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홍석현 당시 사장이 1999년 10월 탈세 혐의로 구속된 뒤 승용차에 올라 서울 구치소로 가는 모습. 이종근 기자root2@hani.co.kr
한국 대표귀족 홍석현의 두 얼굴
홍석현 주미대사는 현대판 한국사회의 귀족으로 불려왔다. <한겨레> 보도로 밝혀진 ‘귀족’의 두 얼굴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이들도 있다.
홍씨는 지난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쪽에 전해주라며 삼성 쪽이 건넨 정치자금 가운데 일부인 30억원을 전달하지 않은 채 착복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한겨레 9월12일자 보도)
홍씨는 1999년 ‘보광 탈세사건’으로 구속된 바 있다. 올 4월에는 주미대사 취임과 함께 공직자 재산공개에서 세 차례에 걸쳐 불법 위장전입을 통해 부동산을 사들인 것으로 밝혀져 다시 한번 도덕성에 상처를 입었다. 홍씨는 당시 인터뷰에서 부동산 투기 의혹과 관련해 “땅을 사고 팔아 이익을 남겨 재산을 증식할 필요는 없었다”며 부인했다. 30억원 배달사고는 돈에 초월한 듯 행동했던 홍씨의 말과 실제 행동 사이의 이중성을 드러낸 또다른 ‘엑스파일’이다.
화려한 집안, 삼성가의 사돈
홍석현에 따라 붙는 대표적인 수식어는 ‘귀족’이다. 홍씨가 지난해 12월 주미대사로 내정됐을 때, 언론들은 그에게 ‘대한민국 대표 귀족’이라는 칭호를 붙였다. 홍씨의 집안내력, 학력, 사회생활 경력 등은 언론의 평가가 손색없을 정도로 ‘화려’하다. 이러한 홍씨 일가의 가족사는 60년대 홍씨의 아버지인 홍진기씨와 이병철 삼성 회장의 독특한 인연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은 최근호(830·831호)에서 삼성과 홍씨 일가의 가족사를 상세히 분석한 기획기사를 실었다. 시사저널은 홍씨 일가를 ‘귀족’이 아니라 ‘왕족’이라고 칭했다. <시사저널>이 보도한 ‘또 하나의 왕족 홍씨 일가’라는 기사를 요약해보면 이렇다.
홍씨와 형제간인 6남매의 면면도 화려하다. 홍씨의 누나는 이건희 삼성회장의 부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60)이고, 동생은 엑스파일에서 검찰쪽 ‘삼성 장학생’ 관리자로 언급된 홍석조 광주고검장이다. 또 3남은 삼성에스디아이 경영기획실장 겸 부사장 홍석준씨이고, 4남 홍석규씨는 보광 대표이사 회장이다. 막내 딸인 홍라영씨는 리움미술관 수석 부관장이자 5공때 안기부장을 지낸 노신영씨의 며느리다. 홍씨 일가는 재계는 물론 정계, 관계와 두루 맥이 통한다.
그러나, 홍씨는 주미대사에 취임하면서 기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귀족이라고 레이블을 붙이기도 하는데, 내가 10살 때 아버지가 사형선고를 받았다. 전혀 귀족처럼 자라본 적이 없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가문뿐아니라 학력도 눈길을 끈다. 홍씨는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스탠퍼드대 산업공학과 석사와 경제학 박사를 땄다. 이른바 KS(경기고-서울대) 출신이다. 그는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이하 사대부초)를 다녔다. 당시 사대부초는 ‘귀족학교’로 소문나, 서울시내에 내로라 하는 부자와 잘 나간다는 고위층 관료들의 자녀가 수두룩했다고 한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홍씨의 2년 선배이고, 정치계에선 정대철 전 의원, 김명자 의원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홍석현씨가 우리나라 유력언론의 사주이자, 주미대사라는 특별한 공적 지위를 맡은 만큼, 그의 개인사는 사생활의 영역에 덮일 수 없다. 장삼이사간의 배달사고나 횡령은 언론의 관심사항이 아니다.)
