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적 처벌요구 없어도 죄 성립”
다른 사람을 처벌해 달라는 뜻을 분명히 밝히지 않았더라도 고소장에 허위사실을 적은 것만으로도 무고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윤아무개(70)씨는 2007년 김아무개씨와 주식 명의 이전 여부를 두고 민사소송을 벌였다. 2009년 항소심까지 패한 뒤, 윤씨는 “김씨가 2년 전 재판에서 위조된 확인서와 합의서를 증거로 제출해 사문서를 위조했다”는 내용의 고소장을 서울 서초경찰서에 냈다. 위조됐다고 주장한 두 문서 모두 윤씨에게 불리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확인서는 윤씨가 직접 서명을 했고, 합의서도 김씨와 합의한 뒤 작성한 것으로 밝혀져 윤씨는 무고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무고죄가 인정된다고 보고 윤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지만, 2심 재판부는 “확인서는 유죄가 명백하지만, 합의서는 고소장에 ‘위조 여부를 가려 달라’는 취지로만 기재하고 경찰 조서에서도 관련 내용을 언급하지 않아 별도 고소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합의서 부분을 무죄로 판단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이를 다시 뒤집었다. 재판부는 “무고죄는 타인이 형사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신고할 때 성립한다. 피고인이 고소장에 ‘합의서의 위조 및 행사 여부를 가려주기 바란다’고 기재했는데, 그 내용이 허위라면 피고인이 이 부분에 대해서도 허위사실을 신고한 것으로 봐야 한다. 명시적 처벌 요구가 없고 수사기관 진술에서도 합의서를 별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달리 볼 이유가 없다”며 일부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3일 밝혔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