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만원 꺼냈다 곧바로 돌려줘
배심원은 5-4로 무죄 판단 우세
검찰 “절도 모두 무죄날 판” 반발
배심원은 5-4로 무죄 판단 우세
검찰 “절도 모두 무죄날 판” 반발
전과 11범인 상습절도범이 출소 두 달 만에 재범을 저지른 혐의로 재판정에 섰다가 국민참여재판을 거쳐 무죄를 선고받았다. 배심원 다수와 재판부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만큼의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고 했지만, 검찰은 “이런 게 무죄라면, (절도 사건) 전부가 다 무죄”라며 수긍하기 어렵다는 태도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이범균)는 한 마사지 가게에서 현금 120여만원을 훔친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법의 절도)로 기소된 김아무개(53)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18일 밝혔다. 일용노동자인 김씨는 지난 1월 서울 서초동 한 마사지 가게에 들어가 주인이 없는 사이에 카운터 서랍에서 5만원권 22장 등 현금 123만7000원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인 가게 주인은 경찰 수사 단계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당시 상황을 일관되게 진술했다. “김씨가 카운터에 몸을 구부리고 있기에 다가가서 ‘뭐 하느냐?’라고 물었더니 바지 왼쪽 주머니에서 현금 120여만원을 꺼내 돌려주면서 ‘나는 10원 한 푼 건드리지 않았다. 세어보시라’고 말하기에 우선 돈을 돌려받은 뒤 경찰에 신고했다”는 것이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도 법정에서 “김씨는 현장에서 현금을 훔친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 뒤로는 ‘술에 취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전날 과음을 해서 마사지를 받으러 갔을 뿐’이라고 말을 바꿨다”고 증언했다.
배심원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4명이 유죄, 5명이 무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인 가게 주인의 진술은 상당히 믿을 만하다. 허위로 진술할 이유도 없다. 김씨에게 강한 유죄의 심증이 드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김씨가 카운터에서 돈을 꺼내는 모습을 직접 본 사람이나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과 같은 직접 증거가 없다”며 배심원 다수 의견을 좇아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카운터 앞에 요금표가 있는데 카운터 안쪽으로 돌아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김씨는 과거에도 업소나 병원에서 이런 수법으로 금품을 훔쳤고, 걸리면 되돌려줬다. (국민참여재판이 아니라) 일반 재판이었다면 당연히 유죄 판결이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훔치는 장면을 녹화하거나 목격한 직접 증거가 없어 무죄라면, 거의 모든 절도 사건이 다 무죄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배심원들의 의견이 엇갈리는데 무죄로 기운 것은 과도한 양형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절도죄로 실형을 두 번 이상 선고받고 출소한 지 3년 안에 다시 절도죄를 저지르면, 법정형이 무기징역 또는 징역 6년 이상이다. 김씨는 2010년 이후에만 절도죄로 3번 징역형을 선고받은 상습절도범으로서 지난해 11월 출소했다. 유죄일 경우 최소 6년 이상을 복역해야 하는데다, 피해자 또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밝히면서 상당수 배심원들의 마음이 기울었다는 얘기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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