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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스님들 “절 땅 걸었다. 친일파 후손 한판 붙자”

등록 2005-09-11 15:29수정 2005-09-12 07:33

경기도 남양주시 수락산 중턱에 자리잡은 봉선사의 말사 내원암이 친일파 이해창 후손들과 절 주변 땅 5만여평을 놓고 소송에 휘말렸다. 미륵불 뒷편 산자락이 소송에 휘말린 산103-1번지의 일부다. 강창광 기자
경기도 남양주시 수락산 중턱에 자리잡은 봉선사의 말사 내원암이 친일파 이해창 후손들과 절 주변 땅 5만여평을 놓고 소송에 휘말렸다. 미륵불 뒷편 산자락이 소송에 휘말린 산103-1번지의 일부다. 강창광 기자
[현장]친일파 후손 재산찾기 위헌소송 낸 내원암을 가다

“친일파 후손과 타협은 없다. 친일청산을 위해 절 땅을 잃더라도 끝까지 소송를 취하하지 않겠다.”

몇 해전 개봉한 영화 <달마야 놀자>와 후속편 <달마야 서울 가자>는 조폭들과 사기꾼들의 ‘사찰 접수’에 맞서 스님들이, ‘법력’과 ‘로또’ 등 갖은 방법으로 ‘사찰 수호’에 나선다는 것을 코믹하게 그려 한바탕 웃음을 선사했다. 영화 <달마야 서울 가자>와 유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스님들이 ‘내공 걸고 절지키기’에 나선 것이다. 상대는 친일의 대가로 일본 조선총독부로부터 하사받은 절의 땅을 되찾겠다고 나선 친일파 이해창의 후손과 이를 담당한 재판부다. 스님들은 ‘내공’만 건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절 땅’을 걸었다.

송사에 휘말린 내원암 주변땅 돌아보니…


소송에 휘말린 산103-1번지는 내원암 아래 300미터 지점에 위치한 금류동천(폭포)의 중간부터 절 앞으로 이어지는 4만8천여평의 규모다. 매월당 김시습이 살았던 금류동천의 모습. 강창광 기자
소송에 휘말린 산103-1번지는 내원암 아래 300미터 지점에 위치한 금류동천(폭포)의 중간부터 절 앞으로 이어지는 4만8천여평의 규모다. 매월당 김시습이 살았던 금류동천의 모습. 강창광 기자

경기도 남양주시 봉선사의 말사인 내원암(주지 재문스님)은 수락산 중턱에 자라잡고 있는 작고 아담한 절이다. 수락산 입구에서 차를 세워놓고 등산로를 따라 40여분을 걸어 212계단의 가파른 돌층계를 오르면 내원암의 비경이 펼쳐진다. 내원암이건, 그곳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이건 수락산 등산객들을 빼면 세상 사람들과 특별하게 접촉할 일은 별로 없다. 그들은 산 속에서 나무와 풀을 벗삼는 구도자들이다. 그런데, 작고 아담한 절과 스님들이 친일파 이해창 후손들과 땅 반환 소송에 휘말려 시끄러운 속세의 한복판에 서 있다.

송사에 휘말린 문제의 땅은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 산103-1번지’로 해발 500미터가 넘는 수락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6·25때 등기부 원부가 소실돼 이 땅의 소유주의 변천사는 알 수 없으나 지난 1957년부터 대한불교 조계종 내원암 명의로 소유권 보존등기가 되어 있는 상태다. 현재 법적 소유권자는 내원암이 분명하다. 산103-1번지는 내원암 아래 300미터 지점에 위치한 금류동천(폭포)의 중간부터 절 앞으로 이어지는 4만8천여평의 규모다. 대웅전과 절 앞마당 등 절의 주요 건물은 포함되지 않지만, 별채인 칠성보전과 텃밭 등 경내지 대부분이 해당한다. 내원암이 재판에서 져 땅을 잃어버리면 천년고찰은 이해창의 후손들에게 ‘전세’를 들거나 절을 폐쇄해야 할 갈림길에 놓인다.

절 관계자는 해발 500미터의 산 중턱에 땅이 있는 데다 주변이 바위로 둘러쌓여 있어 이해창의 후손들이 소송에서 이긴다하더라도 개발가치가 그렇게 높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이었다. 절 관계자는 “도대체 왜 이런 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지 의아하다”며 “수락산 일대에만 이해창이 일제로부터 받은 토지가 40만평이 넘는다고 하는데, 분위기를 떠보기 위해 소송을 낸 것 같다”고 말했다.

“이해창이 사정받은 땅”↔“무상임대받은 것일 뿐”

이해창의 후손 21명이 국가와 내원암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지난해 12월말이다. 후손들은 소장에서 “선조(이해창)가 일정 때인 1917년 10월1일 (산103-1번지를) 사정받아 소유하고 있다가 1945년 사망함으로써 호주상속과 더불어 이아무개씨에게 상속하였고, 그가 62년 숨져 후손들이 공동상속받았다”며 “6·25 전쟁으로 등기부 원부가 전부 소실돼 등기를 회복하지 못하고 국가가 소유했으나 관련 증거를 확인했으니 원주인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손들은 산103-1번지가 이해창 소유였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1910년대 조선총독부가 제작한 임야조사부에 토지 소유자 이름에 이해창이 올라와 있다는 증거자료를 제출했다.

이에 대해 내원암쪽 변호인은 답변서에서 “임야조사부의 기재는 이해창이 소유자로서 임야를 받은 것이 아니고, 조선총독부로부터 무상으로 임대받은 것”이라며 “이해창이 소유자라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내원암에 소유권보존등기의 말소를 청구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또 변호인단은 “반민족행위로 취득한 재산을 후손들이 소유할 권한을 갖는 것은 부적합하다”고 맞섰다.

