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겠습니다] 최초 신고자 최덕하군
장한 아들, 분명 좋은 곳에 가 있겠지
장한 아들, 분명 좋은 곳에 가 있겠지
“미안하다, 얘들아~ 절대 잊지 않을게….”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이들이 수없이 되뇌었던 말입니다. 하지만 어느덧 세월호가 우리 곁에서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사고 진상규명도 더디기만 합니다. <한겨레>는 세월호 참사 두 달을 맞아, 참사로 희생된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얼굴 그림과 부모의 절절한 심경이 담긴 글을 지속적으로 싣기로 했습니다. 이는 세월호의 슬픈 기억을 잊지 않겠다는 <한겨레>의 다짐이기도 합니다. 얼굴 그림은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이 그립니다.
세월호 최초 신고자 최덕하군. 박재동 그림
“살려주세요. 배가 기울고 있어요.” 4월16일 오전 8시52분께 전남소방본부 119상황실에 다급한 신고가 들어왔다. 신고한 사람은 세월호 선원도, 배에 탄 어른도 아니었다.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6반 최덕하(17)군이었다. 최군은 배가 침몰중이어서 모두가 우왕좌왕하는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처음으로 사고를 신고했다. 세월호 일등항해사가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보낸 구조 요청보다 3분이나 빨랐다. 최군의 신고는 승객 등 172명이 구조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지만, 정작 최군은 일주일 뒤인 4월23일 4층 선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싸늘한 주검으로 가족 품에 안긴 최군은 같은 달 27일 안산 산재병원에서 장례식을 치른 뒤, 현재 안산 하늘공원에 안치돼 있다. 최군은 평소 온순하고 착했으며 항상 스스로 모든 일을 알아서 처리하는 성격이었다고 주변 사람들은 전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학년 학생회장도 맡았다. 검도 2단인 최군은 친구들을 구하다가 숨진 2학년 4반 정차웅(17)군과 함께 같은 검도학원에 다녔다. 최군의 꿈은 ‘누군가를 지키는’ 경호원이었다. 안산시는 최군에 대해 의사자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안산/김일우 김기성 기자 cooly@hani.co.kr 천근아 "세월호 유가족, 쉽게 잊힐까 봐 두려운 고통" [한겨레담]
연재잊지 않겠습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