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쪽 산자락이 문제의 땅 경기도 남양주시 수락산 자락에 있는 봉선사 말사 내원암. 내원암 경내를 둘러싼 산자락이 친일파 이해창의 후손들이 소유권 이전 소송을 낸 땅이다. 남양주/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친일파 후손들의 경내 5만평 땅소송 취하요청 거부로 ‘결기’
승소율 팽팽…주지스님 “패소해도 파사현정 갈길 가겠다”
한 사찰이 자칫하면 5만평의 땅을 잃게 되는 위험을 무릅쓰고 친일파 후손들과 정면승부하는 모험에 나섰다. “작은 나 대신 큰 나를 선택”=지난달 24일 저녁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봉선사에는 ‘손님’ 10여명이 찾아왔다. 친일인명사전 편찬 작업을 진행 중인 민족문제연구소와 조계종 중앙신도회, 민주노동당 남양주시지부, 남양주시청 공무원직장협의회 관계자들이었다. 봉선사와 내원암의 스님들은 이들과 2시간이 넘는 회의 끝에, 친일파 이해창의 후손들이 보내온 ‘소 취하 동의서’를 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해창은 일제로부터 조선 사람 가운데 가장 높은 작위인 후작을 받았던 매국형 친일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그 후손들이 최근 봉선사 내원암 소유의 땅 5만평에 대해 환수소송을 내면서 봉선사는 땅 문제에 휘말렸다. 이 문제가 보도되면서 여론의 비난이 거세지자, 후손 쪽은 결국 욕심을 접기로 했다. 그런데 오히려 스님들이 이를 거부하고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끝까지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기로 했다. 설사 봉선사가 패소해도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 찾기를 막는 근본대책을 마련하도록 시민들의 분노를 이끌어내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우리가 희생되더라도 친일파 후손들이 부정한 재산을 찾아가는 행태를 막을 근본책을 세우는 계기로 삼았으면 합니다.” 봉선사 주지 철안 스님은 “실정법에 따르면 승소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시대의 악행을 제거하고 모순을 해결하는 ‘파사현정’(사악함을 깨뜨리고 정의를 드러냄)의 길을 가려 한다”며 “친일파의 후손도 결국은 우리가 껴안아야 할 동포이지만, 이들이 부정한 재산을 되찾겠다고 나서는 잘못된 행태만은 뿌리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 전망=현재 5만여평 땅의 법적 소유주인 내원암과 봉선사가 ‘소 취하 동의서’를 내지 않으면 재판은 예정대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이르면 30일 최종변론에 이어 다음달 선고가 날 수도 있다. 봉선사 쪽이 생각하는 가장 긍정적인 방향은 재판부가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는 것이다. 봉선사는 지난달 8일 서울중앙지법 재판부에 ‘친일파의 재산권 보호는 헌법정신에 어긋난다’는 취지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 달라고 신청했다.
이해창 후손 쪽의 변호사는 이씨 쪽의 대응을 알아보려는 취재진과 접촉을 거부했다.
신도회·민족연·공무원협·민노당 ‘합심’ 7일 서울 조계사 부근 한 찻집에서 민족문제연구소, 조계종 신도회 관계자들과 모여 대책을 회의하고 있는 봉선사 스님들의 모습. 이순혁 기자
불교계 과거청산 움직임=봉선사의 ‘결단’은 불교계 전체의 과거사 청산 움직임으로 연결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봉선사·내원암 스님들과 조계종 중앙신도회,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7일 서울 조계사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조계종 중앙신도회 손안식 상임부의장은 “불교계의 친일 과오를 반성하고 민족정기 확립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총무원 기획실장 법안 스님도 “(이번 봉선사 소송을 계기로) 향후 종단 차원에서 사부대중의 의견을 수렴하여 역사가 바로 설 수 있도록 사건이 완결될 때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백동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은 “현재 친일파 후손들이 20여건의 재산 환수소송을 냈으며, 이 가운데 절반 가량 승소해 재산을 찾아갔다”며 “이 땅 대부분은 (단순 부역자가 아닌) 매국형 친일파들이 한-일 병합의 대가로 일제로부터 받은 재산이라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말했다. 올해 초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과 함께 ‘친일반민족 행위자 재산환수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한 최용규 의원(열린우리당)은 “17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 되찾기 문제를 방기한 것이 부끄럽고 참담하다”며 “공청회까지 마친 재산환수 특별법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말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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