ‘구속사유’와 ‘피의자 진술조서’를 찾아냈다.
이에 대해 김씨는 검찰에서 “(ㅇ수사관이 미리 써준 구속사유와 피의자 진술조서 등) 서류를 들고 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갔는데, 지금 기억으로는 담당 경찰관에게 파일로 넘겨주었던 것 같다”고 진술했다. 또 검찰이 “(김씨가 가지고 있던) ‘피의자 진술조서’와 실제 이씨를 상대로 이뤄진 피의자 신문조서는 질문과 답변내용 상당 부분이 일치한다”고 묻자, 김씨는 “내가 ㅇ수사관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를 출력하여 담당경찰관에게 가져다준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최근 이런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고 ㅈ경위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서울 강남경찰서에 고소했다. 이에 대해 ㅈ경위는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워낙 악성 민원처럼 고소가 오가는 사건이었고, 김씨가 작성한 구속사유 문서 내용이 크게 문제가 없어서 같은 내용을 썼다. 김씨의 편의를 봐주려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김용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인신을 구속하는 구속영장에 일방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은 수사관으로 부적절한 행위다”라고 지적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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