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소방원시험
도심 소방서 배치로 인기…경쟁률 6대1
‘국어 상식 국사’ 시험으로 뽑아
전국 40여개 소방전공자는 성적 밀려 못가
“의무소방원을 뽑는 기준이 왜 화재·소방 지식이 아니라 국어, 상식인지 모르겠습니다.”
한 지방 대학 소방학과에 다니는 최아무개(25)씨는 최근 세번째 도전 끝에야 의무소방원 선발시험에 합격했다. 최씨는 “소방관을 뽑자는 것인지 공부 잘하는 사람을 뽑자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의무소방원 제도가 도입 취지와는 달리 명문대생들에게 유리한 ‘편한 군복무 수단’으로 의미가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의무소방원 제도는 2001년 서울 홍제동에서 일어났던 대형 화재로 소방관 6명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진 뒤 ‘유능한 소방인력을 확보한다’는 취지로 2002년 신설된 대체복무 제도다. 의무소방원으로 선발되면 일선 소방서에 배치돼 장비 준비·점검 등 화재 진압 보조업무를 맡게 된다.
의무소방원은 다른 군 대체복무 제도들과 달리 근무지역을 골라 응시할 수 있고, 근무지인 소방서가 시내에 있다는 이점 때문에 경쟁률이 매우 높다. 올해는 800명 선발에 4800여명이 몰려 평균 6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특히 서울은 경쟁률이 9 대 1에 이르렀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의무소방원 출신을 대상으로 따로 소방공무원을 뽑는 제도가 생기면서 의무소방원이 되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소방방재청은 지난해 33명, 올해 56명의 소방공무원을 이 제도를 통해 뽑았다.
그런데 정작 의무소방원 선발시험은 소방과는 상관없는 국어, 상식, 국사 세 과목이며, 소방 관련 시험은 단순 소방지식이 상식 시험에 15% 정도 배정돼 있는 것이 전부다. 때문에 전국 대학 소방학과에서 소방을 전공한 학생들보다는 명문대생들이 합격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서울의 한 소방서 의무소방원 9명의 출신 대학을 보면 서울대가 3명, 연세대가 4명, 성균관대 1명, 한국외국어대 1명으로, 소방학과 출신은 한 명도 없다.
또 지방 합격자들도 서울 출신 학생들로 메워지고 있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모든 지역 합격자 대부분이 수도권 대학 재학생들로, 이른바 ‘명문대’ 비율이 상당하다”며 “소방학과 학생들은 한 기수에 겨우 한 명 정도이거나 아예 없다”고 말했다.
소방학과에 다니는 이아무개(24)씨는 “소방을 전공하고서도 시험에 떨어져 현역 입대하는 친구들이 많다”며 “유능한 소방인력 확보를 위한 의무소방 제도가 아니라 공부 잘하는 명문대생들을 위한 ‘제2의 카투사’라는 말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호서대 소방학과 오규형 교수는 “현재 전국 40여개 대학에 소방 관련 학과가 있어 소방 전문지식을 갖춘 입대 대상자들이 상당한 수에 이른다”며 “이 학생들을 의무소방원으로 활용하면 업무의 연속성이나 전문성이 훨씬 높을텐데 제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조은정 인턴기자
호서대 소방학과 오규형 교수는 “현재 전국 40여개 대학에 소방 관련 학과가 있어 소방 전문지식을 갖춘 입대 대상자들이 상당한 수에 이른다”며 “이 학생들을 의무소방원으로 활용하면 업무의 연속성이나 전문성이 훨씬 높을텐데 제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조은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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