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고양시외버스종합터미널 지하 1층 푸드코트 공사장에서 불이 나 검은 연기가 7층 건물을 뒤덮고 있다. 이 화재로 6명이 숨지고 40여명이 다쳤다. 고양/뉴스1
도심속 고양터미널 30분 불에 7명 사망 40여명 부상
방화셔터 작동 않고 비상구 잠기고 대피방송은 부실
방화셔터 작동 않고 비상구 잠기고 대피방송은 부실
26일 발생한 경기 고양시외버스 종합터미널 화재는 세월호 사고를 겪고도 우리 사회가 여전히 ‘위험사회’의 한복판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세월호처럼 바다도 아닌 도심에서 불과 30여분 만에 6명이 연기에 질식해 숨지고 40여명이 다쳤다. 5명은 중태여서 사망자가 늘 수도 있다. 고층도 아니고 다중이용시설의 2층에서 사망자가 5명이나 발생했다는 것은 재난 대책이 얼마나 부실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사고 발생 시간대와 소방 인력의 접근성 등을 고려할 때 다수의 인명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은데도 피해가 커진 원인을 두고 전문가들은 ‘안전불감증’이 아닌 ‘안전불감병’ 수준에 이르렀다고 지적한다.
“세월호 사고에서 도대체 뭘 배운 거냐.” 이날 화재 현장에서 다급히 빠져나온 김아무개(37)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당시 김씨는 5층 메가박스 영화관에 있었다. “영화를 보는데 갑자기 비상등이 켜지더라고요. 밖으로 나왔더니 연기가 나고 이상한 냄새가 났어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다급히 나가야 한다고 말했어요.” 당시 김씨처럼 영화를 보던 사람은 2개관에 30여명이었다.
그러나 메가박스는 이들이 오전 9시5분께 화재 발생을 알고 빠져나올 때까지 어떤 안내도 하지 않았다. 평소에 이 영화관을 자주 찾아 건물 구조를 아는 김씨는 6층에서 외부로 연결된 계단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왔다. 메가박스 쪽은 “당시 화재 여부 파악을 위해 건물 방재실에 연락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고양시외버스 종합터미널은 대형 영화관과 마트 등이 입점해 이용객이 많은데도 화재 대책은 취약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공사 중이라는 이유로 지하 1층과 지상 1층 사이의 방화셔터가 작동하지 않아 연기는 순식간에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구조에 나섰던 한 소방대원은 “공사를 하면서 방화셔터를 치운 것 같다. 그러니까 연기가 순식간에 위로 올라간 것”이라고 말했다. 고양시외버스 종합터미널은 지하 1층과 지상 1층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있었다. 또 다음달 13일 개점을 앞두고 롯데아울렛 내부 공사도 한창이었다.
이석동 우송대 소방방재학과 겸임교수는 “용접 작업을 위해 방화셔터 작동 센서를 꺼두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용접 과정에서 발생하는 연기 등으로 화재 벨소리가 울리는 것을 막기 위해 감지장치를 꺼두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방화셔터가 작동하지 않으면서 고온의 유독가스 연기는 급속하게 위층으로 번져 올라갔다. 정기신 세명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화재시 연기의 수직 이동 속도는 초당 3~5m다. 연기의 온도 역시 초기에 300~500도까지 올라간다”고 했다. 정 교수는 “식당 인테리어 공사에는 주로 화학 성분이 많이 포함된 내장재를 사용하는데 이 때문에 유독가스가 많이 발생했을 것”이라며 “전기 용접을 할 때 불똥이 튀는 경우에 대비해 방염포를 깔아야 하고 감독자 입회 하에 작업을 해야 하는 등 안전기준이 따로 있는데 이를 안 지킨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안내방송은 이번에도 늦게 나왔다. 4층에서 공사를 하던 김아무개(30)씨는 “천장에 전등을 설치하는 작업을 하는데 연기가 났다. 화재가 나고 2~3분 지나서 안내방송이 나온 거 같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홈플러스를 찾은 문아무개(33)씨는 “9시쯤 엘리베이터에서 연기가 엄청나게 들이닥쳐 본능적으로 위쪽으로 도망가야겠다 싶어서 아무 층이나 눌렀는데 그게 3층이었다. 3층은 외부로 뚫려 있어 연기도 덜한 편이고 해서 대피하는데 9시5분께 화재가 났다고 대피하라는 방송이 나왔다”고 말했다. 평소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간임에도 막상 화재가 나자 기본적인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인명 피해를 키운 셈이다.
롯데아울렛 내부 공사가 한창인 현장에 실제 들어가 보니 층별로 ‘안전보건 상황판’에 화재 관련 배치도와 비상대피로 안내가 붙어 있긴 했지만, 공사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피로를 숙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A4 종이에 ‘비상대피로’라는 글자와 함께 녹색 화살표가 그려져 있지만, 이마저도 거꾸로 붙여져 엉뚱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한 공사 인부는 “작업 현장에 동원돼서 그날 일하고 가는 우리가 뭘 어떻게 알고 대피하겠냐. 화재가 나면 어떻게 하라는 설명은 전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뛰어내리기만 해도 충분히 목숨을 건질 수 있는 2층에서 사망자가 여럿 나온 것도 불이 난 건물이 재난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화물을 부치러 터미널을 자주 드나드는 김아무개(49)씨는 “평소 1층 하차장과 2층 승차장에 출입문 대부분이 닫혀 있었다. 어느 곳은 비상구도 잠겨 있었다. 그래서 사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고양/서영지 이재욱 기자, 송호균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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