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부터 이틀간 대구시 동구의 시민안전테마파크를 둘러보고 안전시설을 직접 체험해봤다. 테마파크는 ‘체험시설’로서의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지만, 애초 중앙정부가 국비 100억원을 지원한 취지와는 달리 대구지하철 참사를 추모하기에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토요판] 커버스토리
르포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르포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유골을 어디 묻었는지 한번 맞혀보세요.”
전재영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 사무국장이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 들어서자마자 말했다. 지난 1일 오후 5시께 유가족인 전씨와 황명애, 윤근씨와 이 공원을 찾았다. 대구시청 인근의 희생자 대책위 사무실에서 북동쪽으로 차를 타고 40~50여분 거리에 있는 이 공원은 팔공산케이블카 인근에 자리잡았다. 차에서 내려 계단을 오르자 나무와 잔디밭이 어우러진 정원이 나왔고, 한켠에 탑이 서 있었다. 대구지하철참사 유가족들은 ‘위령탑’이라고 부르고, 대구시는 ‘안전상징조형물’이라 일컫는 탑이다. 고개를 돌려가며 쭉 둘러봐도 어디에 유골을 묻었는지는 찾을 수 없었다.
“여기가 유골을 묻은 곳이에요. 아무 표식도, 안내도 없는 그냥 잔디밭이죠. 그래서 한번 맞혀보라고 했어요.”
전 국장이 높게 솟은 탑 인근의 한 나무 옆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11년 전 화마에 부인과 일곱살 딸을 잃었다. 황씨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학을 기다리던 딸을 잃었다. 윤씨는 사고 당시 스물 다섯살이던 딸을 잃었다. 이 세분의 가족들을 포함해 서른두명의 유골이 이곳에 안치됐다. 화장한 골분을 나무 밑에 묻고 흙으로 덮은 이른바 수목장이다.
아무리 공원 사방을 둘러봐도
어디에 유골 있는지 못 찾는다
표지도, 안내도 없는 그냥 잔디밭
나무 밑으로 화장한 골분이 있다
유가족들은 ‘위령탑’이라 하고
대구시는 ‘안전상징조형물’이라
일컫는 탑 하나가 서 있었다
위령탑이면서, 위령탑이 아니어서
희생자 이름 새기기도 어려웠다
상인들에게는 전혀 다른 약속 한 대구시 윤씨는 이곳을 ‘생명의 숲’으로 부른다고 했다. “비록 지금은 안내 하나 없어 누구도 찾지 못하는 곳이지만, 나중엔 대구가 안전의 도시가 되는 데 기여하는 추모의 공간이 됐으면 해요. 5·18 망월동 묘지도 군사독재 시절엔 숨어서 가야 하는 곳이었지만 나중엔 민주화의 성지가 된 것처럼 이곳도 안전의 성지가 됐으면 하죠.” 이들은 한동안 탑을 바라봤다. 탑 아래엔 꽃다발이 하나 놓여 있었다. 황씨는 “유가족 중 한분이 가져다 놨을 것”이라고 했다. 탑을 설명하는 안내글을 읽어봤다. 제목은 ‘명상의 공간 434201’이었고, 내용은 “본작품은 2003 대구지하철참사로 희생된 분들에 대한 추모와 시민들에게 안전문화의 중요성에 대한 교훈을 심어주기 위한 조형물로서, 심화구에 집중되는 폭포수는 참진리의 집중교화를 통한 재난의 근원적 예방을 의미하고 … 조화로운 삶의 실현을 바라는 공공적 예술 개념의 작품이다”라는 긴 문장이 적혀 있었다. 이 조형물은 대구시 소방본부 공무원이 “사실상 위령탑이지만, 이름은 위령탑이 아닌 걸로 하자”고 했던 바로 그 탑이다. 유가족들이 ‘생명의 숲’과 ‘위령탑’ 앞에서 조용히 머물고 있는 동안 테마파크를 한바퀴 돌았다. 어두운 통유리로 된 건물 입구엔 빨간색, 파란색 글씨로 ‘국민행복을 위한 동행 119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라고 적혀 있었다. 놀이터처럼 꾸며진 곳엔 모의 소방차와 구급차가 있었다. 겉을 둘러봐선 이곳이 대구지하철참사와 관련된 곳인지, 추모를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인지 알기 어려웠다. 인적이 드문 공원에서 어린 아들과 함께 거니는 이영우(43·경북 경산)씨를 만났다. “여기가 대구지하철참사와 관련된 공원이란 것을 아느냐”고 묻자, 이씨는 “그런 공원인 줄은 전혀 몰랐다. 