거물 친일파 이해창은 누구인가?

이해창의 친일행적은 국사편찬위원회가 펴낸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나 동아일보 등의 신문보도에 잘 나타나 있다. 이들 자료를 요약하면 이렇다.

“조선의 왕족이었던 이해창은 1910년 한일합방 당시 조선총독부로부터 ‘합병 공로작’으로 ‘후작’ 작위를 받았다. 대표적인 매국노로 알려진 이완용과 송병준이 후작보다 낮은 ‘백작’과 ‘자작’ 작위를 받았다. 이들보다 이해창이 높은 작위를 받은 것은 이해창의 당시 지위와 친일활동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증거다. 이해창은 한일합방 뒤에도 지속적인 친일활동을 벌여 1897년 설립돼 식민지 매판자본으로 성장한 한성은행의 감사 등을 지냈다. 이해창의 친일행위는 일반 국민들의 원성을 사 ‘토이해창문’이 나돌고, 1913년에는 이해창의 집 도정궁이 불타기도 했다고 기록은 전한다. 이해창은 이같은 친일행위의 대가로 일제로부터 작위는 물론 1917년에 경기도 남양주시 수락산 일대와 서울 상계동 일대에 방대한 토지와 은사금 16만8000원(현재 30억원 이상)을 받았다.”

후손들 소 취하에 “내원암 걸고 끝까지 가자”

내원암 스님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스님들은 절 땅을 모두 잃더라도 친일파와 타협하지 않겠다며 소송을 계속하겠다고 단호한 의지를 밝히고 있다. 강창광 기자
내원암 스님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스님들은 절 땅을 모두 잃더라도 친일파와 타협하지 않겠다며 소송을 계속하겠다고 단호한 의지를 밝히고 있다. 강창광 기자
이렇게 팽팽하게 맞선 양쪽의 힘겨루기는 지난 8월18일 원고쪽인 후손들이 소유권 확인소송을 돌연 취하하면서 일단락되는듯 보였다. 후손들이 소를 취하한 것은 소송을 낸 땅의 개발가치에 확신이 없었던 데다 친일파 후손의 재산찾기에 대한 여론이 악화된 것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내원암 문제가 사회쟁점화되면서 재판과정이나 언론보도를 통해 친일파 후손이라는 신분이 드러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았고, 봉선사를 비롯해 불교계의 조직적 반발이 압박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양쪽의 소송 사건은 9월1일 피고인 내원암이 ‘소 취하동의서’를 내지 않고 재판을 계속하겠다고 밝힘으로써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소송은 이르면 30일 최종변론에 이어 다음달 선고가 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소송에서 내원암이 지면 소유권 보존등기가 되어 있는 4만8천여평의 임야를 친일파 후손들에게 내 놓아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지금까지 재산반환 소송의 판례를 놓고 보면 내원암이 질 가능성이 오히려 높아 이해창의 후손들은 소송을 취하하고도 땅을 받아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내원암의 법정싸움을 책임지고 있는 봉선사 총무과장 혜문 스님(33)은 “내원암 땅을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친일파 후손들이 재산을 되찾는 소송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확실한 판례를 만들겠다”고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혜문 스님은 “불교의 종교적 신념은 시대의 악행과 부정을 제거하고 정화해나가는 파사현정(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냄)에 있다”며 “친일파와 타협할 수 없고 종교가 실리에 따라 움직일 일도 아니다”고 못박았다.

“친일파 후손 재산찾기는 위헌”

 봉선사·내원암 스님들과 조계종 중앙신도회,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7일 서울 조계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3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앞마당에서 ‘친일청산과 민족정기 확립을 위한 촛불집회’를 함께 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촛불집회는 법장 총무원장의 입적으로 무기한 연기되었다.
 봉선사·내원암 스님들과 조계종 중앙신도회,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7일 서울 조계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3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앞마당에서 ‘친일청산과 민족정기 확립을 위한 촛불집회’를 함께 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촛불집회는 법장 총무원장의 입적으로 무기한 연기되었다.

내원암은 한발 더 나아가 “민법의 소유권 조항을 친일파 후손의 재산찾기 논리에 적용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되는 것”이라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만약 재판부가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면 현재 30여건이나 진행중에 있는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찾기 소송은 헌재의 심판이 날 때까지 모두 중단된다.

위헌법률심판제청과 별도로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과 열린우리당 최용규 의원이 공동 발의해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발의 특별법’도 친일후손들이 재산찾기에 나서지 못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특별법은 식민통치에 협력,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과 작위를 받았거나 을사조약 체결을 주장한 고위 공직자 등이 당시 취득했거나 이들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을 국가가 환수토록 하는 내용이 뼈대다.

혜문 스님은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차원에서라도 매국노들의 후손들이 재산찾기에 나서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시대의 부름에 맞게 정부나 정치권이 위헌법률심판이나 특별법 제정에 전향적인 자세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불교계도 친일청산 본격적으로 나서

내원암 문제는 불교계 전체의 친일청산 움직임으로 이어질 태세다. 봉선사·내원암 스님들과 조계종 중앙신도회,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7일 서울 조계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3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앞마당에서 ‘친일청산과 민족정기 확립을 위한 촛불집회’를 함께 열겠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총무원 기획실장 법안 스님도 “(봉선사 소송을 계기로) 향후 종단 차원에서 역사가 바로 설 수 있도록 사건이 완결될 때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계종 차원에서 친일 과거사 청산에 돌입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수락산의 작은 절 내원암에서 불붙은 친일청산의 촛불은 불교계를 넘어 사회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한편, 조계종쪽은 11일 법장 총무원장의 입적으로 15일 조계사에서 장례가 예정돼,13일 열기로 한 촛불집회를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혔다.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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