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후 1시께 진로교육 수업을 받는 효암고 1학년 2반 학생들이 김순남 담당 교사의 얘기를 듣고 미소를 짓고 있다. 효암고는 1학년 학생들에게 진로교육 수업을 매주 한 시간씩 배정했다. 양산/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 새내기 고등학생의 봄
▶ 고등학교 3년은 어떤 시기일까요. 청춘의 첫 장이자 가장 빛나는 한때라고도 하지만, 정작 그 시기엔 학업과 입시 부담으로 몸과 마음이 지치곤 합니다.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새내기들은 어떤 기대와 고민을 안고 있을까요. 그들을 직접 만나 얘기를 듣고, 각계각층의 인사에게서 따뜻한 격려와 청춘의 길잡이가 됐던 책 한권씩을 추천받았습니다.
찬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지난 3일 오전 10시30분, 경남 양산의 효암고등학교 강당엔 새 교복을 입은 279명의 학생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국민의례와 함께 입학식이 시작됐고, 교장의 환영사가 이어졌다. 신입생 대표는 학교생활에 대한 다짐을 발표했다. 일련의 순서가 지난 뒤엔 장학증서를 수여하는 차례가 왔다. 신입생들 가운데 중학교 시절 성적이 좋았던 학생들은 적게는 30만원에서 많게는 3년간 학비가 전액 지원되는 혜택을 받았다. 장학증서를 쥔 학생들이 내려가자, 채현국 학교법인 효암학원 이사장이 단상에 올랐다.
“장학금을 받지 못했다고 실망할 것 없습니다. 상 받은 사람은 받지 않은 사람들 덕분에 받은 겁니다.”
새 학기를 맞아 효암고를 찾았다. <한겨레> 인터뷰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줬던 채현국 선생(<한겨레> 토요판 1월4일치 20면 ‘이진순의 열림’ 참조)이 이사장으로 있는 바로 그 학교다. 이 학교에 3일간 머물며 학생들과 교사들을 두루 만났다. 새봄의 시작과 함께 고교 시절의 첫발을 내딛는 신입생의 설렘을 담고 싶었다.
“추리소설에서 본 부검의 되고파”
“신약을 개발해 도움주고 싶어요”
하림이와 남영이는 꿈이 있지만
진로 못 정한 승연인 고민이 많다
성진은 성적이 가장 큰 걱정이다
동아리 고를 즐거운 고민 중에도
밤까지 이어지는 자습은 어색
선생님은 따뜻한 격려를 건넸다
“계절마다 피는 꽃 다르듯
각자 꽃피는 시기도 달라요”
입시 현실을 가득 담은 정문의 펼침막 효암고는 나름 개성이 있지만, 완전히 남다른 학교로 보기엔 어려웠다. 학생들은 학업과 입시 부담으로 괴로워했고, 교사들은 학생의 휴대전화 사용이나 용모 등을 규제했다. 학교는 밤늦도록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학생들로 불을 밝혔다. 정문 앞에는 서울대, 연세대, 부산대 등에 몇 명이 합격했는지를 알리는 펼침막이 펄럭였다. 이 학교의 진로교육부장을 맡고 있는 김순남 교사는 이 펼침막이 부끄럽다고 했다. “솔직히 저리 광고하는 게 마음이 불편하죠. 입시에 실패한 아이들이 낙담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요. 하지만 우리가 대안학교가 아닌 이상, 입시를 외면할 수 없는 것도 현실입니다.” 입학식을 마치자마자 학생들은 바로 각자 배정받은 교실로 이동했다. 효암고 교정 곳곳에는 매화꽃이 활짝 피었다. 군데군데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가 있었고, 늦겨울에 폈던 동백은 이미 진 상태였다. 입학식에서 한 국어 교사는 고교 새내기들을 ‘꽃’에 비유했다. “여러분 꽃은 언제 피죠? 봄이요? 그렇죠. 그런데 모든 꽃이 봄에 피는 건 아니에요.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계절마다 피는 꽃이 달라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예요. 각자 꽃피우는 시기가 다를 겁니다.” 저마다의 꽃봉오리를 품고 있는 학생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교사들은 수업에 들어가 고등학교 생활에 대해 안내했다. 신입생들은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매화꽃이 핀 교정을 둘러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식당과 매점을 향해 뛰어가고, 깔깔대며 장난치는 등 여느 학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기대와 설렘을 안고 고등학교에 입학한 신입생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4일 오후 5시 신입생인 김해온, 백성진, 손승연 학생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1학년 5·6·7반에서 무작위로 한명씩 데리고 나온 학생들이었다. 공교롭게도 세 학생 모두 학교 기숙사에 살고 있었다. 효암고는 2009년 교육부로부터 기숙형 학교로 인가를 받았다. 예산 50억원을 투입해 2011년 기숙사를 준공했고, 그 이후 학년별 40명씩 총 120명이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아직 새로운 환경을 낯설어했다. 여자중학교를 졸업한 해온이는 “남자가 한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다”고 했고, 부산에서 온 성진이는 “타지에서 온 나만 빼고 다 친한 것 같아 말 붙이기가 어색하다. 친구들과 알아갈 시간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승연이는 “학교에 오래 머무는 게 적응이 안 된다”고 했다. 신입생들은 입학식 첫날부터 오후 3시까지 정규 수업을 받고, 밤 9시까지 자습을 했다. 기숙사에 거주하는 학생들은 자리를 옮겨 기숙사 학습실에서 밤 11시 반까지 자습시간을 가졌다. 학교 쪽은 “4월부터는 학생과 학부모 의사에 따라 자율적으로 자습을 하지만, 3월 한달간은 면담과 생활지도를 위해 다 같이 자습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습’은 스스로 학습한다는 의미이지만, 다른 학교들과 마찬가지로 효암고에서도 자습은 ‘타율적’으로 이뤄졌다.
