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모의재판 판결 “그 아기도 행복추구권…인정해야”
하대박씨는 아들과 딸을 낳은 전처와 사별하고, 1999년 나금자씨와 재혼했다. 하씨는 재혼 2년 만에 골수암 진단을 받자 항암치료로 불임이 될 것을 우려해 병원에 자신의 정자를 냉동보관했다. 이어 자필 유언을 통해 아내에게 “냉동 정자를 이용해 아이를 낳아 달라”고 부탁하고 500억원의 유산을 남긴 채 2003년 숨졌다.
냉동 정자를 인공수정해 낳은 나씨의 아들은 과연 하씨의 친자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마치 ‘솔로몬의 선택’을 보는 듯한 이 사건은 가상의 상황을 바탕으로 한 제38회 서울대 법대 민사모의재판의 출제 사안이다. 6일 열린 모의재판에서 재판부로 위촉된 서울가정법원 가사4부 손왕석 부장판사, 박진웅·임혜원 판사 등 3명은 ‘사후 인공수정 아기도 친자관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13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민법 제863조에 따른 친자확인의 소송을 낼 수 있는 자식은 자연임신에 의해 출생했어야 하거나 아버지의 사망 전에 임신됐어야 한다고 제한적으로 해석할 수 없다”며 “아기의 복리와 인간의 존엄성, 행복추구권의 보장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청구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아기가 세계적으로 3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지만, 외국에서도 법적 해석과 판례가 엇갈리고 있다. 국내에는 친자관계와 상속권 등 각종 법적 권리에 대한 판례가 전혀 없는 상황이다.
박진웅 판사는 “일본에서 이와 비슷한 사건이 지방재판소(1심)에서 기각됐다 고등재판소(2심)에서 승소해 현재 최고재판소에 상고 중”이라며 “이번 모의재판 판결 내용은 일본의 경우와 사실관계는 다르지만 근본 문제의식은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박 판사는 “사건의 구체적 사정이나 본인들의 주장 관계에 따라 판결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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