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수도 마닐라 거리 전경. 필리핀에서 유학중이던 한국인 여대생이 지난달 3일 마닐라에서 괴한에 납치된 뒤 한달여만인 지난 8일 주검으로 발견됐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한국인 여대생 납치 피살 충격
5일까지 몸값 요구 전화 10여회
5일부터 10일까지 전화 없어
이달 8일 납치범 잡아 살해 확인
외교부, 한달넘게 생사확인 못해
5일까지 몸값 요구 전화 10여회
5일부터 10일까지 전화 없어
이달 8일 납치범 잡아 살해 확인
외교부, 한달넘게 생사확인 못해
필리핀 마닐라에서 유학중이던 한국인 여대생이 납치 피살돼 사건은 여러모로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납치 뒤부터 피살을 확인하는 데도 한달이 넘게 걸려 외교부의 재외국민 보호 방식도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여대생 이아무개(23)씨가 납치 피살된 장소가 수도인 마닐라였다. 그동안 필리핀에서 적지 않은 한인 겨냥 납치와 피살 사건이 벌어졌지만 마닐라 지역에서 이런 범죄가 발생한 것은 처음이다.
게다가 필리핀에서 벌어진 한인 대상 범죄는 주로 유흥업소 등 이권을 둘러싼 다툼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난 2월18일 한인 관광객 허아무개(65)씨가 필리핀의 유명 관광지 앙헬레스에서 오토바이를 탄 괴한들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관광객을 상대로 한 최초의 사망 사건이다. 이번에 발생한 사건으로 필리핀에서 더 이상 안전지대도, 안전을 자신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음을 확인한 셈이다.
외교부 등의 말을 종합하면, 이씨가 피랍된 것은 지난달 3일 밤 9시께였다. 친구를 만나러 간다며 택시를 탄 이씨는 연락이 끊겼다. 납치범들은 이틀 뒤인 5일까지 이씨의 친구에게 10여차례 전화를 걸어 몸값을 요구했다. 이씨의 친구는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의 담당 영사에게 이런 사실을 알렸으며, 필리핀 경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필리핀 경찰의 ‘코리안 데스크’(한국인 관련 범죄 전담 대응팀)에 파견된 한국 경찰 1명도 여기에 참여했다. 수사는 피랍자의 안전을 고려해 비공개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납치범들은 지난달 5일부터 10일까지 연락을 끊었다. 납치범 중 한명이 이후 연락을 재개했지만 이씨의 안전 여부를 확인해달라는 우리 쪽 요구에는 응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이씨의 신변에 이상이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이씨와 마지막으로 직접 통화를 했던 지난달 5일 저녁에는 이씨가 탑승한 것으로 추정되는 택시가 발견됐으며, 택시 안에는 납치범의 일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총격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이때부터 납치범들 간의 내분에 이씨가 희생양이 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실제 이씨의 주검은 심하게 훼손돼 있어 사망 시점이 꽤 오래됐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필리핀 납치전담반은 지난달 10일 이후 계속 문자와 전화로 연락을 해온 납치범 1명을 검거하기 위해 계속 시도했다. 이에 따라 사건 발생 한달가량이 흐른 지난 8일 오후에 다시 납치범 접촉을 시도해 검거에 성공했다.
필리핀 경찰은 검거한 납치범을 통해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차량을 몰고 1시간~1시간30분 거리에 있는 이 납치범의 은거지에서 이씨의 주검을 발견했다. 사건 발생 한달여 만이었다.
검거된 납치범은 필리핀인으로 알려졌다. 납치범은 이번에 검거된 1명을 포함해 적어도 3명 이상이 될 것으로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필리핀 경찰의 납치전담팀과 우리 경찰이 최선을 다해 안전한 석방을 위해 노력했지만 이런 결과가 나오게 돼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필리핀 유학생 사회에 안전을 유의해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