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준·안정숙 가족이 집 뒤뜰에 있는 닭장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준영이네 동물농장’이라는 푯말을 붙여놓고, 부부는 닭과 토끼, 개를 키운다. 닭들은 뒷마당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베이비트리] 시골서 아이 키우는 2030세대 (하)
지난달 28일 광주광역시에서 승용차로 전남 화순군 북면을 향해 40여분을 달렸다. 차도 옆에는 산과 논, 밭만 있고 도통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운전자가 “첩첩산중이네. 화순이 이렇게 먼 줄 몰랐네”라고 말했다. 내비게이션에서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라는 말이 들리는 순간, 신기하게도 사람 사는 동네가 나타났다. 제법 큰 농협과 마트가 보이고, 보건소와 학교가 동네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지난해 9월 서울에서 화순으로 귀촌한 안정숙(34)·정태준(33) 부부가 16개월 된 아이와 함께 그곳에 살고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여행, 인생의 터닝포인트
“마당과 텃밭이 딸린 시골집에서 책 쓰고 출판사를 운영하며 아이랑 산다고 하면 다들 부럽다고 말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마당 딸린 집’에 대한 로망이 있잖아요. 어떤 분들은 젊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열심히 돈 벌어야지 시골에서 뭐하냐며 무모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차피 인생은 선택이잖아요. 저희는 거창한 장기 계획보다 지금 당장 행복한 걸 선택했어요.”
안씨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당장 행복하기? 조금 모호하다. 사람마다 행복을 느끼는 지점은 다르다. 시골 생활이 전혀 행복으로 다가오지 않는 사람도 많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족지연능력’을 키우며 ‘언젠가의 행복’을 위해 고된 하루하루를 이겨내며 살아간다. 그런데 도시에서 적당히 만족스러운 직장을 다니던 두 사람이 왜 시골 육아를 선택했고, 어떻게 미래가 아닌 현재를 선택할 용기가 생겼을까?
부부가 귀촌을 결정하게 된 배경에는 2009년 신혼여행지로 선택한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서의 경험 때문이다. 서울에서 국회의원 정책비서로 일하던 안씨와 게임 기획자였던 정씨는 결혼 뒤 바로 직장을 그만두고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났다. 오스트레일리아 여행이라니 집안에 돈 좀 있는 걸로 사람들은 오해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여행을 ‘인생의 버킷 리스트’로 갖고 살았던 부부는 여행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워킹 홀리데이’ 제도를 이용했다. 워킹 홀리데이는 나라간에 협정을 맺어 만 18~30살 젊은이들에게 여행중인 방문국에서 취업할 수 있도록 특별히 허가해주는 제도다.
부부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1년6개월 동안 허브농장, 고기공장, 주방보조 등의 일을 하며 열심히 돈을 벌었다. 힘들게 번 돈으로 4개월간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을 일주했다. 안씨가 오스트레일리아 여행을 바탕으로 최근 펴낸 <호주와 나 때때로 남편>(책구름 펴냄)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다양하고도 험난한 경험을 했는지 알 수 있다. ‘개처럼 일해 정승처럼 쓴다’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 안씨는 “많은 이들이 결혼을 하면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지만 우리는 우리만의 행복을 찾으며 살고 싶었다. 그것이 여행이었다. 외국에서 생활하며 일하는 것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여행이 일부인 그 시간조차 좋았다”고 말했다.
