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전 수사결과문 살펴보니
“선박 안전점검 안이한 업무처리
통제할 법적 장치가 없다” 지적
세월호 이상징후 놓친 진도VTS
안전소홀 처벌 조항 지금도 없어
“해양안전 부처 통합” 제시했지만
손놓고 있다 ‘구조 골든타임’ 허비
“선박 안전점검 안이한 업무처리
통제할 법적 장치가 없다” 지적
세월호 이상징후 놓친 진도VTS
안전소홀 처벌 조항 지금도 없어
“해양안전 부처 통합” 제시했지만
손놓고 있다 ‘구조 골든타임’ 허비
“본건 수사 과정에서 우리나라 선박의 제조, 검사 및 사후 안전점검과 관련해 형식적이고 안이한 업무 처리가 곳곳에서 드러났음에도 이를 규제할 법적 장치가 없다.”
대검찰청 연감에 수록된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수사결과문의 일부다. 수사본부가 적시한 선박 안전 관리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은 21년 뒤 일어난 세월호 침몰사고에 대한 경고문으로 읽어도 손색이 없다. 당시 열거된 문제점만 제대로 고쳤더라면 세월호 참사는 피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당시 수사본부는 해양 안전 관리 체계에 구멍이 뚫렸는데도 이를 처벌할 마땅한 조항이 없다는 점을 짚었다. 서해훼리호가 출항할 때 선장은 항만청에 출항신고를 하지 않았다. 선박이 신고를 하지 않으면 항만청이 배를 호출해야 했지만, 1988년 이 역할이 해운조합으로 이관됐다. 그런데 해운조합은 배를 호출할 수 있는 통신시설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해운조합으로서는 불가능한 임무를 떠안은 셈이었고, 결국 항만청의 누구도 선박의 입출항 통제를 하지 않는 상황이 됐다.
수사본부는 “호출을 안 한 항만청 관제실 직원들에게 (근거 규정이 없어) 책임을 묻기 어렵다. 여객선 안전 운항에 대한 통제 기능이 방치되고 있다. 사전 신고제도 등을 의무화하고 이를 어기는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 세월호 사고의 경우도 세월호가 전용 채널을 켜지 않은 채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 관제 구역 안으로 들어갔지만, 해양경찰청은 이를 바로잡지 않았다. 또 세월호가 사고 직전 갑자기 속도를 줄이고 진행 방향을 바꾸는 등 이상 징후를 보였는데도, 진도 관제센터 직원들은 이를 놓쳤고 해경의 자동경보시스템도 고장 난 상태여서 이를 바로잡지 못했다. 해사안전법 시행령 및 연안해상교통관제 규칙 등을 보면 관제센터는 선박의 위험을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의무라고 규정했을 뿐 이를 따르지 않아도 처벌할 조항은 없다.
서해훼리호 사고는 정원 초과가 사고 원인의 하나였다. 수사본부는 “정원 통제 업무는 해운조합과 소속 운항관리사가 항만청으로부터 위임받았다. 이와 관련해 선주 등이 구속됐지만 항만청이나 해경에는 승객 통제 근거 규정이 없어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선박의 입출항을 통제하는 기관이 해운항만청, 해양경찰청, 내무부 등 여러 부처로 분산된 것도 문제로 지적했다. 수사본부는 “해양 안전 관리 행정의 분산으로 해양이 행정력 공백 상태에 놓이는 경우가 많으며, 이것이 우리나라가 해상교통사고 빈발국이 된 주요 원인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해양 안전 행정을 통합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통합 관리는 이뤄지지 않았다. 해상 관제시스템은 해경과 해양수산부로 나뉘어 있고, 세월호는 해경 관할인 진도 관제센터 관할구역에서 사고를 당했지만 해양수산부 관할인 제주 관제센터에 신고하는 바람에 신고 내용이 다시 해경으로 접수되는 동안 11분의 ‘골든 타임’을 허비하기도 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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