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번호·계좌번호만 알면
유령회사 세워 대리신청 가능
거짓사유도 못걸러…4명 구속기소
금융위 “현장조사 등 심사 강화”
유령회사 세워 대리신청 가능
거짓사유도 못걸러…4명 구속기소
금융위 “현장조사 등 심사 강화”
개인의 주민등록번호와 계좌번호만 알면 주인 몰래 자동이체로 돈을 손쉽게 빼내갈 수 있는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6000여명의 계좌에서 1억여원을 빼내려 한 이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금융결제원 자동이체시스템은 유령업체가 계좌 주인 몰래 한 번에 4500만원까지 빼낼 수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당국은 자동이체서비스(CMS) 등록업체 심사 강화 등 보완책을 내놨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부장 이정수)는 18일 불법적으로 취득한 2만987명의 자동이체 대상 계좌를 금융결제원에 등록하고, 이 가운데 6539명의 계좌에서 대리운전 애플리케이션(앱) 사용요금 명목으로 1만9800원씩 모두 1억2947만여원을 빼내려 한 혐의(컴퓨터 등 사용사기 미수·정보통신망법 위반) 등으로 신아무개(34)씨 등 4명을 구속 기소하고 이아무개(34)씨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 설명을 들어보면, 신씨는 지난해 11월 금융결제원이 계좌주의 동의 여부를 직접 확인하지 않고 자동이체 명단 등록을 해주는 제도상 허점에 착안해 유령업체를 세운 뒤 자동이체로 돈을 빼내기로 했다. 신씨는 지난해 12월 인터넷을 통해 개인정보 판매상으로부터 7만6851명의 이름·주민등록번호·계좌번호 등 개인정보를 300만원에 샀다. 신씨는 지난 1월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김아무개(34)씨 명의로 유령 정보통신업체인 ㅎ소프트의 사업자등록을 한 뒤, 금융결제원에 2만987명의 자동이체 대상 계좌 명단을 등록했다. 신씨 등은 지난 1월28일 우선 6539명의 계좌에서 1만9800원씩 모두 1억2947만여원을 ‘대리운전 앱 사용요금’ 명목으로 출금해 달라고 신청했다. 하지만 다음날 금융결제원이 출금을 중단해 계좌 주인들의 돈이 빠져나가진 않았다.
신씨는 불법적으로 취득한 자동이체 계좌 명단을 금융결제원에 등록하면서 금융결제원이 자동이체 사유를 묻자, 과거 대리운전을 했던 기억을 떠올려 ‘대리운전 앱 사용요금’이라고 거짓 대답을 했다. 그런데도 자동이체 승인·등록에는 문제가 없었다. 현행 자동이체시스템은 계좌주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의무를 자동이체를 요청하는 사업주한테만 맡기고 있고, 금융결제원은 사업주가 얘기하는 자동이체 사유를 ‘수박 겉 핥기’ 식으로 확인했던 셈이다.
이처럼 계좌주 동의 확인 등의 제도가 부실한데도 ㅎ소프트와 같은 유령업체가 한달에 자동이체 출금을 요청할 수 있는 한도 액수가 1억6500만원이나 됐다. ㅎ소프트가 한 계좌에서 한 번에 자동이체로 빼갈 수 있는 한도 액수는 4500만원이었다.
이날 금융위원회는 새로 자동이체서비스를 등록하는 업체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서류만으로 자동이체서비스 승인 여부를 결정했지만 현장조사 등을 심사 절차에 추가하기로 했다. 또 출금 한도를 ‘보증’ 범위 내로 제한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소규모·영세 업종의 경우 일정 부분만 보증을 받아도 출금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출금 가능 전액에 대해 담보나 보증을 받아야만 이체할 수 있게 된다. 금융위는 계좌주에게 자동이체 동의 사실을 문자메시지로 알리고 각 금융회사가 계좌주 동의서 사본을 확인하고 보관하도록 할 방침이다.
김선식 송경화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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