호주 ‘워킹 홀리데이’ 경험 계기
‘저녁과 자연이 있는 삶’ 결심
아이 생기자 맞벌이 생활 청산
마당과 텃밭 딸린 화순으로 귀촌
번갈아 아이 보며 출판사 운영
불안 남았지만 삶 만족감 커져 신혼여행이 이별 여행이 될 뻔했던 사연 이들 부부에게 인생은 오스트레일리아 여행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그만큼 여행 경험은 강렬했다. 부부에게는 모호하고 알쏭달쏭한 행복의 개념이 이 나라 여행에서 확실하게 구체화된 셈이다. 부부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저녁이 있는 삶’ ‘가족 중심의 삶’을 목격했다. 학교와 일터로 갔던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저녁 시간을 보낸다. 주말에는 공원이나 해변에서 아이들과 가족이 신나게 뛰어논다. 으리으리하고 번쩍번쩍 빛나는 캠퍼 밴이 아니어도, 낡은 자동차와 녹이 슨 보트 한 대로도 사람들은 행복해하며 살았다. 안씨는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만의 행복을 즐기며 사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아이를 키우며 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육체노동은 견딜 수 있있지만 여행 중 복병은 의외로 배우자였다. 안씨는 여행 중 결혼에 대한 회의가 물밀듯 밀려왔다. 모든 일을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안씨는 “무계획성의 결정체”인 남편을 뒤치다꺼리하면서 지쳐갔다. 아무 계획 없이 아웃백 도로를 질주한 남편 때문에 사고를 당할 뻔했다. 청소나 밥, 게임, 에어컨 같은 일상의 문제로 둘은 자주 다퉜다. 여행 한 달이 안 돼 안씨는 이혼 결심을 했다. 그러나 비 온 뒤 땅은 굳는다고 했던가. 남편때문에 예정에 없던 길에 들어서면 짜증부터 냈던 안씨는 여행이 끝난 뒤 한결 느슨하고 여유로워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안씨는 “묘하게도 어느 길이든 들어서면 그 길만의 매력이 있었다. 남편이 아니었다면 그런 것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삶의 의외성을 즐기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 캠퍼스 커플로 7년 동안 연애를 한 사이였지만, 바쁘고 정신없는 서울에서 서로에 대해 얼마나 잘 몰랐는지도 확인했다. 정씨는 광주가 고향이고, 안씨는 전북 진안 산골마을에서 자랐다. 안씨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대자연 속에서 우리가 그토록 버리고 싶어했던 촌스럽고, 오래되고, 시골스러운 것들을 스스로 갈망하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고 말했다. 밤하늘에 총총 빛나는 별을 보며 서로의 상처와 장단점, 하고 싶은 일 등등 많은 얘기를 나눴다. 서울에서 자신들이 얼마나 외로웠고, 남들 기준에 맞춰 사느라 몸과 마음이 얼마나 피곤했는지도 알게 됐다. 둘은 앞으로는 자연과 가까운 삶을 살고, 아이가 태어나면 마당이 있는 집에서 이웃들과 친밀하게 교감하며 살자고 서로 약속했다. 우여곡절 끝에 여행을 마친 둘은 비로소 부부로서 한 팀을 이룰 수 있었다.
단순하고 간결한 삶, 일단 실천하는 삶
2011년 귀국해 안씨는 다시 국회의원 정책비서 일을 하며 틈틈이 오스트레일리아 일주 경험을 정리해 나갔다. 정씨는 소설가의 꿈을 위해 도서관에서 소설을 썼다. 정씨는 “돈 때문에, 또는 다른 사람처럼 살고 싶어,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2012년 1월 덜컥 아이가 생겼다. 아이가 생기면서 그들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다짐하던 삶을 좀더 빨리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 ‘저녁이 있는 삶’을 아이와 함께 누리고 싶었다. 아이 출산 전까지 책 원고를 완성하고, 아이가 돌이 되기 전 귀촌해 출판사를 차려 책을 내자고 둘은 약속했다. 실제로 부부는 아이 돌 한 달을 앞두고 화순으로 와 출판사를 차리고 책을 냈다.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집시 같은 생활, 경제적으로는 열악한 현실이 전혀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미래보다는 현재에 집중하자 마음먹었다. 여행을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불안했지만, 일단 지금 당장 행복하기 위해 떠났다. 떠나니 살아졌고, 그 경험 속에서 삶의 지혜를 많이 얻었다. 자신들의 의지대로 인생을 꾸려가다 보니 삶에 대한 만족감이 커졌다. 완벽한 계획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계획대로 되는 인생이 없다는 것도 여행을 통해 얻은 지혜다. 여행을 떠날 때처럼 부부는 자신들이 지금 당장 행복하기 위해 미련 없이 서울 생활을 접었다. 현재 자신들이 쓰는 책 이외에도 외부 필자의 책 세권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시골 생활을 하다 보니 적게 써서 경제적으로 궁핍하다는 생각은 덜 든다.