“동아리 활동이 학교생활의 낙”
이들에게 지금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성진이는 “일부러 집에서 좀 떨어진 학교에 왔는데, 성적이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이라고 했다. 성진이는 부산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기숙사가 있는 이 학교를 스스로 선택했다. 소개 책자에서 본 학교의 시설물과 다양한 동아리 활동 등이 선택 이유였다. 해온이 역시 중학교 때보다 경쟁이 심해져 성적이 떨어지진 않을지 걱정했고, 승연이는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해 고민이었다.
효암고는 학생 지도와 규율 면에서도 다른 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다소 강한 규제도 있었다. 해온이는 “두발, 복장 등은 다른 학교와 비슷하다. 염색과 파마를 하면 안 되고, 교복을 줄여 입는 것과 교내에서 이성교제도 금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효암고는 기숙사 학생들이 주말에 정해진 시간 이외에 학교 밖에 출입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고, 수업과 자습시간엔 휴대전화를 맡겨야 한다. 신입생들은 이런 규칙들이 다 지켜지는지 의문을 가지면서도, 마땅히 물어볼 곳을 찾지 못했다. 10년간 고등학교 3학년 학년부장을 맡은 이강식 교사가 해명했다.
“신입생들에게 이야기한 건 원칙일 뿐입니다. 전혀 억압적인 분위기는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 반에 이성교제를 하는 학생들에게 ‘너네 둘 헤어질 거면 수능 직전에 헤어져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합니다. 기숙사 학생들도 필요한 물건을 사러 눈치껏 밖에 다녀오고, 휴대전화도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스스로 관리하기도 하죠.”
효암고 입구에는 ‘쓴맛이 사는 맛’이라고 적힌 큰 돌이 하나 있다. 채현국 이사장이 지난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인생이 쓸 때 오히려 거기서 삶이 깊어진”다는 취지로 적은 글귀였다. 이에 대해 성진이는 “삶에 굴곡이 있어야 삶의 참맛을 안다는 뜻이 아닐까”라고 글귀를 해석했고, 해온이는 “지금 힘들어도 나중엔 도움이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효암고는 다양한 동아리 활동으로 유명하다. 공연, 춤, 연극을 비롯해 방패연 만들기, 농사짓기 등의 활동을 하는 동아리가 총 34개에 이른다. 이강식 교사는 “요즘엔 입학사정관 제도로 고등학교에 동아리가 늘고 있지만, 효암고는 즐거운 학교를 만들자는 취지로 2000년대 초반부터 동아리 활동을 활성화했다”고 말했다. 교정에서 만난 고3 학생 김세현은 “여기 동아리 활동은 형식적이지 않다. 나는 철학 동아리를 직접 만들어 활동했다”고 말했다. 기자가 “철학은 어렵지 않냐”고 묻자, 세현이는 “책 읽고서 자기 느끼는 것을 얘기하는 게 철학, 자기 나름의 철학 아니겠냐”고 답했다. 동아리 선택은 신입생들에게 즐거운 고민거리다. 승연이는 “무대에 서보고 싶은데 혼자 하기는 어렵고, 다 같이 서면 부담이 덜하고 재밌을 것 같다”며 합창단에 가입하길 원했고, 해온이는 “시사토론반에 들어가고 싶은데 경쟁이 치열할 것 같다”며 걱정했다.