외국에선 대형 재난을 겪으면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으려 기억하고 교육을 하는데, 우리는 지나가면 금방 잊는다. 재난에 대해 추모의 공간, 교육의 장소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공원 한바퀴를 돌아 다시 유가족들이 있는 탑 앞으로 왔다. 유가족들은 탑에 새겨진 이름들을 보고 있었다. 황명애 대책위 사무국장이 말했다. “여기 희생자 이름을 새기려고 정말 엄청나게 싸웠어요. 사실상의 위령탑으로 만들어 준다면서 희생자 이름 새기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윤씨는 김범일 대구시장을 일컬어 ‘살혼마’라고 불렀다. “암매장 관련 재판이 2심에서 무죄를 받고 <한국방송>(KBS) 기자가 방송에서 김 시장에게 ‘판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어요. 김 시장은 그때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남았다’고 했죠. 대구시장은 우리 뒤통수를 쳐서 결국 유골까지 파헤치려 한 작자예요. 저는 지하철참사의 영령을 죽이는 살혼마라고 봐요.” 황씨는 “여기 오면 서글프다. 참 슬프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어두워진 산길을 타고 다시 대구로 향했다. 유가족들을 배웅하고서 인근 식당으로 향했다. 이곳은 팔공산 동화사에 인접한 식당가였다. 유족들의 참배를 막는 이들도 이 식당들을 운영하는 상인들이다. 혼자서 버섯전골을 주문해 식사하고, 계산을 하며 넌지시 물었다. “여기 상인분들은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들이 추모하러 오는 걸 별로 안 좋아하세요?” 계산을 마친 식당 주인은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고, 기자 신분을 밝히자 따로 잠시 얘기 좀 하자며 자리로 안내했다. 식당 고려가든을 운영하는 지윤환씨는 “1980년대 중반 이곳에 상업지구 분양이 이뤄졌다. 그때 지금 테마파크 부지를 포함해 시유지 8800평에 놀이공원이 들어올 계획이라고 대구시가 밝혀 우리 상인들은 다른 지역보다 비싼 분양가를 내고서 입주했다. 하지만 대구시는 그 부지를 20년 내내 개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개발을 안 하는 것보단 공원을 조성하는 것이 더 낫지 않으냐”, “참혹한 참사의 피해자들인데 참배를 못 하도록 막는 것은 좀 심하지 않으냐”는 질문을 던지자 지씨는 “이곳 상권이 너무 침체된데다 시가 그 부지를 개발하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아 장사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게다가 대구시는 공문을 우리에게 보내 ‘유골 안치’나 ‘위령탑 건립’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이 지역에 공원을 조성하는 대신 복지회관 건립과 관광객들을 모을 수 있는 시설물들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대구시가 공개한 문서를 보면, 총 35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복지회관(5억원), 인공폭포(13억원), 십이지 동물상(8억원) 등을 만들었다. 하지만 현지 주민들은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사고 당시 불탔던 1079호 전동차도 전시 식당 인근의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아침 시민안전테마파크를 다시 찾았다. 평일 오전에 단체로 온 유치원, 초등학생들이 상당히 많았다. 실내 체험시설은 총 4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됐다. 지진이나 산악안전, 응급처치, 소화기 사용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생활안전전시관과 화재 대피를 실제로 해보는 지하철안전전시관에 학생들이 몰렸다. 임성호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교육팀 주무관은 학생들에게 대피 요령 등을 설명했다.