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3대. 왼쪽부터 외할머니, 어머니, 나.
[토요판]
가족관계 증명서
가족관계 증명서
“짚신 두 짝일 때 돈 모아야 된다. 짚신 늘어나면 돈 모으기 힘들어.” 외할머니는 제가 남편을 처음 데려왔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아이를 하나둘 낳아 마지막으로 세번째 출산을 했을 때는 짚신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어요. 남편 직장을 따라 이 지역, 저 지역으로 자주 이사를 다니는 제게 “집은 샀어? 집이 있어야 아이들 데리고 재미지게 살지”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를 저는 알고 있습니다.
서른네살, 젊디젊은 나이에 외할머니는 세상 풍파에 몸을 던지셨습니다. 외할머니는 병과 가난 때문에 어린 두 딸을 잃었고 남편을 하늘로 보냈습니다. 남편과 사별했을 땐 뱃속엔 막내 삼촌이 있었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외할아버지의 긴 투병 생활로 재산은 사라지고 홀로 남았을 때 가슴은 얼마나 무너져 내렸을까요.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큰딸의 간청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고 항상 배가 고팠던 먹성 좋은 세 아들은 있었지만 이들을 누일 집 한 칸은 없으셨지요.
외할머니는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아침 준비를 마치고 시골길을 걷고 걸어 장터에 나가 생선을 사셨습니다. 바구니에 생선 몇 마리를 담아 머리에 이고 집집이 돌며 생선을 파셨습니다. 시장에 가게 한 칸 낼 돈이 없어 하루하루 생선을 사다 머리에 이고 땀을 비질비질 흘렸을 생각을 하니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목은 자라처럼 굽어 다니셨겠지요. 지금 봐도 박꽃처럼 곱고 아담한 외할머니를 보며 주위에서 청혼도 여러번 넣으셨지요. 하지만 외할머니는 청을 거절하며 홀로 자식들을 키우셨습니다.
외할머니는 늘 부지런하셨습니다. 늦잠이라도 잘라치면 당신은 제게 “새벽에 일어나면 하루가 더 생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외할머니는 천천히 걷는 법이 없습니다. 항상 종종거리며 다니셨고, 두 손을 쉬지 않고 움직였습니다. 아직 팔순이 되지 않으셨는데도 외할머니는 자주 편찮으십니다. 젊었을 때 워낙 고생하신지라 골병은 이미 드셨고 혈압에 당뇨로 이젠 당신이 드시는 반찬 가짓수보다 약의 가짓수가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세상 탓하지 않고 열심히 사신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모자란 손녀인 저는 용돈 몇푼 쥐여드리는 것 말고는 잘하는 게 없습니다. 다음 명절에도 외할머니를 안으며 “보고 싶었어” 어리광을 부리고 싶습니다. 그럼 당신은 또 그러시겠죠. “아이고, 늙으면 죽어야지. 오래 살면 되겠냐”고.
외할머니, 제가 당신을 애틋하게 기억하듯 우리 아이들도 ‘왕할머니’를 오래오래 추억할 수 있게 우리 곁에 오래오래 있어 주세요.
서른여덟살 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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