상당수 재학생들에게 동아리 활동은 고교 생활의 커다란 비중을 차지했다. 시사토론 동아리인 티오피(TOP)의 부장이었던 정진우(18)는 “처음엔 선배들에게 혼나지 않을 정도로만 활동했는데, 축제 때 행사를 기획하고서 선배와 선생님에게 칭찬을 많이 받았다. 그 이후에 마음가짐이 바뀌어 부장을 맡았고, 100분토론 방식의 토론을 도입하는 등 동아리 활동을 활성화시킨 것이 학교생활의 가장 큰 보람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수화봉사 동아리 에클레시아의 단장이었던 조윤하(18)는 “동아리 활동이 학교생활의 낙이었다. 수화로 안무를 만들고, 친구들과 어울려 공연을 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고 밝혔다. 동아리 활동은 교사들에게도 자랑거리였다. 진로 담당인 김순남 교사는 “2008년부터 학교 화단에 국화, 고구마, 감자, 옥수수, 배추 등을 심었다. 감자는 100일 정도면 수확을 하는데, 학생들이 직접 씨앗을 뿌리고 돌봐서 수확하는 것만큼 교육 효과가 좋은 활동이 없다”고 전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비빔밥 먹는 시간’
3일 오후 3시30분, 1학년 8반에는 최정훈 교사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렸다. 입학 첫날 자습시간부터 담임인 최 교사는 학교생활에 대한 안내를 하고 있었다.
“학교생활기록부에는 영역별로 이런 내용이 기재됩니다. 진로와 관련된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이 대학을 진학할 때 도움이 됩니다. 진로를 찾아주기 위해 여러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직업인을 초청해 특강을 열기도 하고, 소풍 대신에 학생들이 직접 기획해 직업 현장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이 반의 서하림, 우남영 학생은 비교적 빨리 자신의 진로를 선택했다. 하림이는 “사체를 부검해 사망 원인을 밝혀내는 부검의가 되고 싶다. 어릴 때 추리소설을 통해 접한 직업”이라고 했고, 남영이는 “신약을 개발해 아파서 죽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최 교사는 “지금 정한 진로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면담을 통해 학생이 해당 직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의지 등을 파악하고, 자신의 적성을 잘 파악하도록 독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4일 오전 진로 담당인 김순남 교사를 찾았다. 그는 오후 1시에 들어갈 수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날 김 교사의 오후 수업에 동행해 1학년 2반 교실로 들어섰다. 출석을 부르고 한 학기 ‘진로 수업’에 대해 안내했다. 이어서 그는 박노해 시인의 시 ‘인다라의 구슬’이 인쇄된 복사지를 한 부씩 학생들에게 돌렸다. 서른다섯 남짓 되는 학생들이 한목소리로 시를 낭송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내 한 몸 바치는 것을 미덕으로 교육 받아온/ ‘개인 없는 우리’에서/ 자유롭게 독립하여 주체적인 개인들의 연대/ ‘개인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김 교사는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나 다름없다. 옆에 있는 친구들을 단순히 경쟁 상대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우주처럼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그는 취재하러 온 기자를 학생들에게 소개했다. 50분의 수업시간 중에 남은 시간은 10여분이었다.
“안녕하세요. 한겨레신문의 윤형중 기자라고 합니다. 사실 저는 진로교육의 실패 사례입니다.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해 공과대학에 진학했으나, 전공 공부에 흥미를 붙이지 못했어요. 결국 스스로 즐겁게 한 동아리 활동에서 적성을 찾아 지금 기자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빨리 진로를 찾아야 한다는 부담을 갖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두루 경험해보며 진로를 찾았으면 좋겠어요.”
동행한 강재훈 사진부 선임기자도 한마디 덧붙였다. “저는 화학과를 졸업해 사진기자가 됐어요. 여러분은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그릇이에요. 꼭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합니다. 떠밀려서 하면 안 돼요.”
기자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라고 하자, 한 학생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제가 중학생 때 학생기자를 했는데요. 기사를 직접 쓰려고 하니까, 아이템을 찾기가 어려웠어요. 기자님은 아이템을 어떻게 찾나요?”
“저도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라 대답하기가 어렵네요. 평소 일상적으로 접하는 것을 좀 다른 시각으로 보려고 하는 자세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말을 얼버무리는 동시에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고등학교 시절이란 미래를 준비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가 과도해 미래에 저당 잡힌 현재가 되거나, 아예 현재를 포기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캡틴’ 키팅 선생의 ‘지금 이 순간을 붙잡아라’(seize the moment)는 메시지가 학생들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날 효암고에서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장난을 치며 뛰놀던 학생들의 경쾌한 발걸음은 밤 9, 10시 학교 밖을 나서는 학생들에게서 찾을 수 없었다.
