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안 전 대법관(62·사단법인 선 고문·사진)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중대한 사안”이라며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가리는 것은 대통령의 현재 직무”라고 지적했다. 이 사건에 대해 법조인 출신으론 드물게 실명으로 소신을 밝힌 것이다.
이번주 발간될 계간 <창작과비평> 2014년 여름호에 실린 좌담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법치의 길’에서 그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이 “민주주의의 핵심인 대의민주주의를 왜곡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대할뿐더러 왜곡의 정도에 있어서도 심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사회를 본 이 좌담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을 지낸 백승헌 변호사가 함께 했다.
전 전 대법관은 “국가권력의 창출에 민의가 아닌 국가기관이 개입함으로써 대의민주주의를 왜곡”했다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중대한 사안이니까 사실관계를 분명히 하고 책임을 묻는 것은 재발방지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대통령이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가려야 한다며 “대통령의 소극적 태도는 당연히 직간접적으로 검찰의 수사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고 실제로도 그랬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은 ‘법치주의’의 문제로 진단했다. 전 전 대법관은 “이 사건은 법치주의의 기본을 흔든 것인데, 수사의 시점과 대상에 비추어 지방선거 전 특정 후보를 겨냥한 선거개입 의혹을 제기하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민주주의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이런 사건이 수사기관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며 “수사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없는 사회는 법치사회도 민주사회도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검찰 개혁에 대해서도 비껴가지 않았다. <시사인> 주진우 기자, 안도현 시인 사건 등의 무죄판결을 두고 무리한 기소라는 의견이 터져나온 것에 대해서 “일괄 매도할 일은 아니”라면서도 “(무죄판결은) 증거가 충분치 않거나 혹은 증거가 있더라도 무리하게 수집된 것이므로 어느 쪽이든 검찰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검찰이 공판절차에서 재판부를 향해 ‘증명’했어야 하는 일들을 재판이 끝난 후 언론이나 여론을 향해 ‘주장’한다. 왜 그럴까? 공소사실을 증명하지 못한 것은 능력과 의지 둘 중 하나에 문제가 있어서라고 추론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대법관을 역임한 그는 보수적인 대법원 안에서 소수의견을 자주 내왔고, 퇴임사에서도 사형제 폐지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소신을 밝힌 바 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