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설명을 듣고, 연기가 나는 지하철 현장에서 실제 대피하기도 했다. 지하철안전전시관엔 실제 사고 당시에 불탔던 1979호 전동차가 전시돼 있다. 대구지하철과 관련된 영상관에 들어가자 짤막한 영상을 보여줬다. 대구지하철참사를 겪은 한 가족의 이야기를 재현한 내용이었다. 영상 말미에 신달자 시인의 시가 한구절씩 올라왔다. “200여명의 목숨이 어이없이 잿더미가 된/ 200여명의 미래와 희망이 검은 연기가 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죄악의 현장을/ 당신은 기억하십니까/ … /소나무도 몸서리 쳤습니다/ 들꽃들도 저들끼리 하늘을 보고 빌었습니다/ 산이라는 산 모두 들썩거리며 가슴을 치고/ 강물들은 아직 울음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 ” 체험관을 나와 ‘탑’을 바라봤다. 이름 없는 탑이 제 몸에 새겨진 이름들을 위로하고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대구/윤형중 기자
어디에 유골 있는지 못 찾는다
표지도, 안내도 없는 그냥 잔디밭
나무 밑으로 화장한 골분이 있다
유가족들은 ‘위령탑’이라 하고
대구시는 ‘안전상징조형물’이라
일컫는 탑 하나가 서 있었다
위령탑이면서, 위령탑이 아니어서
희생자 이름 새기기도 어려웠다
상인들에게는 전혀 다른 약속 한 대구시 윤씨는 이곳을 ‘생명의 숲’으로 부른다고 했다. “비록 지금은 안내 하나 없어 누구도 찾지 못하는 곳이지만, 나중엔 대구가 안전의 도시가 되는 데 기여하는 추모의 공간이 됐으면 해요. 5·18 망월동 묘지도 군사독재 시절엔 숨어서 가야 하는 곳이었지만 나중엔 민주화의 성지가 된 것처럼 이곳도 안전의 성지가 됐으면 하죠.” 이들은 한동안 탑을 바라봤다. 탑 아래엔 꽃다발이 하나 놓여 있었다. 황씨는 “유가족 중 한분이 가져다 놨을 것”이라고 했다. 탑을 설명하는 안내글을 읽어봤다. 제목은 ‘명상의 공간 434201’이었고, 내용은 “본작품은 2003 대구지하철참사로 희생된 분들에 대한 추모와 시민들에게 안전문화의 중요성에 대한 교훈을 심어주기 위한 조형물로서, 심화구에 집중되는 폭포수는 참진리의 집중교화를 통한 재난의 근원적 예방을 의미하고 … 조화로운 삶의 실현을 바라는 공공적 예술 개념의 작품이다”라는 긴 문장이 적혀 있었다. 이 조형물은 대구시 소방본부 공무원이 “사실상 위령탑이지만, 이름은 위령탑이 아닌 걸로 하자”고 했던 바로 그 탑이다. 유가족들이 ‘생명의 숲’과 ‘위령탑’ 앞에서 조용히 머물고 있는 동안 테마파크를 한바퀴 돌았다. 어두운 통유리로 된 건물 입구엔 빨간색, 파란색 글씨로 ‘국민행복을 위한 동행 119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라고 적혀 있었다. 놀이터처럼 꾸며진 곳엔 모의 소방차와 구급차가 있었다. 겉을 둘러봐선 이곳이 대구지하철참사와 관련된 곳인지, 추모를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인지 알기 어려웠다. 인적이 드문 공원에서 어린 아들과 함께 거니는 이영우(43·경북 경산)씨를 만났다. “여기가 대구지하철참사와 관련된 공원이란 것을 아느냐”고 묻자, 이씨는 “그런 공원인 줄은 전혀 몰랐다. 외국에선 대형 재난을 겪으면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으려 기억하고 교육을 하는데, 우리는 지나가면 금방 잊는다. 재난에 대해 추모의 공간, 교육의 장소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공원 한바퀴를 돌아 다시 유가족들이 있는 탑 앞으로 왔다. 유가족들은 탑에 새겨진 이름들을 보고 있었다. 황명애 대책위 사무국장이 말했다. “여기 희생자 이름을 새기려고 정말 엄청나게 싸웠어요. 사실상의 위령탑으로 만들어 준다면서 희생자 이름 새기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윤씨는 김범일 대구시장을 일컬어 ‘살혼마’라고 불렀다. “암매장 관련 재판이 2심에서 무죄를 받고 <한국방송>(KBS) 기자가 방송에서 김 시장에게 ‘판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어요. 김 시장은 그때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남았다’고 했죠. 대구시장은 우리 뒤통수를 쳐서 결국 유골까지 파헤치려 한 작자예요. 저는 지하철참사의 영령을 죽이는 살혼마라고 봐요.” 