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이 이건희(72) 삼성전자 회장, 오른쪽이 허재호(72) 전 대주그룹 회장
비자금 사건 이 회장, 징역 일당 1억1000만원
비슷한 혐의 허 회장은 일당 5억원…이유는?
비슷한 혐의 허 회장은 일당 5억원…이유는?
허재호(72) 전 대주그룹 회장과 이건희(72) 삼성전자 회장은 1942년생 동갑내기다. 허 전 회장은 중소건설사를 기반으로 한 지방의 사업가였고, 이 회장은 글로벌 기업 삼성을 이끌고 있는 세계적인 경영자다. 그러나 법원이 책정한 두 사람의 ‘몸값’은 이 회장이 허 전 회장에게 상대가 안될정도로 낮다.
비자금 사건 수사를 받고 집행유예와 벌금형이 선고된 이 회장이, 벌금을 징역으로 때울 때 하루에 인정되는 일당은 1억1000만원이었다. 그러나 비슷한 혐의로 기소됐던 허 회장의 일당은 5억원으로 이 회장보다 5배 가까이 높다. 허 전 회장의 완승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환형유치(換刑留置)’라는 법률용어가 있다.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이를 판결이 확정된 뒤 30일 이내에 내지 못할 때 교도소에 들어가 숙식을 하며 노역으로 이를 대신하는 것이다. ‘벌금을 몸으로 때운다’는 표현이 꼭 맞는다. 그러나 제한이 있다. 벌금을 몸으로 때울 수 있는 기간이 ‘1일 이상 3년 이하’여야 한다는 것(형법 69조)이다. 판사는 벌금형을 선고할 때 이 ‘유치 기간’을 함께 정해줘야 한다. 그걸 1일로 하든 3년으로 하든, 판사 맘이라는 얘기다.
여기서 ‘허재호의 역설’이 발생했다. 2010년 1월21일, 광주고법 형사1부(당시 재판장 장병우)는 조세포탈과 횡령 혐의 등으로 기소된 허 전 회장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을 선고했다. 1심 판결 벌금형(508억원)에서 절반이 깎였다. 횡령 혐의로 조사를 받다가 허 전 회장이 구속을 면하려고 자신의 조세포탈을 인정한 것을 항소심 재판부는 ‘자수’로 봤다.
깎인 건 벌금뿐만이 아니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벌금형을 몸으로 때울 수 있는 환형유치 기간을 1심의 203일에서 49일로 확 낮췄다. 결과적으로 허 전 회장의 하루 일당은 1심 때 2억5000만원(508억÷203일)에서 항소심에서 5억원(254억÷50일)으로 2배 높아졌다. 광주고법의 봐주기 판결이 허 전 회장을 최고 몸값의 주인공으로 등극시킨 것이다. 지역에서는 이런 판결이, 법원장 출신 변호사가 동원된 전관예우와 지역법관(향판)들이 이에 호응한 합작품이라는 여론이 높다.
검찰이 청구한 허 전 회장 구속영장도 2007년 11월 광주지법에서 기각됐다. 허 전 회장은 이때 영장 실질심사를 받으려고 하루 구속돼있었기 때문에 그가 납부해야 할 최종 금액은 5억원이 깎인 249억원이고 몸으로 때워야 하는 날도 49일이다. 허 전 회장은 교도소에서 몸을 움직여 실제로 하루에 5억원을 벌고 있다. 몸이 아파 쉬어도 일한 걸로 쳐주고 숙식제공까지 된다. 대한민국 최고의 일자리다.
허 전 회장의 사례와 비교하면 이건희 회장은 억울할 법하다. 파기환송심 재판부였던 서울고법 형사4부는 2009년 8월, 이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하면서 벌금을 몸으로 때울 수 있는 기간을 1000일로 명시했다. 하루 일당은 1억1000만원(1100억÷1000일)이다. 적지 않은 액수이긴 하지만 이 회장으로서는 교도소에서 1000일 동안 일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거다. 이 전 회장은 판결이 확정된 다음달, 벌금 1100억원을 완납했다.
그밖에 법원이 고액 일당을 책정한 인물로는 ‘선박왕’이라 불리는 권혁(64) 시도상선 회장이 있다.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던 권 회장은 2013년 2월, 1심에서 징역 4년과 벌금 2340억원이 선고됐다. 벌금을 내지 않을 때 일당은 3억원으로 정해졌지만 그 기간은 780일(2년2개월)로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게다가 항소심에서 권 회장의 일부 혐의에 무죄가 선고되면서 벌금형은 없어졌다. 대한민국 사법사에서 고액 일당자로 허재호 전 회장을 따를 자가 없다는 얘기다.
형사재판에서 일반인들의 하루 일당은 보통 5만원으로 책정된다. 허 전 회장의 5억원이나 이 회장의 1억1000만원이나 일반인들에 비하면 지나치게 높은 액수다.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은 지난 20일, 환형유치 최고금액이 최소액(5만원)의 10배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형법 개정안(일명 허재호 법)을 발의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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