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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원폭2세 아들이 바라던 세상은 언제쯤…

등록 2014-05-26 20:05수정 2014-05-26 22:28

‘피해 알린’ 김형률씨 9주기 추모제
아버지는 특별법 지연 아쉬움 토로
김봉대(78)씨는 매일 아침 아들의 컴퓨터 앞에 앉아 전자우편을 확인한다. 아들이 생전에 탐독하던 <핵의 아이들> <히로시마: 되풀이해선 안 될 비극> 등의 책이 방 한편에 그대로 놓여 있다. “우리 형률이가 책을 얼마나 많이 봤는데요. 죽기 얼마 전에 이 컴퓨터를 사서 매일 원폭에 관한 자료를 찾고, 죽던 날 새벽까지도 사람들한테 메일을 보냈어요.”

24일 오전 부산민주공원 소극장에서 ‘원폭 2세’ 피해자 김형률씨의 9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김씨는 2002년 자신이 원폭 2세 피해자임을 주변에 알리는 ‘커밍아웃’을 한 뒤 외로운 싸움을 벌여왔다. 어머니 이곡지(75)씨는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불과 6살 나이에 피폭됐다. 아들 김씨는 ‘선천성 면역글로불린 결핍증’이라는 희귀병 진단을 받았고 35살이던 2005년 숨졌다.

국내 원폭 2세 피해자는 1300여명으로 추산된다. 아버지 김씨는 아들의 뒤를 이어 이들을 위한 활동을 계속했지만 아쉬움을 떨칠 수 없다고 했다. “형률이가 살아 있었으면 특별법이 통과되지 않았을까요?” 김형률씨의 유지인 ‘원폭 피해자 및 피해자 자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은 17·18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다음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다시 상정될 예정이지만 통과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남들처럼 아이도 낳고,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전 아들의 목소리가 추모영상에서 흘러나오자 아버지는 눈물을 훔쳤다.

일본에서 반가운 손님이 추모제를 찾아왔다. 반핵 활동가 아오야기 준이치는 최근 일본에서 펴낸 김형률씨의 유고집 <피폭자 차별을 넘어 살아간다: 한국 피폭자 2세 김형률>을 유족에게 전달했다. 그는 2001년 부산대 일본어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김형률씨를 만난 뒤 원폭 2세들의 권익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아오야기는 “세월호 사고처럼 원전은 또다른 비극을 불러올 수 있다. 후쿠시마 사고를 보라. 한국도 원전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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