삼성 등에 엎힌 한국판 베를루스코니 우려도
박사 학위 이후 홍씨는 1977년부터 83년까지 세계은행 경제조사역을 지냈다. 귀국해서는 재무부 장관 비서관, 대통령비서실 보좌관 등 공직생활을 거쳐 삼성코닝 상무와 부사장을 역임했다. 홍씨는 1994년 중앙일보 대표이사에 취임하면서 언론사주로 변신했고 세계신문협회(WAN) 회장, 한국신문협회장, 아시아신문재단(PFA) 한국위원회 이사, 국제언론인협회(IPI) 한국위원회 부위원장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특히 중앙일보 사장과 회장을 맡으면서 ‘초일류 언론’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조간 전환을 추진하는 등 공격적인 신문경영으로 주목을 받았다.
조선·동아에 밀려 만년 3위였던 중앙일보의 외형적 성장을 이뤄낸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은 사내에서 ‘계몽군주’로 불리면서, 추앙과 지지를 받아왔다. 중앙일보 기자들의 그러한 정서는 탈세 혐의로 검찰에 출두한 사주 앞에 도열해 박수와 응원을 보낸 것에서도 확인된다. 참여정부 들어 홍씨는 미국대사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미국대사를 계기로 홍씨는 차기 대권 후보군의 한 사람으로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러나, 홍씨의 화려한 사회활동을 놓고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홍씨가 경제권력과 언론권력을 장악한 삼성과 중앙일보의 힘을 바탕으로 유엔 사무총장을 거쳐 유력한 차기대권 후보가 될 것이란 우려에서 출발한 비판이다. 실제, 홍씨가 주미대사로 내정될 당시 여권에선 홍씨를 유력한 차기대권후보로 꼽기도 했다. 진보를 대표하는 김근태, 중도를 대표하는 정동영, 보수를 대표하는 홍석현 등으로 대권경쟁의 틀을 짜면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는 전략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홍석현 회장을 처음으로 만난 뒤 “부잣집 도련님으로만 생각했는데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참으로 신사이며 사귀어볼 만한 사람”이라는 반응을 나타냈다고 전해진다. 그를 한국 외교에 가장 중요한 주미대사에 임명한 것도 대선 등을 염두에 둔 카드라는 관측이 나왔다.
돈에 관심 없다던 그…보광 탈세로 쇠고랑, 부동산 투기 의혹도
그러나, 홍씨는 화려한 가문과 뛰어난 학벌, 세련된 매너와 달리 돈 문제와 관련해서는 여러번 추문에 휘말렸다. 대표적인 것이 99년 ‘보광 탈세사건’이다. 당시 국세청은 보광그룹과 홍씨 일가의 탈세사실을 포착하고 두달반 동안 세무조사를 벌였다. 드러난 보광그룹과 홍씨 일가의 탈세 내용과 방법은 놀라웠다. 탈세액 685억원에 추징세금은 262억원이었고, 개인의 탈루소득은 278억원, 추징금액 133억원이었다.또 홍씨 일가가 조직적으로 자금을 관리한 것을 보여주는 은행통장 1071개와 수백개의 목도장이 공개되었다. 당시 국세청은 “주변인물 수십명의 주민등록증 사본과 인장 100여개를 비치하고 전담직원까지 두면서 변칙적인 금융거래를 일삼았다”고 발표했다. 홍씨는 보광 탈세사건으로 63일간의 옥살이를 했고, 2000년 8월 광복절 특사로 사면복권되었다.
