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가 너무 빨리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둘째 아들 차웅(17)군의 얼굴 그림을 받아든 아버지 정윤창(47)씨는 세월호 참사가 벌써 잊혀지는 듯한 사회 분위기가 서운한 듯 이렇게 말했다. 키 177㎝, 몸무게 100㎏, 아버지를 꼭 닮은 건장한 체격의 차웅군은 얼굴 그림이 든 액자 속에서도 듬직한 모습이었다. 남편 곁에서 액자 속 차웅군의 얼굴을 연신 쓰다듬던 어머니 김연실(46)씨는 복받치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뺨 위에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내던 김씨는 “그림을 보니 수학여행 가는 날 그렇게 좋아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아들만 둘 있는 집에서 딸 같은 재간둥이였는데…”라며 말을 맺지 못했다.
15일 오후 6시30분께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 안 경기도미술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 사무실에서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과 <한겨레> 김이택 편집국장, 차웅군의 부모가 만났다. 박 화백은 차웅군 부모에게 차웅군의 영정사진을 보고 그린 얼굴 그림이 든 액자를 전달했다. 박 화백은 “아이들 얼굴을 하나하나 그리면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사람들 마음속에 뭔가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부모를 위로했다.
이에 어머니 김씨는 “차웅이를 또 이렇게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어 “그나마 차웅이는 일찍 발견돼 엄마와 아빠를 덜 힘들게 했다. 아이한테 고맙다고 해야 되는 현실이 너무 가슴이 아프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애들도 있는데…”라며 또다시 말을 잇지 못했다. 박 화백과 김 국장은 30여분 뒤 가족대책위 전체회의가 열린 경기도미술관 대강당에서 다른 9명의 유가족들에게도 액자를 전달했다. 김 국장은 이 자리에서 “우리 사회가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반성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또 이런 노력이 유가족 여러분의 진상규명 움직임에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 화백은 지금까지 80명의 얼굴 그림을 그렸는데, 이 가운데 액자 제작이 끝난 10명의 부모에게 이날 1차로 그림을 전달했다. <한겨레>와 박 화백은 앞으로 전체 학생의 부모에게도 액자를 전달할 계획이다.
세월호 참사 두 달이 흐른 이날 현재 학생 6명과 교사 2명, 승무원 1명, 일반인 3명 등 모두 12명이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전체 탑승자 476명 가운데 구조된 이는 171명(학생 75명, 교사 2명, 승무원 20명, 일반인 74명)이고, 293명(학생 244명, 교사 10명, 승무원 8명, 일반인 31명)이 숨졌다. 안산 화랑유원지에 차려진 정부합동분향소에는 숨진 학생 244명과 교사 10명, 일반인 3명 등 모두 287명의 위패와 영정이 안치돼 있다. 지금까지 전국에 차려진 합동분향소에는 156만여명이 조문을 했다. ‘누나, 형이 돌아오게 해주세요.’ 안산 정부합동분향소 추모글 게시판에는 아직도 실종자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애타는 마음이 담긴 조문객의 쪽지글이 붙어 있다.
안산/김일우 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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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근아 "세월호 유가족, 쉽게 잊힐까봐 두려운 고통" [한겨레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