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안전중심 재편” 목소리
정비 인력 줄이고 주기도 듬성
모든 부품 전수 검사도 없애
불량 브레이크 납품됐는데
어떤 열차 장착됐는지 몰라
정비 인력 줄이고 주기도 듬성
모든 부품 전수 검사도 없애
불량 브레이크 납품됐는데
어떤 열차 장착됐는지 몰라
지난 2일 발생한 초유의 지하철 추돌 사고와 관련해 지난 수년 동안 진행된 각종 제도 개편이 지하철 안전을 위협하는 방향으로 진행돼 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지하철 관리 체계를 ‘안전 중심’으로 새롭게 짜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수년 동안 지하철과 관련해 완화된 주요 규제는 지난달 폐지된 차량 내구연한과 함께 정비인력 감축, 차량부품 검사 등이 있다. 모두 만성적자에 시달린 지하철의 경비절감이 이유였지만, 이런 일련의 규제 완화가 시민의 발인 지하철의 안전을 위협하는 배경이 됐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지하철을 비롯한 철도 차량의 내구연한 규제는 1990년대초 15년에서 20년으로 연장된 이후 25년까지 늘었다가 2009년 정밀 안전진단만 통과하면 최대 40년까지 쓸 수 있게 바뀌었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철도안전법 37조를 폐지해 아예 무제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서울메트로와 코레일이 운영하는 수도권 지하철 1~4호선의 전동차 1954대 가운데 23.8%인 466대는 제작된 지 20년 이상 된 차량이며, 16~19년된 차량도 36.8%, 718대나 된다.
국토교통부는 차량 관리 환경이 제각각이라 일률적인 내구연한을 두는 게 의미가 없고 평소 안전점검 체계를 강화해 문제가 없다고 설명하지만, 내구연한 완화로 들여온 세월호가 참사를 불러온 만큼 차량 노후화에 따른 안전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전동차 정비인력도 줄여왔다. 이명박 정부 첫 해이자 오세훈 전 시장 시절인 2008년 당시 행정안전부와 서울시는 공기업·산하기관 경영개선 방침에 따라 서울메트로의 대대적인 조직 ‘슬림화’를 추진했다. 정년퇴직에 따른 인력 수요를 채우지 않는 방법으로 전동차 정비인력을 차량 1대당 1명에서 0.8명으로 줄이면서 2000년 2642명에 달했던 정비인력은 2009년 2082명으로 감소했다. 일부 경정비 분야 등은 위탁업무로 전환됐다.
인력 감축과 연동해 정비점검 매뉴얼도 바뀌었다. 차량에 따라 2개월에 1번 받도록 규정된 검사는 3개월로, 2년 주기 점검은 3년으로, 4년 주기 검사는 6년으로 늘었다. 서울지하철 노조 관계자는 “숙련도와 경험이 중요한 정비인력을 외부 위탁으로 바꾸면서 인력 교체가 잦아지고 팀워크가 떨어졌다. 이전보나 정비점검이 허술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열차 자동정지 장치(ATS)도 승무원 인력 감축과 관련돼 있다. 서울메트로가 ‘1인 승무’를 위해 2006년부터 도입한 신형 자동운전 장치(ATO)가 기존의 자동정지 장치와 섞여 쓰이면서 오류가 발생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2012년 철도안전법을 개정하면서 철도 차량의 부품 검사와 관련된 규정도 바꿨다. 모든 부품을 전수검사하던 것을 한 제품만 통과하면 같은 제품이 모두 검사를 통과한 것으로 간주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규제 완화가 안전에 핵심적인 브레이크 부품 등에 적용된다면 안전 우려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실제 지난달 16일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소속 권아무개 책임연구원 등 8명이 2010년 이후 4년여 동안 불량 브레이크에 합격증을 발부해 온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하철에도 성능이 미달한 브레이크가 납품됐다는 진술이 나왔지만 복잡한 유통경로로 인해 정확히 어느 열차에 불량 브레이크가 장착됐는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원은 “언젠가부터 철도 분야의 지상명령은 적자 감축이었다. 입으로는 안전이 중요하다 하지만 차순위도 아닌 부차적 순위로 밀려버렸고, 그러다보니 곳곳에 심각할 정도로 안전 문제가 쌓이게 됐다”라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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