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법 개정안 입법예고하고
시민불편 개선 이유로 엄격 적용
“외국과 단순비교 의미 없고
경찰의 자의적 해석 우려” 비판
시민불편 개선 이유로 엄격 적용
“외국과 단순비교 의미 없고
경찰의 자의적 해석 우려” 비판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 서부건설기계지부 소속 노조원 100여명은 19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 명주근린공원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인천시 옹진군 대청도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덤프트럭 사고 보상금을 롯데건설 쪽에 요구하려는 것이었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집회가 오후 4시를 넘길 즈음 경찰은 집회 차량에 설치된 확성기를 강제로 껐다. 주거지역의 집회소음 기준치를 반복적으로 넘겼다는 이유였다. 서울 서초경찰서가 두차례 측정한 집회소음은 68㏈, 70㏈이었다. 서초경찰서 관계자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시행령에서 규정한 주거지역 주간 기준치인 65㏈을 초과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5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주도한 ‘국민 총파업 대회’에서도 경찰은 소음 기준을 엄격히 적용했다. 문아무개 민주노총 조직부장이 당시 야간 촛불집회에서 확성기를 이용해 90㏈, 85㏈의 소음을 냈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소음 기준 초과 혐의를 적용해 문 부장에게 출석요구서를 보낸 상태다.
경찰은 2월 소음 규제를 강화하는 집시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데 이어 최근 집회·시위 현장의 소음 규제를 강경하게 적용하고 있다. 시민불편 해소가 명분이지만, 집회·시위를 위축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집시법 시행령은 주거지역과 학교 일대에서 집회·시위의 소음 허용 한도를 주간 65㏈, 야간 60㏈로 정해놓고 있다. 주거지역과 학교를 뺀 ‘기타 지역’은 주간 80㏈, 야간 60㏈이다. 기준을 어길 경우, 경찰은 확성기 사용 중지 등의 조처를 취할 수 있고, 이를 거부하면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입법예고된 개정안은 기타 지역의 주야간 소음 허용 기준을 5㏈씩 낮추고, 기타 지역으로 분류해온 병원·도서관을 소음 기준이 상대적으로 더 엄격한 ‘주거지역과 학교’에 편입시켰다.
그러나 소음 허용 한도 시행령이 만들어진 2004년 이래 지금까지 집회소음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경찰청의 ‘소음 기준 초과 사법처리 현황’을 보면, 2004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모두 4만1129건의 집회소음을 쟀지만 형사처벌 건수는 53건(0.13%)에 그쳤다.
무엇보다 올해 들어 소음 기준 적용이 엄격해진 것은 박근혜 정부의 ‘비정상의 정상화’에 따른 것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비정상의 정상화 과제 가운데 하나인 집회소음에 따른 시민불편을 개선하기 위해 법 적용을 엄정하게 하고 있다. 그동안 집회의 자유만 강조돼 행복추구권 등 일반 국민의 권리가 도외시돼 온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소음 규제를 강화해 집회·시위를 틀어막으려 한다고 반발한다. 현행 기준인 80㏈도 전화벨이 울릴 때 나는 소음보다 약간 높은 수준인데, 이를 강화한다면 경찰이 소음 규제를 들어 자의적으로 집회·시위를 금지할 여지가 있다는 우려에서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속적이고 만성적인 소음은 규제하는 것이 마땅하나, 일상적 소음 수준인 현행 소음 기준을 국민들의 합의도 거치지 않고 행정관청이 강화해 집회를 제한하는 것은 행정권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박주민 사무차장은 “집회와 시위는 애초에 일정한 소음을 수반하는 것을 예정하기 때문에 소음 기준을 제한하는 것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중대하게 위축시킬 수 있다. 도심의 소음도 심한 터라 지금의 집회소음 허용 기준도 상당히 엄격하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우리나라 집회소음 기준이 외국에 견줘 느슨하다고 한다. 주마다 집회소음 기준이 다른 미국의 경우 워싱턴디시는 주간과 야간이 각각 65㏈, 60㏈로 우리보다 낮고, 뉴욕은 시위대가 확성기를 사용하려면 행정관청에서 별도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독일도 주간과 야간 소음 기준이 69㏈, 59㏈로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절대 소음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 도심은 다른 나라보다 차와 사람이 밀집해 있어 배경소음이 높다. 단순 비교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김경욱 서영지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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