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자유연대 회원들이 국내 1호 ‘동물 복지농장’인 충북 음성군 대소면 동일농장에서 12일 오전 닭 살처분에 반대하는 내용의 손팻말을 든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음성/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국내1호 동물복지농장 살처분 현장
3만6천마리 처리 맡은 130여명
덩치 크고 힘센 닭에 ‘기진맥진’
“밤에도 계속 생각나 잠도 못자
공무원이니까 어쩔 수 없이…”
질식사 시킨 닭이 꿈틀대기도
환경단체 “축산미래 살처분당해”
3만6천마리 처리 맡은 130여명
덩치 크고 힘센 닭에 ‘기진맥진’
“밤에도 계속 생각나 잠도 못자
공무원이니까 어쩔 수 없이…”
질식사 시킨 닭이 꿈틀대기도
환경단체 “축산미래 살처분당해”
곳곳에 쌓여 있는 불룩한 포대자루가 좌우로 움찔거렸다. 자루 안은 10여마리의 닭들로 가득했다. 닭들은 자루 속에서 ‘꽥’ 외마디 비명들을 질러댔다. 방역요원들은 아침에 낳은 알을 품고 있던 닭들을 구석으로 몰아 날갯죽지를 잡고 포대자루에 쑤셔넣었다. 어미가 사라진 자리에 달걀만 덩그러니 남았다.
충북 음성군 대소면에 있는 국내 1호 동물복지 축산농장인 동일농장(<한겨레> 10일치 10면, 12일치 11면 참조)에서 12일 오전 10시께 닭 3만6000여마리의 ‘예방적 살처분’이 시작됐다. 새하얀 방역복을 입은 공무원 30여명은 계사 안에 들어서자마자 불을 껐다. 작은 닭장에 갇혀 옴짝달싹 못한 채 자라는 여느 양계농장과 달리 이곳의 닭들은 날아다닌다. 어두우면 닭들은 날지 못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공무원들은 움찔했고, 방역팀장은 소리 질렀다. “3명이 한 조가 돼. 두 명이 자루를 잡고, 한 명이 목을 잡으란 말이야.” 동물복지 농장의 닭들은 덩치가 크고 억세다. 잡히지 않는 닭들을 잡아야 하는 공무원들에게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어휴, 힘이 너무 세.” “불을 끄고 어떻게 넣으라는 거야.”
살처분 방역에 나선 공무원들도 힘겨워했다. “우리도 정말 괴로워요. 일주일 전에 오리를 모는데 자루에 담으니까 놀라서 뒤돌아 달려들더라고요. 밤에도 계속 생각나고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또다른 공무원은 “약 먹고 주사 맞고 누가 오고 싶겠어요. 공무원이니까 어쩔 수 없이 오는 거죠”라고 말했다. 4개 계사에 모두 130여명의 공무원이 동원됐다.
한쪽에선 파란색 넓은 비닐 위에 포대자루 30여개를 쌓아올리고 다시 비닐로 덮었다. 파란 통에 담긴 이산화탄소를 비닐 안으로 주입했다. 닭들을 질식시키는 작업이다. 닭들의 발버둥은 10여분 새 서서히 잦아들었다.
낮 12시30분께 동일농장 앞에 주차해 있던 차량에 설치된 이동식 동물사체처리기의 문이 열렸다. 고온·고압으로 사체를 열처리하는 거대한 압력밥솥이다. 포대자루 안에서 질식사한 닭들을 한번에 1000마리씩 처리한다. 사체처리기 안에는 까맣게 바닥에 눌어붙은 닭의 다리와 몸통들이 눈에 띄었다.
공무원들은 질식한 닭들이 들어 있는 포대자루를 계사 밖으로 내던졌다. 그때였다. 몇몇 포대자루에서 닭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직접 포대자루를 만져보니 몇몇 닭들은 꿈틀댔다. 온기도 느껴졌다. “아직 죽지 않았잖아요. 이런 애들을 어떻게 기계 안에 넣겠다는 겁니까.”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대표가 앞을 가로막았다. 다시 이산화탄소를 주입하기로 하고서야 조 대표는 물러섰다. 포대에서 사체처리기 위로 쏟아져나온 닭들은 다리를 뻗고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붉은 벼슬을 꼿꼿이 세우고 위용을 자랑하던 닭들은 기계 속으로 사라졌다. 4시간의 ‘처리’ 뒤 나온 ‘부산물’은 퇴비로 이용할 예정이다.
동일농장 안팎에선 동물자유연대 회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한국 축산 미래 살처분 하는 날’, ‘행정편의식 살처분 중단하라’는 글귀에 아랑곳않고 죽음의 행렬은 이어졌다. 동물자유연대 한송아 활동가는 “질병 저항력을 키우려고 동물복지 농가를 인증해준 것인데, 예방적 살처분을 하는 건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날개를 퍼덕이며 높은 횃대에 오르던 동일농장 닭 3만6000여마리의 예방적 살처분은 14일까지 이뤄진다.
음성/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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