시골 생활은 단순하고 간결하다. 낮에는 서로 번갈아가며 일을 하거나 아이를 보고, 매끼 시간과 정성을 들여 밥을 해먹는다. 아이가 잠이 들면 또 업무에 몰두한다. 마당에 있는 나뭇잎 쓸기, 집 곳곳 수리하기 등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이제 밭에 농작물을 가꾸기 시작하면 그 일도 하루의 중요한 일과가 될 것이다.
“여행이 정답이 아니듯, 귀농·귀촌만이 행복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녜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행복을 선택하는 거죠. 저희가 도시에서 맞벌이를 하며 살았다면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몇 배는 부유했겠죠. 하지만 자연친화적이고 아이와 좀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삶, 책을 쓰고 싶다는 꿈은 포기해야 했겠죠. 결국 모든 것은 선택의 문제 아닐까요?”
화순/글·사진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오스트레일리아 머레이 브리지의 주택 뒷뜰에서 정태준씨가 잡초를 뽑고 있다. 부부는 이 곳에서 1년 간 머물렀다.
‘저녁과 자연이 있는 삶’ 결심
아이 생기자 맞벌이 생활 청산
마당과 텃밭 딸린 화순으로 귀촌
번갈아 아이 보며 출판사 운영
불안 남았지만 삶 만족감 커져 신혼여행이 이별 여행이 될 뻔했던 사연 이들 부부에게 인생은 오스트레일리아 여행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그만큼 여행 경험은 강렬했다. 부부에게는 모호하고 알쏭달쏭한 행복의 개념이 이 나라 여행에서 확실하게 구체화된 셈이다. 부부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저녁이 있는 삶’ ‘가족 중심의 삶’을 목격했다. 학교와 일터로 갔던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저녁 시간을 보낸다. 주말에는 공원이나 해변에서 아이들과 가족이 신나게 뛰어논다. 으리으리하고 번쩍번쩍 빛나는 캠퍼 밴이 아니어도, 낡은 자동차와 녹이 슨 보트 한 대로도 사람들은 행복해하며 살았다. 안씨는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만의 행복을 즐기며 사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아이를 키우며 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육체노동은 견딜 수 있있지만 여행 중 복병은 의외로 배우자였다. 안씨는 여행 중 결혼에 대한 회의가 물밀듯 밀려왔다. 모든 일을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안씨는 “무계획성의 결정체”인 남편을 뒤치다꺼리하면서 지쳐갔다. 아무 계획 없이 아웃백 도로를 질주한 남편 때문에 사고를 당할 뻔했다. 청소나 밥, 게임, 에어컨 같은 일상의 문제로 둘은 자주 다퉜다. 여행 한 달이 안 돼 안씨는 이혼 결심을 했다. 그러나 비 온 뒤 땅은 굳는다고 했던가. 남편때문에 예정에 없던 길에 들어서면 짜증부터 냈던 안씨는 여행이 끝난 뒤 한결 느슨하고 여유로워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안씨는 “묘하게도 어느 길이든 들어서면 그 길만의 매력이 있었다. 남편이 아니었다면 그런 것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삶의 의외성을 즐기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 캠퍼스 커플로 7년 동안 연애를 한 사이였지만, 바쁘고 정신없는 서울에서 서로에 대해 얼마나 잘 몰랐는지도 확인했다. 정씨는 광주가 고향이고, 안씨는 전북 진안 산골마을에서 자랐다. 안씨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대자연 속에서 우리가 그토록 버리고 싶어했던 촌스럽고, 오래되고, 시골스러운 것들을 스스로 갈망하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고 말했다. 밤하늘에 총총 빛나는 별을 보며 서로의 상처와 장단점, 하고 싶은 일 등등 많은 얘기를 나눴다. 서울에서 자신들이 얼마나 외로웠고, 남들 기준에 맞춰 사느라 몸과 마음이 얼마나 피곤했는지도 알게 됐다. 둘은 앞으로는 자연과 가까운 삶을 살고, 아이가 태어나면 마당이 있는 집에서 이웃들과 친밀하게 교감하며 살자고 서로 약속했다. 우여곡절 끝에 여행을 마친 둘은 비로소 부부로서 한 팀을 이룰 수 있었다.
2011년 1월말, 오스트레일리아 태즈매니아 섬 북부해안 근처 작은 마을 리아나의 캠핑장에서 정태준씨가 고기를 굽고 있다. 이 나라는 무료이거나 저렴한 캠핑장이 잘 갖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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