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쪽 산자락이 문제의 땅 경기도 남양주시 수락산 자락에 있는 봉선사 말사 내원암. 내원암 경내를 둘러싼 산자락이 친일파 이해창의 후손들이 소유권 이전 소송을 낸 땅이다. 남양주/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왕실의 절에서 소송까지 200년 인연
친일파 후손과 임야 소유권 분쟁에 휘말린 남양주 봉선사 내원암은 조선 왕실과 200년 동안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내원암은 신라 때 창건되었다고 알려지고 있을 뿐 구체적 기록은 없다. 내원암이 본격 사찰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조선의 왕가와 인연을 맺은 조선 후기 정조 때부터다. 정조가 1794년 내원암의 서쪽에 칠성각을 짓고 친히 관응전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또 내원암은 순조, 철종, 고종 때도 조정의 지원을 받아 암자를 새로 증축했다고 기록에 전한다. 특히, 내원암은 왕실과 관련한 탄생 설화도 전해지고 있다. 옛 문헌과 내원암 스님들 사이에 전해지는 탄생 설화는 이렇다. “정조 당시 대구 팔공산 파계사에 용파라는 스님이 있었다. 그는 학식과 덕망을 겸비해 고승으로 불렸다. 정조는 용파 스님에게 왕업을 계승할 후손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용파 스님은 내원암에서 300일 기도를 올렸다. 그러나, 기도중에 이 땅에 왕자를 잉태할 여성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용파 스님은 북한산 금회암에 수행 중인 농산 스님에게 편지를 보내 이 땅의 왕자로 태어나줄 것을 부탁하였다. 어느 날 정조의 후궁 수빈 박씨는 노승이 자신에게 들어오는 꿈을 꾼 뒤 잉태해 아들을 낳았다. 그가 순조였다.” 이런 기록과 전설을 바탕에 놓고 보면 내원암은 조선 왕실의 절로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일제시대 친일의 대가로 내원암 주변의 땅을 받은 이해창과 인연을 맺으면서 조선왕실과 관계는 악연으로 바뀌어간다. 이해창이 일제로부터 왜 하필 내원암 일대의 땅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해창은 왕이 될 수 있었던 왕족이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의 아버지 이하전은 흥선대원군과 사촌형제 사이다. 이하전은 헌종 다음 왕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었던 인물로, 세도정치를 폈던 안동 김씨의 모함에 걸려 역모죄로 죽음을 당했다. 만약 이하전이 죽지 않고 살았다면 이해창도 왕위에 올랐을 지 모를 일이다. 내원암을 둘러싼 설화와 기록을 뒤쫓아보면, 이해창 후손들이 내원암을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은 순조 탄생의 배경이 되었던 왕실의 절에 소송을 내는 셈이 되었다. 이해창의 후손들은 내원암과 자신의 선조들의 친밀했던 관계를 제대로 알고 소송을 제기한 것일까? 아니면 그저 돈에 눈이 어두웠을까? 조선 왕실과 내원암의 200년 인연은 어떻게 마무리 될 것인가?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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