홍씨 돈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은 올해 4월 공직자 재산공개 때이다. 홍씨는 당시 부인과 3자녀 등 일가의 재산을 730억4250만원이라고 신고했다. 그러나, 홍씨는 부인 등이 세 차례에 걸쳐 불법 위장전입을 통해 경기 이천과 남양주의 농지를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 홍씨는 “땅을 사고팔아 늘린 재산이 없다”며 “제 환경이 땅을 사고 팔아 이익을 남겨 재산을 증식할 필요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홍씨의 부인과 어머니가 위장전입을 통해 땅을 구입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엑스파일 ‘돈 심부름꾼’하다 ‘횡령’까지
‘엑스파일’에서 한국의 대표 귀족 홍석현의 모습은 ‘째째’하다. 권력과 자본을 감시해야 할 언론사주가 ‘돈 심부름꾼’으로 전락한 모습이 적나라하다. 녹취록을 보면 홍씨는 97년 10월7일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을 만나 “두명이서 15개(15억원으로 추정)를 운반하는 데는 문제가 없는데, 30개는 무겁더라구. 이번에는 셋이서 백화점 주차장에서든지 만나가지고…”라고 말한다. 이전에 거액의 돈을 직접 운반한 경험이 있음을 내비치는 대목이며, 발언 이후에도 돈 배달에 직접 참여했을 가능성을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귀공자풍의 외모에 세련된 매너의 언론사주 홍씨가 라면상자 10개가 넘는 분량의 돈다발을 운반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은데도, 홍씨는 몸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최근 <한겨레>의 보도로 드러난 홍씨의 30억원 ‘횡령’은 더 충격적이다.
가족 재산이 730억이 넘는다는 홍씨는 탈세와 횡령으로 ‘악착’같이 돈을 모아서 어디에 쓰려고 했을까? 그는 돈 욕심이 없음을 여러 차례 밝혔다.
홍씨의 말은 일단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미 넘칠 정도로 재산이 많아 돈 문제에는 초연하다”는 것을 여유롭게 과시했지만, 그 역시 “있는 사람이 더 무섭다”라는 시쳇말에서 한발짝도 자유롭지 못했다.
혹자는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려던 ‘꿈’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기도 한다. 돈에 욕심이 없다는 말대로, 홍씨는 돈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더 큰 꿈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려고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추측이다.
그는 왜 돈에 집착했을까? 더 큰 꿈을 위해?
홍씨는 엑스파일이 불거지기 전인 지난 7월12일 미국 현지에서 특파원들과 만나 유엔 사무총장에 도전할 뜻을 밝혔다. 홍씨는 “유엔 사무총장 선거가 내년 말에 있으니 올해 중엔 출마선언을 해야 한다”며 “정부 결정이 나는 대로 9월쯤 출마를 가시화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그가 유엔 사무총장을 거쳐 국내는 물론 국제적인 인지도를 높인 다음 기회가 된다면 대권후보로 나설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홍씨가 주미대사를 징검돌로 유엔 사무총장 출마를 꿈꾸는 것도 모두 ‘더 큰 꿈’에 도전하겠다는 속내로 읽힌다. 만약, 그가 대권을 꿈꾸었다면 돈에 대한 집착은 과거 대선자금을 심부름했던 경험에서 나온 ‘학습효과’였을 가능성이 높다. 막대한 대선자금을 배달했던 홍씨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돈’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련된 용모와 매너만이 아니라 누구보다 국제적 감각이 앞선다는 홍석현씨는 그런 이미지가 보탬이 되어 현정부에서 주미대사로 임명되었다. 좋은 배경과 뛰어난 국제적 감각을 지녔다는 홍씨의 `두 얼굴' 앞에서 혹자는 “특권층을 일컫는 이른바 ‘지도층 인사’의 맨 얼굴이 드러난 것일뿐”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또, 일부에서는 지지자들로부터 ‘계몽군주’로 추앙받아 온 홍씨의 판단 미숙과 어리석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국제적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 사람이 갈수록 선진화·투명화하는 한국의 정치현실을 모른 채 추잡한 방법으로 뒷돈을 챙겼다는 것은, 도덕감 못지않게 판단력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고귀한 자에게는 특별한 의무가 따른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한국에서 요구하기는 이르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 고귀한 자들을 향한 ‘특별한 의무’는 그 이후의 과제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 |
홍석현씨 부친인 홍진기.
홍석현 주미대사가 경기도 양주 땅이 택지개발지구로 편입되면서 뫼를 옮겨온 경기도 이천시 율면 월표리 가족묘지와 앞쪽의 홍 대사 일가 소유 땅 전경. 이종근 기자root2@hani.co.kr
엑스파일에는 홍석현씨가 권력과 자본을 감시해야 할 언론사주에서 ‘돈 심부름꾼’으로 전락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엠비시 방송화면
홍석현 주미대사.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