학교가 다양한 꿈을 키워줄 수 있는지도 명쾌하게 답을 내리기 어렵다. 진로 담당인 김순남 교사는 “실용음악을 하고 싶은 2학년 학생이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며 찾아왔다. 일단 학교가 답이 아니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정규 수업을 받고 남는 시간을 활용해 음악에 열중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고등학교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일까. 3학년 담임인 이강식 교사가 전해준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수능을 보고 1박2일로 학급 엠티를 가는 것이 전통이에요. 여기서 가장 많이 나오는 얘기가 ‘주말에 자율학습을 나온 학생들과 종종 큰 대야에 준비한 재료들을 듬뿍 넣어서 비빔밥을 만들어 먹은 일’이에요. 그렇게 먹으면 엄청 맛있거든요. 같이 비빔밥을 만들어 먹고, 설거지를 같이 해요. 고3 학생들이 이상하게도 그게 제일 기억에 남는대요.”
학생들이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 그 시간만큼은 그 순간을 붙잡았고, 주변과 친구들을 둘러보지 않았을까. 신입생들 앞에 펼쳐진 3년이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 시간’처럼 채워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효암고 정문을 나섰다.
양산/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추리소설에서 본 부검의 되고파”
“신약을 개발해 도움주고 싶어요”
하림이와 남영이는 꿈이 있지만
진로 못 정한 승연인 고민이 많다
성진은 성적이 가장 큰 걱정이다
동아리 고를 즐거운 고민 중에도
밤까지 이어지는 자습은 어색
선생님은 따뜻한 격려를 건넸다
“계절마다 피는 꽃 다르듯
각자 꽃피는 시기도 달라요”
입시 현실을 가득 담은 정문의 펼침막 효암고는 나름 개성이 있지만, 완전히 남다른 학교로 보기엔 어려웠다. 학생들은 학업과 입시 부담으로 괴로워했고, 교사들은 학생의 휴대전화 사용이나 용모 등을 규제했다. 학교는 밤늦도록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학생들로 불을 밝혔다. 정문 앞에는 서울대, 연세대, 부산대 등에 몇 명이 합격했는지를 알리는 펼침막이 펄럭였다. 이 학교의 진로교육부장을 맡고 있는 김순남 교사는 이 펼침막이 부끄럽다고 했다. “솔직히 저리 광고하는 게 마음이 불편하죠. 입시에 실패한 아이들이 낙담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요. 하지만 우리가 대안학교가 아닌 이상, 입시를 외면할 수 없는 것도 현실입니다.” 입학식을 마치자마자 학생들은 바로 각자 배정받은 교실로 이동했다. 효암고 교정 곳곳에는 매화꽃이 활짝 피었다. 군데군데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가 있었고, 늦겨울에 폈던 동백은 이미 진 상태였다. 입학식에서 한 국어 교사는 고교 새내기들을 ‘꽃’에 비유했다. “여러분 꽃은 언제 피죠? 봄이요? 그렇죠. 그런데 모든 꽃이 봄에 피는 건 아니에요.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계절마다 피는 꽃이 달라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예요. 각자 꽃피우는 시기가 다를 겁니다.” 저마다의 꽃봉오리를 품고 있는 학생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교사들은 수업에 들어가 고등학교 생활에 대해 안내했다. 신입생들은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매화꽃이 핀 교정을 둘러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식당과 매점을 향해 뛰어가고, 깔깔대며 장난치는 등 여느 학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기대와 설렘을 안고 고등학교에 입학한 신입생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4일 오후 5시 신입생인 김해온, 백성진, 손승연 학생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1학년 5·6·7반에서 무작위로 한명씩 데리고 나온 학생들이었다. 공교롭게도 세 학생 모두 학교 기숙사에 살고 있었다. 효암고는 2009년 교육부로부터 기숙형 학교로 인가를 받았다. 예산 50억원을 투입해 2011년 기숙사를 준공했고, 그 이후 학년별 40명씩 총 120명이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아직 새로운 환경을 낯설어했다. 여자중학교를 졸업한 해온이는 “남자가 한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다”고 했고, 부산에서 온 성진이는 “타지에서 온 나만 빼고 다 친한 것 같아 말 붙이기가 어색하다. 친구들과 알아갈 시간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승연이는 “학교에 오래 머무는 게 적응이 안 된다”고 했다. 신입생들은 입학식 첫날부터 오후 3시까지 정규 수업을 받고, 밤 9시까지 자습을 했다. 기숙사에 거주하는 학생들은 자리를 옮겨 기숙사 학습실에서 밤 11시 반까지 자습시간을 가졌다. 학교 쪽은 “4월부터는 학생과 학부모 의사에 따라 자율적으로 자습을 하지만, 3월 한달간은 면담과 생활지도를 위해 다 같이 자습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습’은 스스로 학습한다는 의미이지만, 다른 학교들과 마찬가지로 효암고에서도 자습은 ‘타율적’으로 이뤄졌다.
효암고 1학년 2반 학생들은 지난 4일 진로교육 수업에서 박노해 시인의 시 ‘인다라의 구슬’을 낭송했고, 김순남 교사는 이 시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양산/강재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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