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일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사고 현장. 지난 17일 이곳에선 부산외대 신입생들의 오리엔테이션 도중 건물 지붕이 무너져 10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부상했다. 2014.2.18. /연합뉴스
리조트 참사 뒤엔 ‘정부 무대책’
대설주의보 8년새 3배로 늘어
PEB공법 건물 잇단 붕괴사고
‘건축구조 설계기준’도 고시않고
1년 방치하다 19일 뒤늦게 고시
대설주의보 8년새 3배로 늘어
PEB공법 건물 잇단 붕괴사고
‘건축구조 설계기준’도 고시않고
1년 방치하다 19일 뒤늦게 고시
부산외국어대 학생 등 10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주 리조트 체육관 붕괴 참사’는 건축물 안전에 대한 정부의 안이한 인식이 부른 측면이 크다. 국토교통부가 건축물 안전을 소홀히 해온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적설 안전기준도 10년째 변함이 없다.
■ 피이비(PEB) 공법 위험 알고도 8년 ‘무대책’ 2005년 전북지역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될 정도로 유례없는 폭설에 몸살을 앓았다. 농가의 비닐하우스와 항만의 창고는 쌓인 눈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폭설로 인한 재산 피해액만 3400억원을 넘어설 정도였다. 2006년 당시 국토해양부에 보고된 ‘군산항 5부두 임항창고 붕괴 원인 조사연구 보고서’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강구조학회 소속 연구진 20여명이 작성한 보고서였다. 특히 이번에 붕괴된 리조트 체육관에 적용된 ‘피이비 공법’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 보고서를 8년 동안이나 묵살해 왔다. 특정 공법에 대한 설계기준 또는 지침을 만드는 입법례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국토부 관계자는 “어떤 공법을 사용할 것인지는 건설 상황에 따라 다른 것이고, 건축물이 지켜야 하는 하중 기준이 이미 마련돼 있는 이상 피이비 공법에 대해서만 따로 기준을 제시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공법이 활용된 건물들은 유독 잦은 붕괴 사고를 일으켜왔다. 지난 19일 오전에도 이 공법이 적용된 강원도 강릉시의 한 물류창고가 지붕 위에 쌓인 눈을 못 견디고 붕괴됐고, 지난 11일에도 울산시 북구 자동차부품업체 세진글라스에서 공장 지붕이 무너졌다.
■ ‘건축구조 설계기준’ 1년 만에 슬그머니 고시 국토부는 ‘적설하중 기준’ 등이 규정된 ‘건축구조 설계기준’도 제대로 고시하지 않고 방치해왔다. 건축법 등에 따라 재료 강도, 하중, 재료별 설계 방법 등 건축물의 안전성과 내구성의 기술적 사항을 규정하는 설계기준은 건축물 설계 때 적용된다. 이를 어기면 건축법 위반으로 처벌받는다. 그러나 국토부는 2012년 12월23일부터 1년간 이 기준을 고시하지 않았다.
정부가 2009년 12월 고시한 설계기준에는 2012년 12월23일까지로 ‘재검토 기한’이 설정돼 있다. ‘훈령·예규 등의 발령 및 관리에 관한 규정’에 따라 현실에 맞지 않는 건축기준을 주기적으로 재검토하고 정비하라는 뜻에서 3년의 재검토 기한을 둔 것이다. 하지만 국토부는 이 기한을 1년 넘기면서까지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다가 지난해 12월23일에야 재검토 기한을 2016년 12월로 연장한다고 고시했다.
국토부는 개정 고시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묵살했다. 대한건축학회의 한 관계자는 “설계기준 재검토 기한을 넘기면서 최근까지 국토부에 개정 고시를 해야 한다고 요청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토부 관계자는 “2011년 8월 마련한 설계기준이 누락돼 뒤늦게 누리집에 고시했지만, 설계기준이 없더라도 건축계에서는 기존의 기준을 따르기 때문에 크게 문제시될 것은 없다”고 말했다.
■ 적설하중 기준 10년째 제자리 건축구조 설계기준의 ‘적설하중 기준’은 지난 10년 동안 바뀌지 않았다. 건물 설계에 적용하는 지역별 최대 적설량을 정한 적설하중 기준은 2005년 첫 고시된 이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한반도 기후는 급격히 바뀌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최근 펴낸 ‘눈과 경제’ 보고서를 보면, 2003년 47번에 그쳤던 대설주의보는 2011년 156회로 크게 늘었다. 김성준 건국대 교수(사회환경시스템공학)의 2012년 ‘이상기후에 의한 폭설재해’ 보고서에도 2007년부터 이상기후로 강원도뿐 아니라 경주 등 영남지역에서도 대설이 내리면서 피해가 늘고 있다고 기록돼 있다.
더욱이 건축구조 설계기준에는 서울 등 전국 28곳의 적설하중 기준만 명시돼 있다. 지역마다 적설량이 다르지만, 전국 244개 지방자치단체가 이 28곳의 기준을 건축설계에 적용하고 있다. 신성우 한양대 교수(건축학)는 “잦은 기상이변으로 건축물 붕괴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현실에 맞는 안전기준 마련에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늦어질수록 제2, 제3의 참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경욱 노현웅 기자, 경주/박승헌 이재욱 기자
dash@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