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집시법 개정안 입법예고
일반 시민 ‘행복추구권’ 내세워
확성기 사용 제지 등 엄격 적용
시민들 반응은 ‘이중적’
“심각하다”면서도 “피해 크지 않아”
전문가 “국민뜻 묻는 절차 거쳐야”
일반 시민 ‘행복추구권’ 내세워
확성기 사용 제지 등 엄격 적용
시민들 반응은 ‘이중적’
“심각하다”면서도 “피해 크지 않아”
전문가 “국민뜻 묻는 절차 거쳐야”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 서부건설기계지부 소속 노조원 100여명은 지난 19일 오전 10시께 서울 서초구 잠원동 명주근린공원 앞에서 집회를 시작했다. 롯데건설 본사 앞이기도 한 이곳에서 노조원들은 인천 대청도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덤프트럭 사고 보상금을 요구했다. 6시간 동안 계속된 시위가 오후 4시를 넘길 즈음 경찰은 집회차량에 설치된 확성기를 강제로 껐다. 신반포성심24차아파트, 한신13차아파트 등이 가까운 이곳에서 주거지역 집회소음 기준치인 65데시벨(㏈)을 넘겼다는 게 이유였다. 경찰이 두 차례 측정한 수치는 68㏈, 70㏈이었다.
지난달 25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주도한 ‘국민 총파업 대회’에서도 경찰은 소음 기준을 엄격히 적용했다. 문아무개 민주노총 조직부장이 당시 야간 촛불집회에서 확성기를 이용해 90㏈, 85㏈의 소음을 냈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문 부장에게 출석요구서를 보낸 상태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시행령의 주거지역·학교(주야간 각각 65㏈, 60㏈)와 ‘기타지역’(주야간 각각 80㏈, 60㏈)의 집회·시위 소음 한도는 2004년 소음진동관리법의 ‘확성기 생활소음 기준’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졌다. 국립환경과학원의 ‘소음도’ 자료가 기준이다. 이 자료를 보면 각각 소음 80㏈, 60㏈에 ‘8시간 이상 장시간 노출됐을 때’ 청력장애와 수면장애가 시작된다. 그러나 2004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집회소음 기준 초과로 경찰이 ‘처분’을 한 건수는 53건으로, 경찰이 집회소음을 측정한 4만1129건 가운데 0.13%에 불과하다.
최근 경찰은 집회소음 규제를 강경하게 적용하는 한편 소음 기준을 강화하는 집시법 시행령 개정안을 지난 2월 입법예고하고 올해 상반기에 시행하기로 했다. 일반 시민의 ‘행복추구권’을 내세우면서다. 경찰청 관계자는 “그동안 집회의 자유만 강조되면서 소음에 따른 불편을 겪어온 일반 국민들의 권리가 도외시돼온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집회소음에 대한 시민들의 판단은 다소 이중적이다. 경찰청이 2012년 미디어리서치를 통해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1.5%는 집회 때 발생하는 소음이 ‘심각하다’고 답했지만, ‘도심에서 열린 집회로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는 응답자는 28.8%에 그쳤다. 경찰에서 맡긴 조사임을 고려해도, 시민들은 소음이 심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직접 피해를 입었다는 인식은 낮았다.
실제로 집회·시위가 자주 벌어지는 서울시청 앞 광장 부근 사무실에서 일하는 박아무개(37)씨는 “하루 종일 확성기를 틀어놓고 집회를 벌이면 소음 때문에 업무에 집중이 안 돼 힘들 때가 있다. 하지만 하루 종일인 경우는 별로 많지 않았고, 직접 피해도 거의 없었다. 나뿐 아니라 동료들도 집회에서 정당한 주장을 하는 경우라면 충분히 이해하며 지지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외국의 집회소음 기준은 우리나라보다 다소 엄격하다. 미국의 워싱턴디시와 독일은 집회소음 기준이 우리나라보다 엄격하고, 뉴욕은 시위대가 확성기를 사용하려면 별도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일본은 주간 소음 기준이 우리보다 느슨하지만, 집회 내내 소음을 측정한 뒤 최고 소음으로 위법 여부를 판단한다.
그러나 외국과의 단순 비교는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독일 등은 집회의 자유를 우리보다 훨씬 폭넓게 보장한다. 또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도심에 차와 사람이 밀집한 탓에 배경소음이 높아 단순 비교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08~2009년 국회에 제출된 ‘소음 규제 강화’ 내용이 담긴 집시법 일부개정안에 대해 “현재의 소음 기준이 일반 시민 등에게 감내할 수 없는 중대한 고통을 주고 있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편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기준을 현격히 강화하는 것은 합리적이지도 인권친화적이지도 않다”고 결정했다.
무엇보다 경찰의 집회소음 기준 강화가 일방적으로 이뤄져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속적·만성적 소음은 규제해야겠지만, 전화벨이 울릴 때보다 조금 높은 일상적 소음 수준인 현행 기준을 국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도 없이 행정관청이 강화하는 것은 집회를 제한하는 행정권 남용”이라고 말했다.
김경욱 서영지 기자 dash@hani.co.kr
집회소음 기준. 자료: 경찰청,환경부 (단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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