황씨는 “여기 오면 서글프다. 참 슬프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어두워진 산길을 타고 다시 대구로 향했다. 유가족들을 배웅하고서 인근 식당으로 향했다. 이곳은 팔공산 동화사에 인접한 식당가였다. 유족들의 참배를 막는 이들도 이 식당들을 운영하는 상인들이다. 혼자서 버섯전골을 주문해 식사하고, 계산을 하며 넌지시 물었다. “여기 상인분들은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들이 추모하러 오는 걸 별로 안 좋아하세요?” 계산을 마친 식당 주인은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고, 기자 신분을 밝히자 따로 잠시 얘기 좀 하자며 자리로 안내했다. 식당 고려가든을 운영하는 지윤환씨는 “1980년대 중반 이곳에 상업지구 분양이 이뤄졌다. 그때 지금 테마파크 부지를 포함해 시유지 8800평에 놀이공원이 들어올 계획이라고 대구시가 밝혀 우리 상인들은 다른 지역보다 비싼 분양가를 내고서 입주했다. 하지만 대구시는 그 부지를 20년 내내 개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개발을 안 하는 것보단 공원을 조성하는 것이 더 낫지 않으냐”, “참혹한 참사의 피해자들인데 참배를 못 하도록 막는 것은 좀 심하지 않으냐”는 질문을 던지자 지씨는 “이곳 상권이 너무 침체된데다 시가 그 부지를 개발하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아 장사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게다가 대구시는 공문을 우리에게 보내 ‘유골 안치’나 ‘위령탑 건립’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이 지역에 공원을 조성하는 대신 복지회관 건립과 관광객들을 모을 수 있는 시설물들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대구시가 공개한 문서를 보면, 총 35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복지회관(5억원), 인공폭포(13억원), 십이지 동물상(8억원) 등을 만들었다. 하지만 현지 주민들은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사고 당시 불탔던 1079호 전동차도 전시 식당 인근의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아침 시민안전테마파크를 다시 찾았다. 평일 오전에 단체로 온 유치원, 초등학생들이 상당히 많았다. 실내 체험시설은 총 4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됐다. 지진이나 산악안전, 응급처치, 소화기 사용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생활안전전시관과 화재 대피를 실제로 해보는 지하철안전전시관에 학생들이 몰렸다. 임성호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교육팀 주무관은 학생들에게 대피 요령 등을 설명했다.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설명을 듣고, 연기가 나는 지하철 현장에서 실제 대피하기도 했다. 지하철안전전시관엔 실제 사고 당시에 불탔던 1979호 전동차가 전시돼 있다. 대구지하철과 관련된 영상관에 들어가자 짤막한 영상을 보여줬다. 대구지하철참사를 겪은 한 가족의 이야기를 재현한 내용이었다. 영상 말미에 신달자 시인의 시가 한구절씩 올라왔다. “200여명의 목숨이 어이없이 잿더미가 된/ 200여명의 미래와 희망이 검은 연기가 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죄악의 현장을/ 당신은 기억하십니까/ … /소나무도 몸서리 쳤습니다/ 들꽃들도 저들끼리 하늘을 보고 빌었습니다/ 산이라는 산 모두 들썩거리며 가슴을 치고/ 강물들은 아직 울음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 ” 체험관을 나와 ‘탑’을 바라봤다. 이름 없는 탑이 제 몸에 새겨진 이름들을 위로하고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대구/윤형중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