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요원·협력자에 보안법 대신
형량낮은 ‘모해증거위조’ 형법 적용
법조계 “날조죄 제대로 이해 못해”
황교안 법무 저서 내용과도 어긋나
국정원 비밀요원 ‘김 사장’ 구속
형량낮은 ‘모해증거위조’ 형법 적용
법조계 “날조죄 제대로 이해 못해”
황교안 법무 저서 내용과도 어긋나
국정원 비밀요원 ‘김 사장’ 구속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윤갑근)은 18일 위조된 중국 공문서 입수에 연루된 혐의(위조사문서 행사·모해증거위조)로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 김아무개 과장(일명 ‘김 사장’)을 구속했다. 검찰은 앞서 구속한 국정원 협력자 김아무개(61)씨에 이어 김 과장에게도 국가보안법의 ‘날조’ 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데 대해 이날 억지 논리를 동원해 적극적인 변명에 나섰다. 검찰이 국정원 직원들은 물론 증거조작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사고 있는 수사 검사들을 감싸려고 날조 혐의 적용을 배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윤갑근 팀장은 이날 김 과장과 협력자 김씨의 체포·구속영장에 국가보안법의 날조 혐의가 아닌 형법의 ‘모해증거위조’ 혐의를 적용한 데 대해 “모해증거위조죄 조문은 ‘사건에 관하여’라고 되어 있고 국가보안법의 무고·날조 조문은 ‘이 법의 죄에 대하여’라고 되어 있다. 날조를 ‘죄에 대하여’라고 한 취지는 법 해석상 전혀 없는 사실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고, 증거위조는 ‘사건에 대해’ 방향성을 갖고 위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윤 팀장은 “(날조죄를 적용하려면) 중국 공문서들이 ‘생짜로’ 위조된 건지 확정돼야 하고, 항소심 재판 진행중인 유우성(34)씨의 간첩 여부도 사실관계가 특정돼야 한다”고 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이 전혀 없는 사실을 새롭게 만들어 내야만 날조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윤 팀장의 이런 설명이 날조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한 것이란 견해가 많다. 서울의 한 부장판사는 “‘이 죄에 대하여’는 ‘이 죄가 적용되는 사건에 대하여’로 해석하는 게 맞다. 사건이 있어야 죄가 된다. 국가보안법 무고·날조죄에 ‘이 법의 죄에 대하여’라고 적시된 이유는 형량을 규정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전혀 없던 죄를 새로 만들어 내야 한다’는 취지가 아니라, 날조죄의 형량을 날조의 대상이 된 국가보안법의 다른 범죄 조항의 형량과 맞추기 위해서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검찰의 설명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견해와도 어긋난다. 황 장관은 자신이 쓴 책 <국가보안법>에서 “날조란 증거를 허위로 조작해내는 것을 말하는데, 위조·변조는 물론 위조·변조한 증거의 사용도 포함된다”고 썼다. 위조, 변조, 위조증거 사용, 변조증거 사용 행위가 모두 ‘날조’의 개념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황 장관은 또 “국가보안법의 날조죄는 형법의 모해증거인멸 등의 죄에 대응하는 것으로, 요건이 충족되면 국가보안법이 특별법으로써 형법에 우선해 적용된다”고 했다. 간첩 혐의와 같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서 증거를 위조·날조했을 때는 형법(일반법)에 앞서 국가보안법(특별법)을 우선 적용하는 것이 법 체계상 맞다는 것이다.
그런데 검찰은 국정원 직원 김 과장과 협력자 김씨의 체포·구속 영장을 청구하면서 국가보안법의 날조 혐의를 배제한 채 모해증거위조와 위조사문서 행사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이 대공수사 파트너인 국정원 직원들은 물론, 증거조작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수사 검사들에게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않기 위해 피해간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는 대목이다. 국가보안법에 따르면, 간첩 혐의를 씌우려고 증거를 날조했을 때는 간첩죄와 같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 징역 7년 이상의 형에 처해질 수 있다. 징역 10년 이하인 모해증거위조보다 법정형이 훨씬 무겁다. 김선식 이경미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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