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만에 우리 부부는 해남 땅끝마을로 두번째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살면서 힘든 시간도 많았지만 이젠 남편이 오랜 친구 같네요.
[토요판] 가족관계 증명서
얼마 전 대학 친구들과 대마도 여행을 갔습니다. 코비호를 타고 가는데 햇살도 포근하고 파도도 잔잔합니다. 잔잔한 파도 덕분에 뱃멀미도 하지 않았습니다. 푸른 바다를 보며 저의 삶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남편과 결혼하고 ‘왜 파도가 치냐’고 많이 울고 싸웠습니다. 바다에 파도가 이는 것처럼 우리 삶에도 파도가 없을 수가 있겠습니까?
저에게 신혼여행이란 마음 한쪽에 속상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었지요. 남편은 결혼식을 앞두고도 늘 바빴습니다. 남편은 당시 남도 역사기행을 준비하는 실무진이었습니다. 결혼식 전에 남편이 말하더군요.
“역사기행 코스 중 한 군데 정도 숙소를 알아봐야 하는데, 괜찮을까?”
나는 속 좁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고, ‘한 군데 정도 뭐 어떠랴!’ 싶어서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가는 곳마다 역사기행 오는 사람들이 묵을 방을 둘러보았습니다. 5·18묘역도 가고…. 신혼여행 목적지인 해남 땅끝마을에 도착하였습니다. 속상한 내 마음을 남해 바닷가가 조금이나마 풀어주었습니다. 이것은 전초전이었습니다. 매사에 집안일보다 바깥일을 더 중요시하는 남편의 생활 방식은 계속 저와 부딪쳤습니다.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기 바랐지만 늘 저의 기대와는 다르게 행동했습니다.
그래서 신혼여행을 다시 가자고 했습니다. 결혼 18년 만에 해남 땅끝마을로 신혼여행을 다시 갔습니다. 처음 신혼여행 갔던 장소로 말입니다. 남편과 나는 그때보다 흰머리도 생기고 주름도 많이 늘었습니다. 그사이 해남 땅끝에는 거대한 땅끝탑이 생겼고, 전망대도 생겼습니다. 모노레일도 생기고, 땅끝 천년숲 옛길이라는 길도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스마트폰 동영상으로 남해 바다의 파도 소리를 담아서 딸아이에게 카카오톡으로 보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다산초당과 백련사도 들르고 왔습니다. 정약용과 혜장 선사가 오간 길을 남편과 걸으며 문득 남편이 오랜 친구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제 마음을 자꾸 말로 표현합니다. 상대가 먼저 해주기를 바라다가 속상해하지 말기로 했습니다. 요즘은 남편과 잔잔한 파도입니다.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큰 파도가 올 때도 있겠지요. 큰 파도도 부서지게 마련입니다.
파도가 익숙해진 18년차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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